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0일 월요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용서받은 여인

 

성 경: [7:44-50]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7: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 손님이 방문하면 주인은 먼저 그를 상석에 앉게 하고 손님의 손과 발을 씻기 위해 물을 준비하는 것이 통례였다.

 

(18: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19: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24:32 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낙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의 동행자들의 발 씻을 물을 주고;

 

19: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러나 시몬은 예수를 자기 집에 초청해 놓고 그러한 통례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못했다.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 예수께서는 시몬으로부터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하셨으나 여인으로부터는 전폭적인 헌신의 예를 받으셨다.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추고는 눈물을 흘려 머리털로 발을 씻는 행위의 헌신과 향유를 붓는 재물의 헌신은 성도가 지녀야 할 신앙 자세를 시사한다.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 입맞춤은 자연스러운 영접 인사였다.

 

(29: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45: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삼하 15:5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예수께 대해 이런 예를 갖추지 않았다.

예수는 주인으로부터 당연히 받게 되어 있던 환영의 입맞춤도 받지 못한 반면, 여인으로부터 발에 입맞춤을 받으셨다.

 

'그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이 여인이 과거의 어두운 세월을 예수께 묵언(黙言)으로 토로하는 중에 복받치는 감격과 희열을 경험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위는 존경하는 손님에게만 특별히 행하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태양 밑에서 걸어 다닌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당연한 예의였다.

 

'감람유'는 다량 생산되고 값도 싸기 때문에 누구나 손님에게는 머리에 이 기름을 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몬은 이 일조차도 행치 않았다.

반면에 그 여인은 가장 값진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다.

 

'머리''',

그리고 '감람유'

'향유'는 극명한 대조를 더해준다.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 여기서 '많은'(폴라이)이란 강조하기 위한 말인데 '모두'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것은 그녀의 죄가 아무리 크고 많다고 해도 모두 사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사하여졌다'는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지금은 온전한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 이 구절은 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카톨릭 학자들은 이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 사랑, 즉 여인이 행한 사랑의 행위 때문에 용서를 얻게 된 것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사랑이 용서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면서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아마 언뜻 보기에 여기 사용된 접속사 '호티'('이는')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러한 해석으로부터 카톨릭의 공덕설(ontritio caritate formata) 같은 교리가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

 

첫째, 접속사 '호티'는 그녀의 죄가 사해진 '이유''근거'를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체 비유와 50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녀의 죄가 참으로 용서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증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용서의 이유나 원인이 아니라 사랑을 보여줌으로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입증'한다(Lenski).

 

둘째, 성경 전체의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해석은 억측일 수밖에 없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인간의 행위나 공로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죄 사함은 오직 은혜로 내려진 것이다.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셋째, 그러한 해석은 예수께서 비유해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요점(42절 참조)과 상치된 다.

비유의 요점은 두 채무자가 그들의 빚을 은혜에 의하여 탕감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그녀의 사랑은 용서의 원인이 아니고 결과로 봐야 한다. (Bengel,Meyer, Farrar, Ellicott )

 

 

[7: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 예수께서는 여자에게 직접 말씀하시면서 처음에 말씀(47)하셨던 것처럼 '너의 많은 죄'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 죄'라고 하신다.

 

이것은 시몬이나 그녀가 모두 죄를 용서받아야 할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으며

또한 그 여인이 사함 받은 죄란 어떤 특별한 범죄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고,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와 근원적인 죄까지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여기서 예수께서 죄 사함에 대한 공적인 선언을 하신 이유는

이 여인으로 하여금 죄 사함의 확신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었음과

아울러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서 가진 선입견을 바꾸어 놓으시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녀를 소문난 죄인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7: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 앞서 중풍병자를 고칠 때에도 이와 같은 반발이 있었다.

 

(5: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때 바리새인들은 죄 사하는 권세로 사함을 선언하신 예수를 신성 모독자로 정죄하였다.

 

여기서도 이들은 눈물로 회개하며 죄 사함을 얻은 여인과는 대조적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사하는 것을 보면서 '참람'하다는 생각을 나타내었다.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 이는 47절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에 쐐기를 박는 구절로서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구원하였다'(세소켄)는 완료형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고 지금도 구원받은 상태로 남은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여인이 예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이미 구원에 이른 상태였던 것을 보여 준다.

 

다만 예수께서는 이미 확보된 구원을 공공연하게 선언하신 것이다.

 

*참조 : (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평안히 가라 - 이는 예수께서 여인에게 하신 작별의 인사다.

 

이러한 유대인의 작별인사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대의 것이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전통적인 표현이나,

이 구절에서는 더욱 깊은 뜻을 나타낸다.

 

(18: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삼상 1: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삼하 15:9 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왕상 22:17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이 여인이 예수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을 확증 받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제 멸시받던 죄인인 그녀에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새사람이 되었으니 평안한 마음으로 가라'

말씀하신 것이다.

 

이 명령형은 평안 상태의 항구성(恒久性),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짐으로써

누리게 되는 영속적인 평안을 시사한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를(9:6) 영접하는,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모든 사람은, 다 이러한 영속적이고도 참된 하늘의 평안을 누릴 수 있다.

 

(2: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1: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