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과 수염소의 환상 2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그 때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13절 내가 들은즉 한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그 말하는 이에게 묻되 환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1] 누가 그 질문을 제기하는가?
"나는 한 거룩한 자가 이런 취지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 "또 다른 한 거룩한 자" 가 그를 뒤따랐다.
"오! 이 재난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천사들이 여기서는 "거룩한 자" (성도)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룩한 자들".
(4:13 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곧 "거룩한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유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천사들도 교회의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또 교회의 일을 묻는다.
여기서도 한 천사는 그 사건에 대해서 말했고,
또 다른 천사는 그것에 대해서 질문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품에 기대어 있던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물어보라는 질문을 베드로에게서 받았다.
(요 13:23-24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 누구에게 그 질문이 던져졌는가?
그는 "그 말을 한 팔모니(Palmoni "어떤 성도" 란 뜻)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어떤 성도" (한글 성경에는 그저 "다른 성도")가
다른 천사보다 더 이해력이 좋은 우월한 천사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한 말씀,"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도 한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자" 였다.
팔모니(Palmoni)란 말은 아마도 펠론 알모니(Pelon Almoni)의 결합어인 것 같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 "어떤 장소" 를 의미하는 것이다.
(룻 4: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왕하 6:8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그리스도는 아직 "이름이 없는 분" 이시었다.
"그러므로 너는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이 비밀(기묘자)인 것을 모르느냐?".
(삿 13: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많은 사람들은 그는 "비밀들의 숫자" 이라고 번역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무 것도 숨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을 그의 이름은 "놀라운 숫자" 라고 번역한다.
그는 "놀라운 자" (기본자)이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고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로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3)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되었다.
"매일의 희생 제사에 대한 이 환상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즉 금지령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와 같은 혹독한 금지령에 의해서
언제까지 영화로운 땅이 영화롭지 못한 땅으로 있게 될 것인가?
"망하게 하는 죄악" 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모든 거룩한 것을 타락시키는 그 엄청난 범죄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쥬피터의 신상이 성전 안에 세워져 있을 것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거룩한 사람과 거룩한 곳이 압제자의 "발 아래에 짓밟힐 것인가?".
천사들도 지상에 있는 교회의 번영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리고 천사들은 교회의 황폐가 종지부를 찍게 되기를 열망한다.
천사들은 다니엘을 만족케 하기 위해서,
이 재난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은 그 재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악인들의 막대기(권세)가" 비록 의인들의 땅에 올지라도,
"의인들의 땅에서 행세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 125: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그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었다.
"내게 관한 일이 끝나가도다".
(눅 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교회도 고난을 당하면 이렇게 위로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아는 일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대비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2)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주어진다.
(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거룩한 천사들에게 지시하신다.
왜냐하면 그들 천사들은 우리들의 동역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답변이 다니엘에게 주어졌다.
그 이유는 다니엘을 위해서 질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푸신다.
어떻게 응답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푸시는지 이제 살펴보자!
[1] 그리스도는 고난이 끝날 것을 그에게 확신시킨다.
그 고난은 "2천 3백 주야" 계속될 것이다.
2천 3백 일은 6년 3개월하고 약 18일이 된다.
그것은 셀류코스 왕국의 142년째,
6월 6일(조세푸스의 연대 추정에 따른다)에 대제사장이었던
메델라우스(Menelaus)에 의해서 초래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으로부터,
성전 숙청과 종교 재흥이 있었던 148년 9월 25일 (마카비상 4:52)까지가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고난의 시간을 날수로 계산하신다.
그것은 그들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고난 받으시기 때문이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
(2) 그리스도는 다니엘에게 앞으로 다가올 좋은 날을 확신시키신다.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성소의 정결함은 어떤 백성에게나 행복한 상징이라는 점을 주목하자.
사람이 개혁되기 시작한 때면,
곧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타락 때문에 징계로써
잠시 동안 그의 성소를 더럽히도록 허락하지만,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곧바로 성소를 청결케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를 청결케 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교회가 자신에게 흠 없이 나타나게 하실 것이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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