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5일 목요일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룻이 시모의 명대로 행하다

 

성 경: [3:6-11]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9)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10)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내 딸아 두려워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3: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 이 말은 룻이 시모 나오미의 명을 좇아

보아스에게 행한 모든 일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결론을 내려 놓고 이야기를 서술하는 표현이다.

 

 

[3: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여기서 보아스가 노적가리(the heap of grain, RSV)곁에 누운 때와

룻이 그의 발치에 들어가 누운 때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즉 보아스가 잠자리에 누워 깊이 잠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룻이 가만히 발치에 들어와 누웠을지라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8절을 주목해 볼 때 보아스가 발치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던 때는

한밤중에 이르러서였다.

 

(8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그러므로 수리아역(the Peshitta)은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마당에서 상쾌한 잠을 잘 때'라는 말을 첨가시켰던 것이다.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 혹자는 보아스의 이러한 행동이

단지 너무 시간이 늦어 다음날 아침 다시 일하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Matthew Henry).

 

그러나 이 해석은 약간 문제가 있다.

즉 다음날 아침부터 타작 마당이나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꾼들이지 보아스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일꾼들의 일이 한참일 즈음에 때때로 들에 나왔었던 것이다.

 

(2: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따라서 보아스가 곡식 단들을 쌓아둔 노적가리 곁에 누운 것은

노적가리를 지키고자 하는 특별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타작이 끝나고 보아스가 그곳에서 잠잘 것을

나오미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주인이 타작 마당에서

잠을 자는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Robinson, Thomson).

 

 

 

[3:8]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 우리는 본 구절의 장면을

눈에 선연히 그릴 수 있다.

 

즉 타작 후 베푼 잔치에서 배불리 먹고 마신 결과,

약간의 취기와 더불어 포만감에 젖어 깊이 잠들었던 보아스가

한밤중의 냉기로 인해 약간 몸을 뒤척거렸을 것이고,

그때 그는 발치에서 이상한 감촉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보아스는 놀라는 기색으로 당연히 그 물체를 확인해 보았을 터이고,

그 결과 발치에 누워 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을 것이다.

 

 

[3:9]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표현을

룻이 보아스의 보호를 받기 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Matthew Henry, Hervey, Atkinson).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심 같이,

 

(2: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은 보아스의 날개 아래서 보호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으로 룻이 보아스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를 받는 길은 결혼을 통해서였다.

 

후일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 관계를 맺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었다.

 

(16: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런데 결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 관계를 의미한다.

이런 견지에서 여기 룻은

구혼(求婚)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처럼 말했던 것이다.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 이것을 히브리 원문대로 직역하면

'당신은 기업 무를 자이므로'가 된다.

 

즉 룻은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기업을 무를 자'(a kinsman-redeemer, NIV)이기 때문에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율법에서도

 

(25:5-10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9)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

 

이스라엘 사회의 관습에서도 이 법은 강제성을 띠지는 않았다.

 

특히 '기업을 무르는 자'(고엘)는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수혼(嫂婚) 제도'에 의해 얽매이지 않는다.

 

(1:11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이 보아스에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고엘의 의무 외에 그녀 자신이

보아스와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10"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라는 말로 칭찬했던 것이다.

 

 

 

[3:10]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 이 말은 룻이 매우 젊은 여인이었던 만큼,

자신의 육신의 안목대로 젊은 남자를 좇을 수도 있었으나,

그리하지 아니하고 시모의 뜻을 좇아,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아 희생적인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보아스가 칭찬하는 말이다.

 

사실 보아스는 룻의 시부(媤父) 엘리멜렉의 동년배 나이로서,

당시 룻에게는 보아스가 아버지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 하도다 룻이

처음 베풀었던 인애는

자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시모를 모시기 위해 베들레헴에 왔던 것이며,

나중에 베풀었던 인애는 시모를 잘 공경할 뿐 아니라

젊은 과부로서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것이다(G.Gerleman).

 

비슷한 의미로서,

'처음 인애'는 죽은 남편에게 베풀었을 룻의 사랑이며,

'나중 인애'는 근족과 결혼함으로써 그 남편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남기고자 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Keil, Michaelis).

 

한편, 특별히 본 구절에서 보아스가

'인애'라는 말로 그녀의 현숙함을 표현했는데,

이 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인애'(仁愛)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며,

때로는 인간관계에서 끊을 수 없는 우정이나 사랑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보아스는 룻의 행위가 진실된 사랑에 근거했음을 칭찬했던 것이다.

 

 

[3:11] 내 딸아 두려워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 고엘이 되어줄 것을 겸손히 청하는

룻의 요구에 보아스는 일체의 변명이나 망설임 없이

이스라엘 관례에 따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룻의 인격에서 인간적 조건과 이해타산을 초월한 인애(헤세드)를 발견하고

자신도 이러한 인애로써 응답하였던 것이다.

 

 

현숙한 여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쉐트 하일'

본래 '힘있는 여자', '능력있는 여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감화력 있고 덕력(德力)있는 여자를 가리킨다.

 

한편 후일 잠언 기자는 현숙한 여인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1)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게 하며,

 

(31:11-19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

17)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 가난한 자에게 선을 행하고,

 

(31:20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3) 남편을 존귀케 만들며,

 

(31:23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며),

 

 

(4) 모든 언사에 지혜와 규모가 있고.

 

(31: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5)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아니하고,

 

(31:27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라 했다.

 

(31:30-31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이처럼 룻도 이 모든 조건을 구비하여 성읍에서 현숙한 여자로 소문이 나있었다.

 

(2: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나의 성읍 백성 - 이 말은 문자적으로

'내 백성의 온 문()'(all the gate of my people)을 의미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로 성문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19:1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23:10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34:20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성문에 이르러 그 고을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삼하 15: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8: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69:12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

 

특히 성문에서는 그 성읍의 장로들이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재판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21:19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래서 어떤 사람의 행위든지 성문에서 판결되어

사방으로 소문이 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31: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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