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3일 금요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천국민(天國民)과 그 율법

 

누가복음 612-38: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진정한 혁명은 모두 부득하여 이룩된다.

예수도 또한 당시의 학자 바리새인과 그 근본정신을 달리함을 알고, 부득이 이와 절연하셨다.

그리고 제자 중에서 다시 자기에게 가까운 자 12인을 선정하여, 이것을 사도로 삼으셨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영적 단체는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단, 즉 교회의 발단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천국의 시민은 여기서 비로소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지금 그들에 대하여, 그 지켜야 할 도() 및 그 특전을 가르치셨다.

 

20절 이하는 즉 마태복음의 이른 바 '산상 수훈'으로서,

이 세상에서 분리한 제자들이 지켜야 할 길() 및 그 특권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른바 산상수훈에 대한 최대의 오해는, 이것으로서 인류전체의 도덕으로 보는데 있다.

그렇게 해석할 때, 예수의 가르치심은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저 톨스토이(2234역주)의 신앙에 허다한 곤란이 따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나(중국)의 한 학자도 일찍이 미국에서 공언한 일이 있었다.

'공자(2282역주)는 실행가능의 일을 요구하고, 그리스도는 무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산상수훈이 인류전체에 대한 요구가 아닌 것은,

누가복음의 기사의 순서, 특히 그 제627절이 보여주는 바이다.

 

'내게 듣고 있는 너희에게 말한다'(일역).

 

즉 예수는 만인에게 이것을 말하신 것 아니라,

다만 그에게 듣고 그를 따르는 바의 그의 제자에게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듣는 바의 그의 제자는, 그에게서 그저 명령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또 함께 약속도 받는 자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약속을 수반한다.

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이 명령을 지키기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약속을 떠나서 율법을 지킬 수 없고,

천국의 백성이 아니고서 산상수훈중의 도덕을 행할 수는 없다.

산상의 수훈은 천국의 백성 됨의 특권을 받은 소수자의 율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예수는 율법을 말씀하심에 있어서, 먼저 천국민의 특권을 가르치셨다.

이때, 예수를 따라 최초로 천국민이 된 제자들은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세상의 부자 또는 권자 계급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난한 자, 약한 자였다.

오늘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교는 이미 세계세력으로서,

세계 부의 10분의 9는 크리스천의 장악하는 바로 되어.

구미의 군주, 대통령들, 모두 크리스천 아닌 자 없음의 상태이지만도,

그리스도단의 발단을 회고해 보면, 그것은 극히 처량(가련)한 것이었다.

 

그 단원은 어부 또는 세리의 동료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 소수의 약자가, 세상의 교권, 정권과 절연 분리하여

이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것을 밖에서 볼 때, 아 마치 어린이의 장난과도 비슷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것을 안에서 볼 때, 제자들 자신마저도 의구심에 잡혀 있었으리라.

그런데 예수는 가르쳐 말씀하셨던 것이다.

 

'너희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우는 사람이야말로 복이다.

왜냐하면, 천국이 너희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배부르고 또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세상에서 배척 박해받는 때야말로 복이다.

그 때는 기뻐하고 춤추라. 왜냐하면,

이로 인해 참된 영광에 들어갈 것임으로이다'(누가복음 6:20-23)라고.

 

예수는 그 제자인 빈자, 약자들을 마음에서 축복하셨다.

그리고 또 그들 사이에 숨어 들어온 바리새, 사두개 무리들의 간첩에 주목하여 말씀하셨다.

 

'너희 부한 자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배부른 자, 지금 웃는 자는 화 있을진저.

모든 사람이 칭찬할 때, 너희는 화가 있을진저'(24-25)라고.

 

이것은 아주 격월(격열 vehement)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영이 그 가슴에 깃들이지 않고서, 누가 어찌 이 말을 할 수 있으랴!

 

예수는 빈자, 약자를 축복함과 함께, 부자 권자를 저주 하셨던 것이다.

빛의 아들과 세상의 아들을 준별(엄격구별)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단(기독단)의 발단이었다.

그리고 그 종국도 역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천국민의 특권은 이에 있는 것이다.

 

특권에 이어서 율법은 온다. 27절 이하가 그것이다.

 

'사람이 네 뺨의 오른편을 치거든, 또 왼편의 뺨을 돌려대라

네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까지도 거절하지 말라'(29일역).

 

이것 과연 실행할 수 있는 도덕일까?

이것을 인류전체의 도덕으로 볼 때, 그 실행은 불가능이다.

 

하지만, 이것을 천국 백성의 율법으로 볼 때,

그 실행은 가능이다. 또 용이하다.

좀 사실로서 이 주해가 되게 하시라.

 

'누가 너더러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주라'(마태복음 5:41 한글번역)는 것은,

같은 교훈 중 마태복음에 기재된 일절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히 당시의 예증이었다.

당시 로마의 병사는, 누구나 붙잡아, 1리그(1-한국의 10)를 한하여,

자기 짐을 지우게 할 특권을 가졌다.

그러므로 삽(a spade)을 가지고서 전원에서 분망 하는 농부라 해도,

일리(한국 10)의 공역은 이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따라서 사람 모두 병사를 싫어하고,

멀리서 그 그림자만 보면 곧 도피하는 것을 예사로 했다.

 

그런데 크리스천만은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일리의 공역을 강요받으면, 이것과 함께 2리 또는 3리를 갔다.

다만 그들은 그저 가지 않았다.

 

그들은 병사의 짐을 지고 가면서 복음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짐을 지우게 한 병사로서 구원에 든 사람은 결코 소수는 아니었다.

 

즉 안다.

그들 크리스천은 단순한 명령으로서 이것을 지키지 않았음을.

그들은 가련히 여겨야 할 로마 병사의 영혼을 사랑했던 것이다.

 

또 그들로 인하여 천국에 있어서 어떠한 보물의 저축이 되는 것인지를 알았던 것이다.

이미 이러한 소망과 이러한 사랑 있어서 즉 일리의 강제에 응하는데

2리의 이행으로서 한 대도 곤란이 무엇 있으랴!

 

우리들은 만약 언제나 우리들의 나라는 하늘에 있음을 생각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오심을 대망하기에 간절함을 가지고,

또 아직 이 소망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강렬한 동정을 가질 것인가?

 

심야 도적이 와서 재물을 요구하는데 조우하면,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 재산을 준대도 아까워하지 않으리라.

 

현금 우리나라에 있어서까지도,

왕왕 이런 종류의 실례를 보는 것이다.

 

도적의 요구에 따라 재화를 주는 위에 더하여

'원하기는 이 글을 읽으라'고 성서를 주어,

마침내 도적으로 하여금 옥중에서 회개케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지고의 도덕을 행하는데 있어서 그렇듯 쉽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주안에 있는 소망과 사랑으로이다.

이 소망과 사랑 없이 예수의 명령은 이것을 지킬 수가 없다.

 

모태에서 나와, 이 세상의 교양을 받을 뿐인 자로서,

사람은 산상의 수훈을 실행하기란 절대로 불가능이다.

 

하지만 일조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고,

소망과 사랑이 그 가슴속에 불타오르기에 미쳐서,

율법은 이미 속박이 아니라, 중하가 아니라,

도리어 아주 쉬운 자연의 도로 화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마치 부모(어버이)를 사랑하는 자식,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에 대해서는,

강한 명령도 명령으로 들리지 않고,

도리어 달콤한 사랑의 말로서 받아들여짐과 같다.

 

우리에게 천국관의 소망이 있고,

주로 말미암는 사랑 있다면,

산상의 수훈의 높은 요구도 무어 두려워할 바 있으랴!

 

'사람이 네 뺨의 오른 편을 치거든, 또 왼편 뺨을 돌려대라'(29).

 

옳다. 나는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네 겉옷을 빼앗으면 속옷까지도 거절하지 말라'(29).

 

옳다. 나는 또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윤리학자들,

선악의 논(논리)을 알고 도덕의 실행에 무능하다 해도,

 

크리스천은 주의 명하시는 대로 율법의 멍에를 메고서,

그것이 아주 가벼움을 느끼는 것이다.

 

근간 교회에 있어서 산상수훈에 대한 일종 특별한 해석이 있다.

즉 천국민의 특권을 현세적으로 해석하여

 

'너희가 지금은 가난하다 해도 후에 부하리라.

너희들 교회의 대표자들, 지금은 박해를 받는다 해도 후에는 세상에서 환영되기에 이르리라.

그리스도교는 그 시초에 있어서 미미했지만도 후에는 세계 세력 되기에 이르리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실로 그리스도교는 오늘 날 세계의 대 세력이다.

크리스천은 오늘 가난한 자가 아니다.

미국의 침례교회는 일본전국의 부보다도 큰 부의 소유자인

록펠러 같은 이를 그 회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게 부하기 때문에 점점 부패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일지기 천주교회(3125역주)의 성서,

어떤 학자가 로마법왕에게 뵈옵자 법왕 말하기를,

베드로는 금은 내게 없다고 했지만,

그 후계자인 나는 그렇게 말함의 필요 없다고.

 

학자 대답하여 이르기를,

옳습니다마는,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서라고 하면 누구 나가 섰습니다.

 

그런데 각하는 이것을 말할 수 없고,

또 이것을 말한대도 설자는 없습니다. .

 

참된 교회는

오늘이라 해도 부자, 권자의 단체는 아니다.

 

그 발단에 있어서,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우는 자의 단체였듯

그 종국에 이르기까지 동양(同樣)이다.

그리고 그들은 주의 재림에 이르러

비로소 부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로 되는 것이다.

 

천국은 지상 교회가 아니다.

부활제로서 참여할 그 귀한 나라이다.

그러므로 이에 들어감의 환희 행복은 영원불후이다.

천국을 내세로 해석하여

비로소 산상의 수훈의 의의를 찾을 수가 있다.

 

크리스천의 특권은 천국의 약속에 있다.

 

그리고 이 약속에 기초하는 소망과 사랑에 불타는 때,

능히 천국민의 율법을 실행하기에 족한 것이다. (318일 등정무필기)

 

*내촌감삼의 (19175'성서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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