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상속, 신혼의 증인
성 경: [룻 4:1-2]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룻 4:1]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 성문에 올라가서 - 고대의 성문 어귀에는 대체로 넓은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새로운 소식을 논의했다.
(창 19:1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23:10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34:20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성문에 이르러 그 고을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삼하 15: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느 8: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시 69:12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
특별히 이곳은 성읍의 대표들, 특히 장로들이 백성들을 만나고
율법상의 판결을 내리던 곳으로 이용되던 장소였다.
(신 21:19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수 20:4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때에 따라서는 왕이 이곳에서 직접 백성들의 송사(訟事)를 맡아 다스리기도 했으며,
(삼하 19:8 이에 왕이 일어나서 성문에 앉으매 그들이 온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되, 보라, 왕이 성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온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왕상 22:10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자기들의 의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입구의 빈 곳에서 각각 자기 왕좌에 앉았고 모든 대언자들은 그들 앞에서 대언을 하더라;
렘 38:7 이제 왕의 집에 있던 내시들 가운데 하나인 이디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지하 감옥에 넣었다는 것을 들으니라. 그때에 왕이 베냐민의 성문 안에 앉아 있었으므로;
대하 32:6 전투 대장들을 세워 백성을 다스리게 하고 도시의 성문 거리에서 자기에게로 그들을 함께 모으며 위로하는 말로 그들에게 이르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가끔 이곳에서 가르치고 훈계하며 예언하기도 했다.
(왕하 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느 8: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렘 17:19-20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의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20)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36:10 바룩이 여호와의 집 윗뜰 곧 여호와의 집 새문 어귀의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있는 예레미야의 말을 낭독하여 모든 백성에게 들리니라).
그래서 장로와 함께 성문에 앉는 것은 큰 명예로 여겨졌고,
(잠 31:23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며),
또한 성읍의 유력한 자만이 성문 어귀에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아울러 성문에서 압제하는 일은 곧 재판의 부패를 의미하였다.
(욥 31:21 나를 도와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손을 들어 고아를 쳤던가;
잠 22:22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이처럼 성문은 성읍 백성들에게 있어서
사회.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더불어 성문이 성읍의 시장터라는 사실을 근거하여 볼 때,
(왕하 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곳은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장소였던 것 같다.
따라서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다는 사실은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율법상의 판결을 받기 위함이 틀림없다.
한편 여기서 '올라가서'라는 표현은
성문이 있는 높은 장소에 올라갔다기 보다(Pulpit Commentary)
장로들이 모여 판결하는 장소로 나아감을 의미한다(Keil).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은 어떤 중요한 지역을 중심으로 나아갈 때,
위치와는 상관없이 올라간다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왕하 17:3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고로 호세아가 신복하여 조공을 드리더니;
24: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스 7:13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사 36:1 히스기야 왕 십사 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 아무여 - 여기서 '아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펠로니 알모니'인데
문자적 번역은 힘들다. 영어로는 'such a one'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말은 보아스가 그렇게 불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명 보아스는 그 사람을 지명하여 그 이름으로 불렀을 것인데,
다만 본서의 저자가 이처럼 기록했을 뿐이다(Keil).
이와 같이 본서 저자가 첫 기업 무를 자의 이름을 기록치 않은 것은
아마도
(1) 룻의 남편이 될 뻔한 그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였거나
(2) 기록상 무심코 그자의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처럼 했으리라 추정된다.
▶ 이리로 와서 앉으라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통행하는 유일한 출입구였다.
따라서 성문 앞은 늘 일을 보기 위해 드나드는 사람들로 붐볐다.
따라서 만일 원하는 사람을 찾고자 한다면 이곳에서 거의 찾을 수 있었다.
보아스도 이곳 성문 어귀에 앉았다가 원하는 사람을 찾았고,
그에게 '와서 앉으라'고 했다.
이 말은 곧 어떤 문제를 놓고 정식 재판을 받자는
일종의 재판 청구의 말이었다.
[룻 4:2]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 장로 - '장로'(長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는
'턱수염'이란 의미를 지닌 '자켄'과
'백발'을 의미하는 '시브'가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장로라 하면 '자켄'이 사용되었으며,
구약에서는 '시브'가 한 번 언급되었다.
(스 5: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그리고 신약에서는 '나이 든' 또는 '연장자'를 의미하는
'프레스뷔테로스'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어원적인 의미를 종합해 보면
'장로'는 한 사회의 덕망있는 연장자로서
어떤 친족, 지파, 지역 사회의 생활 가운데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자들을 가리킨다.
(신 21: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에서 혹시 피살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 너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나가서 그 피살한 곳에서 사면에 있는 각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 그 피살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 곧 그 성읍의 장로들이 아직 부리우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고
4)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심지도 못하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올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자의 피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이스라엘 사회에서 장로들은 주로 백성들을 치리하는 일을 맡아
백성들 간에 다툼이나 법적인 분쟁이 생겼을 때
재판관 노릇을 함으로써 공의를 시행했다.
이외에도 지역 사회의 기강을 세우는 제반 업무 및, 중요한 정치, 종교,
사법적인 일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했으며
때로는 군사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수 8: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삼상 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뿐만 아니라 국가의 왕을 선택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삼상 8:4-5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삼하 3:17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러번 다윗으로 너희 임금 삼기를 구하였으니;
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이러한 장로들의 역할은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후
포로로 잡혀갔던 이방 땅에서도 계속되었다.
(렘 29: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었는데;
겔 8:1 제육년 유월 오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 십인을 청하여 - 여기서 장로 10인은 재판 사무를 완벽히 처리하기 위한
법적 성원수였던 것 같다(Cassel).
또는 충분한 증인의 수이기도 한데,
여하튼 장로 10인으로 구성된 재판은 전혀 하자가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후일 유대교는 이러한 전통을 따라
하나의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회원수를 장로 10인 이상으로 정했다.
▶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 본 구절에 이 말이 언급된 것은
보아스가 베들레헴 성읍의 유력자임을 실제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즉 보아스가 장로들을 소집하여 그들에게 앉을 자리를 정해 준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가 장로들 중의 지도자급임을 추정할수 있다(Matthew Henry).
무엇보다도 보아스는 유다 지파의 족장이었던 나손의 손자였으므로,
(민 7:12 제일일에 예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
그의 조부가 소유한 재산을 상속받았을 뿐 아니라,
가문의 지위도 물려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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