2021년 9월 27일 월요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부인들의 봉사와 비유의 사용

 

누가복음 81-18: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개정개역 한글).

 

 

오늘까지 예수께서 제자를 데리고 전도를 하셨다고 하지만도,

아마도 가버나움에 집을 정하여 두고서,

날마다 나가서 가르치신 것이리라.

 

그런데

 

'이후 예수, 촌리를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니라'(1일역).

 

즉 순회전도가 개시된 것이다.

그리고 그를 따른 자로 12사도가 있었다.

또 앞서 악귀 들렸던 자, 병 고침을 받은 부인들 있었다.

 

'악귀(귀신)들린 자'란 오늘의 의학상 단순한 신경병인지,

혹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임함에 있어서 악귀(귀신) 맹위를 자행했기 때문에 생긴 특수한 질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일곱 악귀(귀신)를 쫓아낸바 된 막달라 사람으로 불리 운 마리아'(2),

생각건대 시몬의 집에서 감은의 눈물로서 예수의 발을 적신, 저 추업부이리라.

 

'헤롯의 시종 구사의 아내 요안나'(3)

 

즉 국왕의 시종의 부인이다.

 

'또 수잔나'(3)

 

즉 주석 없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제자들이 잘 알고 있는 부인이었으리라.

30세 전후의 청년설교가를 위요(enclosing)하는데,

중동사회에서 선택된 12인의 제자와 수다한 부인으로서 했던 것이다.

 

그 중에는 이전에 좋지 않은 영업을 하여 세인에게 지탄을 받은 자도 있었다.

또 이른바 궁내성의 고관의 부인도 있었다.

또 어떤 지명의 부인도 있었다.

그러한 것이 예수의 전도단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전도단이다.

즉 아직 유례없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바리새인, 학자들은 생각했으리라.

 

'그러한 단체, 능히 무엇을 하랴'.

 

하지만 이 소전도단이야말로,

바른, 예수께서 만드시려고 한 대() 전도단 즉 교회의 전형이다.

부인은 실로 교회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스도 단은 처음부터 부인을 배척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가장 잘 그리스도를 안 것은 부인이었다.

그리고 부인은 그리스도단의 중심됨의 지위를 차지하여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밖의 많은 여인이 있어서, 모두 그 소유(재산)로서 예수를 섬겼다'(3일역)고 있는 사실이다.

 

예수는 어떻게 하여 그 전도사업을 유지했던가?

당시는 현금처럼 재화(財貨)의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 못이다.

 

어느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바울 시대에 있어서 그가 한 대로 로마에 상고(上告)하는 일은

다액의 소송비용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이로써 그 일반(a part)을 알기에 족하다.

 

다만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능히 못할 것이 없다.

예루살렘의 성전에 돈을 바치신 때처럼 기적을 행하여

모든 소요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면 그것뿐이다.

 

(마태복음 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하지만 누가는 여기서 일언을 부기하여 암시(suggestion)를 주었던 것이다.

즉 부인(여성)의 공급에 기대했다고.

이것은 아주 흥미 있는 문제이다.

 

일찍이는 추업(醜業)을 하여 그 죄를 사함 받은 막달라의 마리아가 고귀한 향유를 바친 것 같이, 많은 병을 고침 받고 죄사함 받은 귀천 각양의 신분의 부인이,

각자 그 소유를 들어 예수께 드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최초의 순회전도의 비용은 12사도의 공급에 의하지 않고

부인의 기부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특필대서할 만한 사실이다.

 

'천하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 기념 위해 전해지리라'(마태복음 26:13일역)

 

사실이다.

 

부인에게는 남자가 알기 어려운 힘이 있다.

그 예민한 직각이, 부인으로 하여금 그러한 대 회생을 지불케 하는 것이다.

원시에 있어서 전도의 주동력이 부인에게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에 있어서도 그 예는 적지 않다.

전도사업에 대한 가장 열심 있는 찬성보조가 먼저 부인에게서 오는 것은,

구미에 있어서의 보통의 사례이다.

 

이렇게 예수의 새로운 순회전도가 시작되자,

그의 명성은 사방으로 훤전(spread abroad)되어,

원근의 여러 마음에서 다수의 사람들,

그의 가르침을 듣고자 그에게로 모여왔다.

 

마태복음의 기사에 의하면, 군집 너무나도 많아

그는 배를 호상(湖上)에 띄워 언덕을 향해 말했던 것이다.

 

이제 전도자 예수의 이름은 높고, 복음을 받으려는 사람은 무수하다.

이때에 있어서, 예수 만약 보통 전도자였더라면,

그는 생각했으리라.

 

내 가르침에 의해 하나님나라의 지상실현 될 날도 멀지 않다 '.

 

하지만 예수는 그런 것으로 기뻐 하시기에는 너무나 위대하였다.

그는 다중의 내회에 접하여,

도리어 하나님의 도가 더럽혀짐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는 군중의 안색을 보고 그 심중을 통찰했던 것이다.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지 말라'(마태복음 7:6)

 

누구이건 복음을 요구해 오는 때는 도리어 제자의 선택을 필요로 하는 때이다.

이것을 체(a sieve)로 흔들어 참 열심 자와 반 열심 자를 나누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이 목적 위해 가장 적당한 것은 실로 비유이다.

비유는 교훈의 내용을 더욱 불가해하게 하는 법이다.

이것을 알려고 하는 열심 있는 자는 이것을 해득할 수 있고,

이런 열심을 결여한 자에 대해서는 영원한 수수께끼로서 끝난다.

이러한 것이 비유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이제

 

'많은 사람이, 촌촌에서 나와 예수께로 모여오매, 비유로써 말하셨다'(4일역)

 

다수가 모여 왔기 때문에,

예수는 특히 비유를 쓰신 것이다.

즉 그는 씨 뿌리는(파종의) 예를 말씀하시고,

그리고 최후에 일단 소리를 높여

 

'귀 있어서 들을 자는 들으라'

 

외쳐 가르치심은 끝났던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의 진의를 해득하지 못하고, 괴이히 여겨 물었다.

 

'이는, 무슨 비유인지요'(8)라고.

 

예수는 대답하여 말하시기를

 

'하나님 나라의 오의(비밀)를 너희에게는 알도록 주었지만, 다른 자에게는 비유로 말한다.

이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때문이다'(10일역)라고.

 

참으로 복음을 받음의 열심 없는 자로 하여금,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일,

이는 비유의 사용의 이유이다.

비유의 사용에 의해, 교훈은 불가해로 되고,

진리는 은닉(concealment)된다.

하지만, 비유의 최후의 목적은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침내 이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이것을 덮고, 혹은 상아래 두는 자 없다.

들어오는 자가 그 빛을 보도록 대위에 둔다.

숨은 것 드러나지 않는 것 없고, 감추어져서 알려지지 않는 것 없다'(16일역)

 

이는 즉 참으로 구하는 자에 대한 위자의 말씀이다.

비유로 감싸인 진리에 접하면, 더욱 더 깊이 이것을 찾아야한다.

 

그러면 진리는 마침내 그 의의를 발휘하겠고,

만약 이것을 찾지 않고 버려두면,

이미 획득(acquisition)한 진리도 잃게 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듣는 일을 삼가라. 가진 자는 더 받게 될 것이요,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 바의 것도 빼앗기리라'(18일역)

그리고 다만 이것 뿐 아니다.

성서는 비유로써 차있는 글()이다.

묵시록(계시록) 같은 것은 그 현저한 예이다.

아니, 신약성서 그것이 실로 일대 비유이다.

저 많은 기적이라든가, 수육, 부활, 승천, 재림 등에 관한 기사를

주저 없이 명기한 신약성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출하신 최대의 비유가 아니고 무엇이랴?

 

과연 그렇다면

 

'숨은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알려지지 않거나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17한글 새 번역)

 

아무리 난해의 오의(비의)라 해도,

이것을 탐구하여 마지않으면 마침내는 해득할 날이 오리라.

 

저 상식에 찬 대 정치가 글래드스턴(926역주),

거다라에 있어서의 악귀(귀신)돼지에게 들어간 기사를 변호하여,

극력 헉슬리, 틴들 등과 싸운 그 겸손한 태도로써 성서에 대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 파울젠 같은 이,

그리스도교의 찬성자로써 칭해지지만도,

성서 중에서 기적을 배제하지 않고서는

그 진리를 해득할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은,

비유의 해석에 실족한 자이다.

 

난해하다고 함부로 포기하지 말라.

 

'가진 자는 더 받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으로 생각한 것까지도 빼앗기리라'(18)

 

해득하기 쉬운 진리는 얕은 진리이다.

해득하기 어려운 진리를 해득할 때야말로 감사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이해(회득)는 하나님의 계시에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56일 등정무필기)

 

*내촌감삼의 (19176'성서지연구')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