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2
반대자는 환성을 발하여 말했으리라.
‘자 다니엘 씨, 이제는 사자의 먹이(food)가 되시오.
우리는 내일부터 당신 없이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소’라고.
그렇지만 왕은 슬퍼했다.
그는 자기가 존중하는 대신(大臣)을 사자굴에 넣고서,
그 마음이 조금도 편할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음악을 듣지 않고,
주식(主食)을 받지 않고,
수면(sleep)을 취하지 않고,
아침 오기를 기다렸다가, 날이 밝자,
곧 사자굴 곁에 가서 다니엘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기이하게도
해(害) 받지 않고서 살아있음을 보고,
환희에 넘쳐 그를 구해 내고,
도리어 참주자(중상자 a slanderer)들을
그 처자와 함께 모두 굴속에 던지고,
사자(a lion)로 하여금 먹어 버리게 했던 것이다.
사자에게 해(害) 받지 않고 하룻밤 이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을 하나님의 기적이라면,
애당초 논할 것이 없다.
하지만 기적은 기적이지만,
보통인에게 경험 없는 기적은 아니다.
이에 유사한 일은 왕왕(often)존재하는 것이다.
근래, 연구가 한창인 동물심리학에,
그 일부의 설명이 있다.
다수의 동물은 사람의 기질을 감별하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저 앵무새(a parrot)같은 것, 저 맹견류 등은,
때로 사람을 물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일견(a glance) 하여 그 온순한 성질을 알고,
자진하여 사람에게 가까이 하는 것이다.
특히 흥미 있는 것은 사자이다.
서양에 사자사라고 일컫는 자가 있다.
거의는 묘령(스물 안팎)의 여자로서,
아프리카에서 막(just) 들여온 영맹(fiercaaneess)한 사자를 붙잡고,
이에 입 맞추며 고양이처럼 취급한다.
생각건대 다니엘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음에 죄 없는 그의 풍채랄지 어떤 이유 있어서,
사자는 그를 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지?
저 이사야서 11장의 예언처럼,
맹수와 사람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실현되는 것은,
다만 맹수의 성질이 일변할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람의 태도도 역시 변화하여,
사랑으로서 가득 차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신앙으로 인하여 받을 세상에서의 박해,
이는 다만 2500년 전의 다니엘에 한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어느 때에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일본) 같은 비(非) 그리스도국에 있어서 그러하다.
과거 50년의 우리나라(일본) 그리스도교 사상,
얼마나 되는 소 다니엘이
소관리(소역인)에 의해 함정에 빠뜨린바 되었는지 모른다.
가령 지방의 관청,
또는 학교 등에 좀 세력 있는 크리스천이 있을 때는,
곧 시의질투(suspicion; jealosuy)의 눈으로써 주시되고,
무슨 흠점이라도 잡으려하지만 틈이 없으므로,
마침내 그 종교로 인하여 굴(옥)에 던져지는 것이다.
즉 신사참배,
또는 불사참렬(불참 visitinb a temple, worship)등을 기회로 하여,
크리스천은 종종 그 신앙을 시험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어떠한 함정에 빠진대도,
우리들이 취해야 할 길은 다만 하나뿐.
우리들은 하나님의 싸움(신령한 성전(聖戰))을 싸우기 위해
세상에 보내진 것이다.
그들에게 수욕을 당하면서,
자기의 신앙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들이 크리스천이 된 이유이다.
실적도 마다할 수 없다.
다수의 반대로 어쩔 수 없다.
만약 성지(聖旨)에 합한다면,
하나님은 기적으로써 우리를 도우시리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몸은 죽는대도
우리들의 영은 곧 하나님 앞으로 옮겨지고,
때가 되면 영광의 관이 우리에게 입혀질 것이다.
구원되더라도 감사,
죽는데도 감사이다.
가련히 여길 자는 굴(함정)에 던져진 크리스천이 아니라,
도리어 비열수단의 수행으로써
일이 다 되는 줄로 여기는
세상의 수많은 박해자이다.
공중 앞에서 기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
이는 결코 위선이 아니다.
크리스천의 가장 아름다운 습관(a custom ; a habit)이다.
다니엘은 아마도 5~6세의 소아일 무렵,
이것을 어머니에게서 배웠으리라.
그리고 노령(老齡) 85세에 이르러,
이제 사자굴에 던져지려해도,
여전히 이 습관을 폐지할 수가 없었다.
미국 제 2차 대통령 존 애덤즈(John Adams →5권 233참조)가
후에 상원의원이 되어 의회 개의(開議) 중 워싱턴의 여사(旅舍)에 숙박하는 때,
밤마다 동료의원 앞에서 잠자리 위에 엎드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고성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것을 괴이히 여기는데 대하여, 대답하여 말했다.
‘이는 내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준, 이것을 폐할 수 없다’고.
제군도 역시 혹은 대신(장관)이 되고
, 혹은 박사로 된대도,
청년시대에 배운 기도의 습관을 게을리 하지 말라.
이는 세인 앞에 크리스천임을 발표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우리나라(일본)에도 허다한 신앙가가 있었다.
특히 가장 위대한 이는 니콜라이(니꼴라이) 주교였다.
그는 붕뀨원년(문구원년 1861-고명천황시대),
청춘 20몇 세(歲)로서 우리나라에 왔다.
그가 노국(Russia 1권 108)을 출발할 때,
혼약(an engagement)한 부인 있었다.
청년 니콜라이는 생각하기를
‘지금 두 부인이, 내 사랑을 구하고 있다,
그 한 사람은 사랑할 바 일본이다.
나는, 오히려 내 아내로서 이를 택하리라’고.
그리하여 그는 도보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하꼬다네에 와서 전도를 시작했다.
어느 때,
본국에서 ‘당신의 젊은 부인은 어찌할 것이오?’하고 물어온데 대하여,
대답해 말했다.
‘내 사랑스러운 아내(프라우)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고.
그는 마침내 그 일생을 우리나라(일본) 위해 바쳤다.
러일전쟁(1904-05년 일본과 러시아에 있었던 전쟁) (2권 34 역주 참조)이 발발하자,
노국 공사관으로부터 뒷일을 부탁받은 오스트리아 공사관은
깊이 그의 신원을 염려하여, 와서 관내의 일실에 피난할 것을 권했다.
그런데 니콜라이는 이것을 마다하고, 도리어 자기의 서재를 문 가까이로 옮겨,
행인의 조매(reviling)의 소리를 들으면서,
고요히 성서의 개역에 종사하고,
그 일생을 마쳤던 것이다.
그도 또한 확실히 근대의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이 이 시련에 처한 때,
그는 이미 85세의 무렵이었다.
그 후 2, 3년 못가서 그는 죽은 것으로 생각된다.
일찍이 저 홍안의 소년으로서
느부갓네살의 왕궁에 연행되어 간 이래,
시련에 또 시련 잇달아 그에게 임하고,
이제 바야흐로 무덤에 내려가는 지경에,
다시 세찬 시련에 조우한 것이다.
의심스럽다.
하나님은 그렇게 까지도 사랑하는 자를 괴롭히시는 것일까?
청년 시대에 이미 저 시련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계속했다면,
이미 이를 괴롭힐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고.
하지만 명백한 것은,
크리스천의 생애를 계속하기 백년이라면 백년,
그 시련은 그치지 않는 것이다.
청년 시대에 시작된 시련은,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치지 않는다.
아니 뒤에 이르러 더욱 더 세차져 오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명자로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다니엘의 생에는
이 시련에 이김으로써 그 최후의 인(印)이 쳐진 것이다.
그로서 만약 이때 물러섰다면,
그의 전생애는 욕되어졌으리라.
이 중대한 싸움에 있어서 패한 슬픈 실례는
철학자 칸트이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위대한 선생이었다.
하지만 그 만년의 행동은 애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이미 나이 70에 달하고, 그 대(大) 저술은 마쳐,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때였다.
대왕 프레데릭(프리드리히(2세-2권 33역주, 프리디리히 빌헬름 2세의 숙부) 죽고,
프레데릭 빌헬름 2세가 이를 이어,
대신(장관) 베르네르(뵐너)로 하여금 자유사상의 압박을 시작했다.
그 압박의 물결은 마침내
쾨니히베르히의 조칙(칙서 Royal edict)은 그에 대하여 내려졌다.
즉,
‘그대가 말하는 바는 프로시아(프로이센) 정부의 신앙과 다른 까닭에 침묵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리라’고.
그 때 만약 칸트 선생이 다니엘처럼,
진리로 인하여 나의 소신을 굽힐 수 없다고 대답했더라면,
독일 철학은 일변했으리라.
그런데 선생은 봉답(deferential reply)하여 이르기를.
‘신은 폐하에 대하여 악사(wrong doing)를 행했음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명이시라면,
향후(이후 hereafter) 종교에 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으리이다’고.
유감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그 점에 있어서 경모해야 할 이는 소크라테스였다.
그가 빠뜨려진 함정은 사자굴이 아니고,
독약의 복용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다니엘의 그것이었다.
그는 진리의 옹호 위해 독배를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독이 담겨지는 동안에도 제자와 함께 열심히 논의해 마지않았고,
드디어 각부(leg)에서 그 몸이 냉각되어 오자,
제자로 하여금 시험 삼아 이를 꼬집게 하고,
독물이 심장을 범할 때까지 태연하게 문답을 계속했다.
그리고 최후에 제자 크리튼에게 일언을 남기면서 이르기를,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 라고.
그 조용한(종용 peaceful ; undisturbed) 죽음의 모습을 읽고
누가 감격하지 않을 자 있으랴!
냉정한 베이컨(5권 224역주)마저,
이것을 읽는 때는 자기 자신이 못 박히는 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실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다음가는 것이었다.
그 같은 이는 참된 학자였다.
우리들 각자에게도 또한 그러한 시련이 임하려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나 자신의 문제로 하여 말한다.
내가 크리스천으로서의 생애의 최후에
대 시련이 내게 임하는 때에 있어서,
제군의 기도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원하기는 그 때,
나는 칸트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이기를.
원하기는 사자굴을 두려워하여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게 되기를.
스미르나(서미나)의 감독 폴리카프(폴류카르포스),
불로 화형 되려는 때,
그 적이 그를 유혹하여 이르기를
‘예수는 구주가 아니라고 하라. 그리하면 저 불이 소멸되리라’고.
폴리카프는 이에 대답했다.
‘나는 여러 해 예수의 풍성한 은혜에 젖어왔는데,
이제 이 노년에 이르러, 어찌 그를 거부할 수 있으랴.
저 불 무어랴!
저것은 옛날 엘리야를 하늘에 옮긴 불 수레요’라고.
그리하여 그는 감사하며 몸을 불 가운데 던져 죽었던 것이다.
우리들도 또 그를 본받았으면 한다.
노예언자 다니엘의 최후의 시련은,
모든 크리스천을 격려할 만한 위대한 교훈이다.
다니엘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그도 또한 모세, 엘리야와 한가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기구로서 쓰인 자이다.
그러므로 그 자신으로서 귀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존귀했던 것이다.
성서는
국민의 역사가 아니고 또 위인의 전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일하심)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성서 기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고,
자기 이름이 높여지는 것을 기피했다.
다니엘도, 역시 모세와 한 가지로
여호와의 장사(葬事)하는바 되어,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느니라’(신명기 34:6 참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는,
‘선지자 다니엘’(마태복음 24:15)이라고 칭하여,
그의 말을 인용하였다.
사람 된 자의 명예는 이상 더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내촌감삼의 (1920년 3월 5일 ‘성서지연구’1922년 11월 ‘초판’)을 참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