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공격
- 은악(隱惡)과 패배-
여호수아 7장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 가증한 물건에 대하여 죄를 범했다.
즉 유다 지파인 세라의 아들로 삽디의 아들인 갈미의 아들 아간,
가증한 물건을 취했다.
이로 해서, 여호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
여호수아,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고.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였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기를,
‘백성으로 하여금 다 올라가게 하지 않게끔 하소서.
다만 이, 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모든 백성을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그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니이다’. 라고.
이로 인하여 백성중 약 삼천 명 정도,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 아이 사람 앞에서 도주했다.
아이 사람, 그들 중 삼십륙 쯤 쳐 죽였다.
그들을 성문 앞에서 쫓아와 스바림에 이르고, 비탈에서 그들을 쳤다.
백성은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여호수아 그 옷을 찢고,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저물도록 있었다.
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그렇게 했다. 그들은 머리에 티끌을 무릅썼다.
여호수아는 이르기를,
‘아아 주 여호와여,
주, 무엇 때문에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들을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우리들을 멸망케 하시나이까?
우리들, 요단 저편에 안주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아 주여, 이스라엘이 이미 적에게 뒤(패하여 도주하는 꼴)를 보였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리이까?
가나안 사람 및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이 이것을 듣고,
우리를 쳐서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이 세상에서 끊으리이다.
주는 주의 크신 이름을 어찌 하시렵니까?’
여호와, 여호수아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라, 너, 어찌하여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은 죄를 범했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계약)을 깨뜨렸다.
그들은 가증한 것을 취했다.
도적질하고, 또 속여, 이것을 내 소유물 가운데 두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적에 대항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적에게 뒤를 보였다. 그들은 가증한 자(저주받은 자)로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가증한 것(저주받은 것)을 너희 중에서 없이하지 않으며,
나는 다시 너희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일어나 서라. 백성을 성결케 하라.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는 내일(명일)을 위해 스스로를 성결케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그 가증한 것을 너희 중에서 제해 버리기까지는,
너의 적에게 대적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 너희는 그 지파 따라 나오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제비로) 뽑은 지파는 그 족속대로 나오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뽑은 족속은, 그 가족대로 나오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뽑은 가족은 그 남자 한 사람 한 사람 나오라.
그리고 가증한 것(저주 받은 물건)을 가진 자로서 뽑힌 자는 불로 사르라.
그와 그의 소유물은 모두 불태우도록 하라.
이는 그가 여호와의 언약(계약)을 깨뜨리고, 이스라엘 중에서 미련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그 지파에 따라 나오게 했더니, 유대 지파가 뽑혔다.
유다 족속을 나오게 했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다.
삽디의 집 사람들을 나오게 했더니, 아간이 뽑혔다.
그는 유다지파 세라의 아들인 삽디의 아들 갈미의 아들이다.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기를,
‘내 아들아, 청컨대,
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칭찬(영광)을 돌리도록 하라.
그에게 참회하라.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실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이렇게 이렇게 했나이다.
즉 나는 노략물 중에서 바벨론(시날산)의 아름다운 의복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중량 오십 세겔의 금덩이 있음을 보고,
탐내어 이것을 취했나이다. 보십시오.
그것은 내 천막 가운데 땅에 묻어 감추어 두었습니다. 은은 그 밑에 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 사자를 보내니, 그들이 달려가 아간의 천막에 이르렀다.
그리고 보시라.
그것은 그의 천막 가운데 감취어 있었고 은은 그 밑에 있었다.
그들, 이것을 천막에서 취해 내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왔다.
이것을 여호와 앞에 두었다.
여호수아, 드디어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과 함께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의복과 금덩이, 및 그의 아들, 딸, 소, 나귀, 양, 천막 등
모두 그의 가진 것을 모두 다 취하여,
이것을 아골 골짜기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는가?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실 것이다’. 라고.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돌로서 그를 치고,
돌로 그것들도 치고, 불로 이를 태웠다.
그리고 그들,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아 올렸다.
이 무더기는 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그 격렬한 노를 그치셨다.
이로 말미암아, 그곳의 이름을 아골(고뇌)의 골짜기라 불렸다.
이 이름이 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약해(略解)―
선민의 역사는 도덕적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도덕적 원인은 곧 경우적 결과로써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여호와 앞에 죄를 범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이 앞에서 패했다.
병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술이 졸렬했기 때문이 아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깨뜨렸기 때문에 패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죄를 통회했다.
그들은 그들 중에서 가중한 것(저주받은 것)을 끊고, 스스로를 성결케 했다.
여기서 그들은 다시 일어서서 적에 대항 할 수 있었다.
죄는 패배를 초래하고,
회개는 승리를 불렀다(8장 참조).
패배의 도덕적 원인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대승은 그들에게 임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들 모두 하나님을 믿는 자의 역사이다.
우리들도 또한 죄를 범할 때, 인생의 전투에 있어서 패하고,
이것을 뉘우쳐 스스로를 바로 잡을 때(고쳐 새롭게 할 때) 이긴다.
우리들은 권력으로써 이길 수 없다. 지략으로써 승할 수 없다.
신앙으로써만, 잘 이길 수가 있다.
심령(속)을 깨끗이 하고, 하나님과 화합할 때,
우리들은 비로소 승리의 전진에 임할 수가 있다.
적은 먼저 이것을 자기 심령(속)에서 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밖(외부)의 적은 싸우지 않는대도 궤멸될 것이다.
환난이 우리에게 임하는 일이 있을 것인가?
우리들은 그 이학적 원인을 찾음과 동시에, 도덕적 원인을 구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실패는 회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우리들은 안(심령 속)에 가증한(저주받은)것을 감추어 두고 있지 않는지?
우리들은 애매모호한 중에, 명백한 공동을 묻어 두지나 않는지?
우리들 중에 아간은 없는지?
우리들은 불의 금과 은을 호주머니에 두고서,
하나님의 노를 자기 일신(몸)에 부르고 있지나 않는지?
이는 우리들이 환난에 조우한 때에,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해야할 문제이다.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욥기 5:6-)’
여기에 도덕적 원인이 있는 것이다.
여호와에게 매를 맞고, 자기의 죄를 발견하는 자는 복이다.
유대의 역사는 다른 것 아니다.
국민의 역사를 신앙적으로 해석한 것, 이것이다.
어느 국민의 역사라 할지라도, 이것을 신앙적으로 해석하면,
모두 유대의 역사 같은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단순히 정치사로서 볼 수가 있다. 전쟁사로서 볼 수가 있다.
경제사로서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또 신앙사로서 볼 수가 있다.
구약성서는 유대 민족의 신앙사이다.
그것이, 인류 진보의 기록으로서, 특히 귀한 것은 이것 때문이다.
칼라일(1권 182p 참조)이 말한 바 있다.
‘인류의 역사는 모두 성서이다’라고.
그렇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해석하여, 일본 역사도, 지나(1권 105p 참조)역사도,
유대 역사에 못하지 않은 성서이다.
다만 이것을 정치적으로 또는 전쟁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해석하는 자 많고,
신앙적으로 해석하는 자 없음을 슬퍼하는 바이다.
내촌감삼의 (1907년 11월 성서지연구)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