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두 며느리 3
성 경: [룻 1:12-14]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룻 1:12-13]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
나오미는 자부들이 만일 자신과 함께 가면 끝내 과부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점층적인 표현으로서 설득하고 있다.
즉,
(1) 자신의 나이나 처지를 감안할 때
전혀 재혼(계대 결혼)의 가망이나 의사가 없지만,
만일 재혼을 하여 남편이 있다손 치더라도
(2) 자신은 늙었으므로 도저히 자식의 잉태를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백보 가정하여 아이를 낳았다손 치더라도
(3) 그 아이가 계대 결혼법을 이해하고 지킬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2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터인데...,
그것이 어찌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냐 라는 의미를
강력히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당시 나오미는 이들이 모압 여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비록 이들이 이스라엘로 간다고 할지라도
계대 결혼 이외에는 도저히 재혼이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을 한 것 같다.
▶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 그녀가 며느리들을 설득시키는 마당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치신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오르바가 돌아간 후,
나오미가 룻을 설득할 때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15절)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보아,
분명코 나오미는 며느리들의 여호와 신앙을 확실히 확인하고자 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풍습과 언어가 다른 먼 나라로 간다는 것은,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 섬기던 신을 떠나
여호와의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로 간다는 것은
단순한 애정이나 의지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오미는 자신이 당한 고난과 슬픔의 원인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였다.
만일 나오미가 자기의 가정에 닥친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자연적인 일로 생각했다면,
비록 유다 땅에 흉년이 그쳤다는 소문을 들었을지라도
(6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돌아갈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9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도 그 재앙의 원인을 바로 깨닫지 못했던
애굽 왕 바로와는 좋은 대조가 된다.
[룻 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 고대 근동의 관습상 입맞춤의 포옹은,
기쁜 상봉의 순간이나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45: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출 18:7 모세가 나가서 그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아쉬운 이별의 순간에 주로 행하던 풍습이었다.
(창 31: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행 20: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물론 여기서는
어쩌면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모를 그 아쉬움 때문에 입맞춤한 것이다.
▶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여기서 '붙좇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크'는
'굳게 결합하다'(cleave). 또는 '붙들고 늘어지다'(cling)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주로 사용된 '다바크'란 동산의 용례를 살펴보면,
남녀의 결혼 관계에서,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리고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시 63: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뿐만 아니라 이 동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구속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의 언약 백성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실 때 역시 사용되었다.
(신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이를 통해 볼 때 '다바크'란 말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에 사용되었으며,
은총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 때도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룻이 그의 시어머니를 좇아간 것은
북받치는 애정과 충실한 마음으로 결코 이별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에 의해서였다.
아울러 나오미로 부터 주로 영향 받았을
여호와 신앙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 의해서였다(Driver, Brig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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