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7일 목요일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다니엘서의 연구상 커다란 난문제의 하나는,

다레이오스(성경역에는 다리오)

큐로스(성경역에는 고레스)와의 관계이다.

 

바벨론을 함락시킨 자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이고,

그보다 전에 다리오스라는 자 없었음은, 역사가 전하는 바이다.

 

그런데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고레스에 쓰이기 전에,

바벨론을 쳐서 그 나라를 얻은 다리오에게 쓰였다고 명기하는 것이다.

 

이에 있어서 성서와 역사와의 조화 여부가 생긴다.

 

오늘날까지 성서의 변호자인 지위에 선 학자들은 말한다.

 

다리오는 메대 왕이고, 고레스는 바사(페르시아)의 군주였다.

그리고 바벨론에 대신한 것은 바사(페르시아)가 아니다,

메대=바사 연립국이었던 것이다.

 

양국의 관계는,

마치 얼마 전까지 구주에 존립했었던 오흉국 같은 것이었다.

 

처음 메대 왕 다리오 먼저 바벨론을 쳐서 이를 함락시키고,

후에 얼마 아니하여 다리오 죽게 되어,

페르시아와 고레스(서양사에는 큐로스, 혹은 사이러스)

이것을 이어 받았던 것이다라고.

 

이 설명은 성서 이외에 그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 당부(적부 propriety)는 별도로 하고,

동양역사의 연구가 아직 매우 불충분한 때에 있어서,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곧 성서의 기사를 의심할 것 아니다.

앞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왕의 처벌을 받을 때는,

불 가운데 던져졌는데,

다니엘의 경우에는,

사자굴에 넣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근대의 문학자는,

여기서 다니엘서가 소설인 증거 있다고 한다.

 

즉 포로 된 4인 중,

3인은 불 가운데 던져진 명예스러운 역사를 가졌지만,

다니엘만은 어떤 사정상 이 명예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소설로서 불완전함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그가 사자굴에 던져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이를 보충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무릇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시련이 임하는 것이다.

 

다만 이 기사가 매우 흥미 있는 것은,

불 대신 사자로써 된 것이 페르시아인의 사상을 표현하는데 있다.

 

지금도 인도의 봄베이(Bombay-인도의 항구도시)지방에 잔존하는

페르시아의 옛 종교 즉 배화교(조로아스터교), 또는 파시교에 의하면,

불을 신성한 것으로써 이를 높이고,

죄인을 벌하여 불 대신 수류로써 했던 것이다.

 

바벨론 왕조 복멸 후,

다니엘 또는 그 참주자(중해자 slanderer)에 대한 처벌 방법이

화형에서 수형으로 이해된 것은,

잘 이 동안(同案)의 경위(소식)를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않는(폐지되는 일 없는) 율법’(6:8 참조)이라고 있음은,

정법학상 주의해야할 문자이다.

 

(6:8 그런즉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일단 발포(promulgation)된 율법은,

왕의 권력으로써 이를 변경할 수 없게 하여,

이로써 왕권에 제한을 붙이었던 것이다.

 

이는 아리안인종의 정치로 시작된 일로서,

소위 입헌정체의 남상(기원 the origin)이다.

 

우리나라(일본) 현하의 문제인 보통선거 같은 것도,

그 제 1보를 여기서 발한 것이다.

 

다니엘서 제 6장을 배움에 있어서 우리들은

페르시아(Persia)인과 일본인과의 관계에 주의치 않을 수 없다.

 

나는 일찍이 (G)로울린슨의 ‘7대 제국사,

페르시아 역사를 읽고서, ‘이것, 일본 역사로다라고 외친 일이 있었다.

 

제왕의 상태, 부인의 은연한 세력 등,

피차유사한 점이 아주 많이 있다.

 

그 옛 문학도 역시 그렇다.

야마도 민족(대화민족)이라 칭하여 오늘에 남아 있는 우리들 일본인은

2, 3의 인종이 혼합한 것으로서,

그 하나는 페르시아에서 온

아리안종(Arian; Aryan)이라는 것은 골상학자가 말하는 바이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다레이오스(다리오) 및 큐로스(고레스)를 비롯하여,

기타 그러한 비열한 방법으로써 다니엘을 제거하려한 그들 페르시아인은,

우리들의 조선과 같은 피를 가졌었으리라.

실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바벨론 제국은 이미 멸망했으나,

신왕 고레스(큐로스)는 개명(문명발전)의 군주였기에,

곧 적국 왕에게 쓰인 다니엘을 발탁(선발 selection)하여,

메대 바사국의 고관에 임명했다.

 

이때 다니엘은 이미 85세를 넘은 확삭한 노인이었다.

왕은 나라를 120주로 나누고, 그 각주에 지사를 둠과 동시에,

지사 위에 3인의 감독관을 세우고,

그 중 한 사람으로 특히 감독관 중의 감독관이 되게 했다.

 

그리고 이 지위에 임명 배치된 자가 유대인인 다니엘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명석(clearness)한 두뇌와 성실한 심의(마음과 뜻 heart)의 소유자였던

위인(偉人) 다니엘은,

영웅 고레스 하에 일약 최고위의 대신으로 된 것이다.

 

위에 엄정(strict fairness)한 감독관 있을 때,

아래 절로 원차의 소리가 생겨난다.

 

특히 다니엘은 본시 유다의 부로이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충실각근(결코 사심)이 없다.

이는 그 배하(부하) 제관리들이 감당하기 어렵게 여기는 일이었다.

 

그들은 왕으로부터 받는 급료로써 만족하지 못하고,

수회(뇌물 받음 bribe-taking)로써 부를 만들려하지만,

다니엘의 감독이 있어서, 이것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정이어서, 질투와 이욕이 서로 결탁,

어떻게 해서라도 노골(노인)인 외국인 다니엘을 매장해버리려는 생각은

모든 고등관의 심중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어떤 때,

친목회인지 무엇인지를 기회로 하여,

모의는 곧 성립되었다.

 

즉 이후 1개월 동안 왕 이외의 것에 기도를 하는 자는,

불경죄로 심문(trial for felony; interrogation)되어 사벌될 것이라는 규정이다.

 

나라의 제대관들, 이 의결로써 왕에게 다가섰다.

왕은 결코 악한 사람이 아니지만도, 그에게도 또한 허영심이 있어서,

1개월이라도 자신이 신으로서 취급받는 것을 기뻐하여 곧 이 법률에 서명했다.

그리하여 일은 정해졌던 것이다.

그들 반대자의 책략이 이렇게 나온 것은,

다니엘의 행위가 공사에 있어서

모두 일점의 틈(결점 defect)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팔십유오의 노옹(老翁)에 대하여 틈탈 데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가 매일 세 차례씩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가지였다.

 

그는 이것을 은밀한 곳에 있어서 하지 않고,

대신관저 중,

서방 예루살렘에 면하는 곳,

그 쪽 창을 열고,

공공연하게 뭇사람 앞에서 이것을 행했다.

 

그의 이 종교로 인하여,

그들은 다니엘을 빠뜨리려(잡으려) 했던 것이다.

일의 사연은 그의 귀에 달했다.

 

이때에 있어서,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난을 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으리라.

 

혹 잠시 기도를 폐지했더라면 어떠했을지?

 

그것은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불가능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

하루에 세 번씩의 기도를 폐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죽음만 같지 못하다는 것은 그의 의지였다.

 

혹은 아라비아의 사막을 거쳐, 몰래 도망쳤더라면 어떠했을지?

 

그것은 용자로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다.

용자(a brave man)는 무엇을 할 수 있대도,

적에게 뒤를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혹은 동지를 규합(valley)하여 모반했더라면 어떠했을지?

 

그것으로써 임금 측근의 영인간물(a crafty fellow 간악인)을 일소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무릇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는

혁명운동을 일으킬 수가 없다.

일단 메대 바사(Media-Persia)의 법률로써 발포된 이상,

이것을 깨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에 이르러서 다니엘이 취해야 할 길은 다만 하나였다.

 

그는 자기가 믿는 대로 행하고 자기 생명을 구주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 외에,

길을 알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정해졌다.

즉 그는 평상대로,

때가 옴과 함께 서방의 창을 열고 고성을 발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향해 기도하며, 또 찬미했다.

반대자들은 모두 이것을 엿보고 있었으리라.

그들은 그 현행범을 잡고 마음에 기뻐하며,

곧 왕에게로 다니엘을 데리고 가서 고소(suit)했다.

 

왕은 비로소 자기의 경솔한 태도를 깨달았지만도,

이미 어찌할 수가 없다.

 

만약 느부갓네살 왕이었다면,

가령 자기가 서명한 법률일지라도,

악법으로 인정하는 때면,

곧 이것을 파기했으리라.

 

그런데 아리아인종(Aryan ;Arian=Indo-European, Indo-Germanic)의 사상에는

한 가지 중대한 오류가 있다.

그들은 다수의 힘으로써 법률을 작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법률은 다수로서 만들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천연의 법칙인 것으로,

사람이 이것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왕은 다수의 제정으로 된 법률을 어떻게도 못하고,

마침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게 하고,

위에서 이에 봉인(sealing)했다.

 

반대자는 환성을 발하여 말했으리라.

 

다음 회에 계속 이어짐

 

*내촌감삼의 글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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