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향유 기름 부음을 받으심
성 경: [눅 7:36-39]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눅 7: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 한 바리새인이 -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러한 표현은 당시 많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적대시하던 터에 그 중의 한 사람이 식사를 초대하였던 이례적(異例的)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이 바리새인의 이름은 시몬(40절)이었으나 그의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유대에서의 '시몬'은 매우 보편적인 이름이었다.
(4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 바리새인이 예수를 초대한 일은 일견 용기 있는 태도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 바리새인들을 위시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안식일 규례와 같은 율법을 준수하지 않고 세리나 창기 같은 죄인들과 어울리는 죄인으로 정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초대는 하였으나 냉랭한 자세로 손님을 맞이하였다.
(44-46절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로 보아 아마 이 바리새인이 예수를 초청한 이유가 예수께 대한 사랑이나 존경에서 나온 것은 아닌듯하다.
그가 예수를 믿지 않으며 선지자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39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이 바리새인은 병자를 고치기도하며 또 많은 군중들이 예수께 몰리는 것을 보고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을 수도 있고 또 그에게 '큰 선지자'적인(17절) 능력이 있는가 알아보고도 싶었을 것이다.
아울러 군중들에게 추앙받는 예수를 자기 집에 초청함으로 자신도 추앙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예수께 대해 고소할 빙거(憑據)를 찾기 위해 초대했으리라는 추측도 배제할 수 없다.
누가는 이 구절 외에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초대한 예를 두 곳에서 들고 있다.
(11: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14: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눅 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 죄를 지은 한 여자 - 이 여자를 창기(娼妓)로 보는 견해(Meyer, Bruce)도 있으나 성경에서는 그녀가 어떤 종류의 죄를 범하여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는지 전혀 언급이 없다.
아마도 이 여인은 한 때 나쁜 길에 빠졌었고 그녀의 타락이 공공연히 알려지게 되어 그 이후로 그녀는 죄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비록 죄인으로 취급받고 있었지만 이전부터 들어온 예수의 소문에 희망을 갖고 그를 찾게 되었다.
그가 들었던 소문은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과 함께 하시며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 때문에 그녀는 매우 귀중한 향유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 향유담은 옥합 - 이 옥합은 향유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둥근 그릇으로 손잡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릇 속에 든 기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목 부분을 깨뜨려야만 했다.
이러한 옥합은 매우 값진 품목이었다고 하며(Pliney) 그 속에 든 향유도 값진 것이었다.
이런 류의 고급 향류나 값비싼 화장수는 보통 로마의 부유한 여인들이 주로 사용했으며 구하기도 어렵고 매우 귀했기 때문에 매우 가치있는 재산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 향유는 그 여인이 특별한 목적으로 구입하였을 것이다.
한편 당시의 풍습에 따르면 적선을 구하는 거지들은 초청을 받지 않고도 잔치에 들어가 음식 부스러기들을 얻어갈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여인도 그러한 비천한 무리들 틈에 섞여 있었을 것이다.
[눅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 그녀는 예수의 발 곁에 서자 눈물이 쏟아졌다.
이는 그녀가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자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고 아울러 예수의 인격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이 그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자기 머리털로 씻고 - 여인은 자신으로 하여금 영적인 눈을 뜨게 하고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신 예수께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 차게 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예수께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머리를 풀어 눈물로 예수의 발을 닦았다.
그런데 여기서 머리를 풀어 발을 닦았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관습에 의하면 여자가 사람들 앞에서 자기 머리를 풀어 내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수치를 무릅쓰고 감격과 경의를 표했던 것이다.
여인의 왕관이라고 할 머리털로써 예수의 먼지 묻은 발을 닦는 모습에서 그녀의 철저한 겸손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예수를 초대해 놓고서 발 씻을 물조차 제대로 준비해 주지 않은 바리새인의 뻔뻔함과 대조된다.
▶ 그 발에 입맞추고 - 이는 가장 헌신적인 복종과 존경을 표하는 행동이며 특히 헬라어 원문상 '카테필레이'라는 미완료 시제가 사용되는데('입맞추고')
이것은 반복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표현인바,
예수께서 들어오신 후 계속해서 예수의 발에 입을 맞췄다는 의미이다. (Robertson).
▶ 향유를 부으니 - 대체로 존경의 표시로 향유를 부을 때는 머리에 붓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 여인은 이례적으로 발에 부었다.
그녀는 예수의 발에 접근하는 것조차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바로 눈물의 회개와 벅찬 감격의 봉헌(奉獻)이었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할 신앙의 행동을 몇 가지 살필 수가 있다.
(1)복음을 듣고 알아야 한다(37절, 알고).
(2)예수께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야 한다(예수의 뒤로...서서 울며).
(3)전폭적으로 헌신하여야 한다(자기 머리털로 씻고).
(4)철저하게 순종하여야 한다(그 발에 입맞추고).
(5)최선의 봉사를 해야 한다(향유를 부으니).
이러한 신앙의 행동이 있을 때 우리는 늘 구원의 감격 속에서 살 수 있다.
[눅 7: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 시몬은 여인의 도유(塗油) 행동을 보고서 한편으로는 몹시 기분이 상했고 또 한편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흘렸던 것같다.
그가 못마땅한 투로 혼자 중얼거린 것은 죄인인 한 여인이 식탁으로 접근한 사실에 대한 불쾌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은근히 기뻐한 것은 예수께 대한 그의 의혹을 정당화할 만한 단서를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예수가 선지자라면 당연히 발 앞에 무릎 꿇은 여인이 죄인임을 알았을 것이고 또한 그녀를 물리쳤을 것이었다.
따라서 죄인의 신분에 있는 사람이 몸에 손대는 것을 허용하신 예수는 바리새인의 눈에 똑같이 천박한 사람으로 비쳤던 것이다.
그 바리새인은 과연 예수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만한 선지자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고 있었지만,
예수께서 죄인을 불러 의롭게 하기 위해 오신 메시야시라는 점에 대해서는 도무지 무지하였다.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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