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의 훈명, 타작마당의 애소 3
성 경: [룻 3:14-18]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 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번 되어 룻에게 이워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
16)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17) 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말라 하더이다
18)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룻 3:14]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 룻은 보아스의 말에 따라 새벽, 곧 성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없는 시간까지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 있었다.
이처럼 룻이 보아스의 발치에서 잠을 잔 것으로 보아
이 두 사람은 순결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보아스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전통을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즉 모리스(Morris)는 탈무드의 주석인 미쉬나(Mishna)를 인용하여
어떤 사람이 이방여인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의심을 받게 되면
그는 그 여인과 수혼(계대 결혼)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보아스는 기업 무르는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
매사에 신중을 기하여,
자신과 룻 사이에 부도덕한 일이 발생했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 모세 율법에 기록된 바
(신 25:5-6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계대 결혼의 권리를 이행코자 취한 룻의 행위는
결코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룻이 보아스의 말을 좇아 타인의 눈길을 피해
새벽 미명 어둑어둑할 때에 보아스 곁을 떠난 것은
단지 그녀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자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룻과 보아스가 함께 밤을 지새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1) 변명할 겨를도 없이 이방 여인 룻은 물론이요,
보아스의 평판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며,
(2) 무엇보다도 세도(勢道)있는 보아스의 가까운 친족되는 사람들이
쓸어진 가문의 이방 여인 룻과 보아스의 결합을 극구 방해하게 될
빌미를 주기 때문이었다(Rowley).
[룻 3:15] 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번 되어 룻에게 이워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
▶ 겉옷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테파하트'는
성경에서 사 3:22에 한 번 더 나오는데,
이는 '겉옷'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사 3:22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따라서 이는 3절에서 언급된 '옷'(시믈라)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이것이 영역본 KJV에서는 '수건'(veil)으로,
Niv와 Living Bible에서는 '어깨 걸치개'(shawl)로 각각 번역되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이 '겉옷'을 '커다란 어깨 걸치개'로 해석한다(Keil).
아무튼 본문에서 이 겉옷으로 보리를 싼 것으로 보아
단순한 겉옷이라기 보다는 외투에 걸쳐 덮는 '커다란 수건'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아마 이것으로 룻이 어깨를 덮으면서 동시에 얼굴을 가리고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 보리를 여섯 번 되어 - 몇몇 주석가들은 여기 여섯 번 된 것을
'오멜'로 생각한다(Goslinga, Matthew Henry).
'오멜'(Omer)은 에바의 1/10로서, 1 오멜은 약 2.3리터에 해당한다.
따라서 6오멜은 약 14리터(약 7되) 정도가 된다.
또 이와 달리 랍비들이나 탈굼역에 따르면,
여섯 번 된 것을 6 '세아'(Seah)로 생각한다.
'세아'는 '에바'(Ephah)의1/3로서, 1 세아는 약 7.6리터에 해당한다.
따라서 6세아는 약 46리터(약 24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리한 추론이다. 왜냐하면
(1) 이것은 룻이 혼자서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량이며,
(2) 또한 그만큼의 분량은 그녀의 겉옷으로 쌀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 모든 추론과 상관없이
보아스가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되어 주었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Cassel).
즉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를 줌으로써 자신의 말이 헛된 것이 아니라,
참말임을 확증시켜 주고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던 것이다.
아울러 '안식년 규례'에 따르면,
(출 23:10-11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 제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레 25:2-7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4) 제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5)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6)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7)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
20-22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21) 내가 명하여 제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 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22) 너희가 제팔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구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
신 15:1-15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
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
3)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인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치리할지라도 너는 치리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칠년 면제년이 가까웠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시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 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칠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를 인하여 내가 오늘날 이같이 네게 명하노라)
6년은 봉사와 수고의 기간이며 7년째는 안식과 해방의 순간이다.
따라서 보아스는 룻에게 6번 보리를 되어 줌으로써,
수고와 노역의 긴 기간이 이제 다 되었음을 암시한 듯하다.
비록 당시 룻은 히브리인들의 관습과 규례에
익숙치 못했으므로 그 의미를 잘 몰랐다고 해도,
룻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나오미는
즉각 그 상징적 의미를 알았던 것 같다.
(18절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룻 3:16]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 어떻게 되었느냐 - 본 구절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너는 누구인고?'(미아트)가 된다.
따라서 혹자는 나오미가 자기 집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어두워서 식별하기 어려웠으므로 이렇게 말했다고도 주장한다(Drusius).
그러나 룻이 들어왔을 때 나오미가 '내 딸아'라고 불렀으므로
이 구절은 자기 집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물음이 아님에 틀림없다.
한편 영역본 KJV는 이 말을 문자적으로
'너는 누구인고?'(Who art thou?)라고 직역했으며
Niv, Living Bible, RSV는 '어떻게 되었느냐?'(How did it go?)로 의역하였다.
그런데 이 말 다음에 바로 이어서
룻이 시모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야기한 것으로 보아
'어떻게 되었느냐'로 의역하는 편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룻 3:17] 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말라 하더이다
▶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 보아스도 분명 룻의 행동 배후에는
그녀의 시모 나오미의 세심한 배려와 조언이 있었음을 충분히 감지했을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도 나오미의 그러한 계획에 순순히 응할 용의가 있음을 암시해 주려 한 것 같다.
[룻 3:18]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룻으로부터 간밤에 일어난 일의 시종을 들은 나오미는
룻에 대한 보아스의 호의와 애정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의 신실한 인격으로 보아 조만간 약속을 이행하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다른 계획을 세우거나 안달할 때가 아님을 알았고,
오직 보아스의 조처를 기다리는 것이 최대로 현명한 방법임을 알았다.
따라서 나오미는 확신있는 목소리로 룻에게 가만히 기다리라고 일렀던 것이다.
이는 일의 결국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는 히브리적 신앙의 표현이다.
(잠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이처럼 인간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최선의 노력으로 다한 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쓸모없는 염려와 불안에서 해방되는 것이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라 할 수 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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