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에 정착한 나오미와 룻
성 경: [룻 1:19-22]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룻 1:19]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 성읍내에서 유력한 가문이었던,
(2절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엘리멜렉 가족이 먼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간 사실도
분명, 한 때의 큰 화제 거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어언 10년이 지난 후,
낯선 여인과 함께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 나오미의 등장은
분명 조그마한 성읍 베들레헴을 온통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소동케 하기에 충분히 재미난 화제꺼리 였음에 틀림없다.
▶ 이가 나오미냐 - 이 말은 단순히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놀라움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이방 여인인 며느리만을 데리고 빈손으로 처량하게 돌아온
나오미의 모습을 보고, 연민의 정을 느껴 발한 탄성이다.
따라서 이 말은 10여 년 전 고향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변한
나오미의 모습과 처지를 반영한 말이다.
(21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룻 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 '나오미'(Naomi)란 이름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본장의 전후 문맥과 어근을 살펴 볼 때
'감미로운 자', '은혜로운 자', '사랑스러운 자'란 의미를 지닌다.
반면에 '마라'(Mara)란 단어는 '괴로움', '쓰라림', '씀'을 의미한다.
(출 15: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이처럼 나오미가 자신을 '마라'라 불러 달라고 한 것은
그녀가 모압에서 생활하는 중, 극도의 슬픔과 고통을 맛보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괴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여기서 나오미가 특별히
하나님의 신(神)명칭을 '전능자'로 부르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전능자'(솨다이)란 신명칭은
택한 백성이 순종의 길로 걸어갈 때는 무한히 축복해 주시되,
어그러진 길로 갈 때는
어김없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 주는 명칭이다.
나오미도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사용한 듯하다.
[룻 1: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 이 말에 대한 해석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혹자는 엘리멜렉의 가정이 지방 귀족 가문으로서,
그들이 모압을 향해 떠나던 당시에는 베들레헴에서 널리 알려질 정도로
부유하였다고 주장한다(David Atkinson, LeonMoris).
(2) 어떤 학자는 나오미가 풍족하게 나갔다는 말은
재산이나 명예의 풍부가 아니라, 든든한 남편과 두 아들로
풍족하게 나갔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il,A.C.Hervey).
그런데 본장의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우리는 위의 두 가지 내용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나오미가 떠날 때 '풍족했다'는 표현을 쓴 것에 초점을 맞추면
분명히 사람뿐 아니라 재물도 포함된다.
그렇지만 나오미가 돌아올 때 남편과 자식들 없이 공수(空手)로 돌아온 것에
초점을 맞추면 두 번째의 주장도 타당하다.
사실 충족한 재산을 가지고 이방 땅에 가서
흉년이나 기타 재난으로 망하지 않았다면,
비록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을지라도
재물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생활한 형편을 보면,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남편과 자식들을 잃은 것 외에 재물까지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오미가 떠날 때 풍족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위의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 이 두 동사형은 서로 관련이 있다.
즉 '징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는
눈 밖에 난 자를 비천하게 만들어
결국 괴롭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괴롭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하나님의 징계로 괴로움을 당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한편 나오미가 본 구절에서 이 두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1) 자기의 고통스러움이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과
(2) 그 징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인다는
회개의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
[룻 1: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본 구절은 1장의 요약이자 2장의 서론으로서,
나오미와 룻의 귀환을 역사적 바탕 위에서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 팔레스틴(가나안) 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보리를 가을에 파종하여 이듬해 봄에 추수한다.
(2: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그리고 보리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밀 수확을 한다.
팔레스틴의 보리 추수는 보통 4월 말경에 시작되었으나
(수 3: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고원 지대에서는 5월 또는 6월 초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또한 보리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나는 주산물 중 하나로서
주로 말이나 노새의 먹이로 경작되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양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고 봉헌하기 위해 '초실절'(初實節)을 절기로 지킨다.
(레 23:9-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한편, 본 구절은 나오미가 자기 고향 땅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6절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곧바로 모압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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