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일 금요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나오미와 동행하려는 룻

 

성 경: [1:15-18]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15]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 이것을 원문대로 문자적으로 옮기면

'그녀의 백성과 그녀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으니'가 된다.

 

다시 말해 오르바(Orpah)는 자기가 속한 백성에게로 갔을 뿐 아니라,

자기 백성이 섬기는 신()에게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볼 때 오르바는

단순히 그의 시어머니의 품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그모스,

 

(11:24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

 

또는 바알브올신을 섬기는 우상의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25: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따라서 본 구절에서 나오미가 룻에게 이 말을 한 것은

13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시모(媤母)에 대한 애정을 초월하여,

여호와를 향한 룻의 신앙을 시험해 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13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사실 고대 세계에서는 자기 종족이 섬기는 신을 버리는 것은

본토나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 이상으로 극히 어려웠다.

특히 부족 국가를 이루며 살던 당시에는 부족 신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흔하지 않았으므로,

나오미는 이것으로 룻의 신앙을 시험해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풀러(Thomas Fuller)박사는

야곱의 경우와 비교하여 역설적으로 재미있게 묘사했다.

 

,

 

"마치 하나님이 얍복 강가에서 야곱의 신앙을 꺾기 위해 애쓰신 것처럼,

여기서 나오미는 자부 룻의 올바른 결심을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Pulpit Commentary).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 이 말을 풀어 쓰면,

'너도 동서가 결단을 내린 것처럼,

결단을 내려 너의 백성과 너의 신()에게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했듯,

나오미의 이 말속에는

다분히 여호와를 향한 룻의 신앙을 시험코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렇다고 우리는 여기서

나오미(Naomi)가 오르바(Orpah)의 행동을

은근히 비난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사실 일반적인 도덕 수준에서 볼 때,

오르바도 나름대로 시모 나오미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룻(Ruth)의 각오와 신앙이 더욱 뛰어나고 위대했을 뿐이다.

 

따라서 나오미가 룻에게

 

"네 동서(오르바)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라고 말한 것은

다만 그 결과만을 언급한 것 뿐이다.

 

여하튼, 오르바는 떠나갔고 룻은 남았다.

이것은 마치 이스마엘은 떠나가고 이삭은 남은 것처럼,

 

(25: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그리고 에서는 떠나가고 야곱은 남은 것처럼,

 

(36: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하나님의 심오한 구속사적 경륜과 섭리의 결과였다.

 

 

 

[1: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이러한 룻의 고백은

진실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 되신다는 올바른 신앙에 근거해 있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 재혼하여 남은 여생 동안은

편안한 안식처를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9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자기의 부모, 친척, 그리고 신을 떠나 아무 희망이 없는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는 룻의 결심은

단순한 효성이나 애정을 초월하여 완전한 자기희생을 감수한

위대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은

나오미가 이방 우상의 나라에서도 그 신앙의 빛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여호와 신앙을 물려주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신앙적으로 며느리들을 교훈시켰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하거나 가르치는 자가 없었다면,

이처럼 룻이 훌륭한 믿음의 고백을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

 

룻의 신앙은 여기서 가장 확실하게 입증된다.

, 룻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는 이스라엘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서약의 형태로

 

'여호와'의 이름을 들어 맹세했다.

 

(삼상 3:17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25: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왕상 2:23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본래 서약에는 일반적으로 어떤 표적이나 의식이 동반되지만,

여기서는 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 서약을 범할 경우

스스로 벌을 받겠다는 엄숙한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여기서 룻이 맹세를 할 때

'여호와'(Jehovah)라는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란 성호는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사회에서만 사용하는 고유한 신()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왕상 19: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런데 이방인이었던 룻이 여기서 이 명칭을 사용했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룻은 나오미의 신앙을 따라 자기 나라 모압의 신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확실히 지니고 있었다.

 

(2) 룻은 자신이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성호로 맹세함으로써

이미 언약의 백성에 속해 있음을 고백했다.

 

이러한 룻의 신앙에 근거해 볼 때, 진정 그녀는

여기서 언약을 어긴 자에게 반드시 벌을 내리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엄숙히 맹세했다고 볼 수 있다.

 

 

 

[1: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

 

사실 홀로 된 나오미의 심정도 그동안 정든

두 며느리를 떠나보내는 것을 진정 원했겠는가?

 

다만 두 자부의 현세적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욕심은 일단 접어두고

그들을 돌려보내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시험적 형태를 띠게 되었고,

결국 룻만이 통과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두 자부(子婦)는 나오미의 의도를 따라

각자 자신의 행복의 길을 추구했다.

 

즉 오르바는 모압 땅 자신의 아비 집에서,

룻은 나오미의 의도를 따라 각자 자신의 행복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오미는 그 모두를 기쁘게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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