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6일 월요일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요단 강 도하 이적(異蹟)

 

성 경: [3:14-17]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3: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본 구절로부터 17절까지는

요단 강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으로 통과한

이적적인 사건이 간단명료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와같이 수사학적인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장식하지 않고 발생한 사건만을

간략히 기록한 것은 이 사건의 실제성을 더욱 분명히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본 사건이 일어난 때는

니산월(오늘날 태양력으로는 3, 4월경) 10일이었는데,

출애굽할 때에도 역시 니산(Nisan)월이었다.

 

이 무렵의 팔레스틴은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호수나 강들이 최고 수위(水位)를 기록한다.

이러한 때에 처자식과 가축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외에 다른 것으로써는 도저히 설명되어질 수 없다.

 

진정 출애굽 당시나 광야 생활 때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진입 때에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役事)가 나타났던 것이다.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16: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그리고 이는 향후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조(前兆)라 할 수 있다.

 

 

[3: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모맥 거두는 시기 - '모맥'(牟麥)'밀과 보리'를 뜻한다.

그런데 이 '모맥'이란 말은 히브리 맛소라 사본(MT)에는 나타나지 아니하고,

헬라어 70인역(LXX)에 나타난 말이다.

한편 아열대(亞熱帶) 기후에 속하는 여리고 지역은 태양력 4,5월경이 그 수확기이다.

 

언덕에 넘치더라 - 여기서 '언덕'(가다)은 퇴적 작용으로 생긴 강의 양쪽 자연 제방을 가리킨다.

 

또한 '넘친다'(말라 알)는 것은 단순히 물이 제방에 가득 차는 것을 뜻하지 않고

가득 차서 범람하는 것을 뜻한다.

(Keil & DelitzschCommentary, Pulpit Commentary).

 

실제로 모맥 거두는 시기 쯤에는

북쪽 헬몬 산의 눈이 녹을 뿐 아니라 또한 봄비가 내리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는 최고 수위에 오르게 되고 요단 강물은 크게 불어

그 깊이는 3-4m, 그 넓이는 30m 이상이 된다고 한다.

(J.P.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이처럼 전체 요단 강물이 만수가 되어 염해(사해)로 흘러가는 이 때에는

요단 강의 가장 좁은 나루터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방법으로 도강(渡江)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Rovinson).

더구나 처자식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두조차 못낼 일이었다(Keil).

 

그러나 이러한 완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그 도강(渡江)이 오직

하나님의 기적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Calvin).

 

발이 물가에 잠기자 - 강둑을 넘칠 정도의 거센 물결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를 메고 물속으로 담대히 들어간 제사장들의 용기는

아주 크다고 하겠다(Calvin).

 

그들의 이러한 용기는 오로지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3: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강물에 잠기자

곧 요단 강물은 그 흐름을 멈추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의 섭리임에 틀림없다.

 

한편 우리는 성경을 고찰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적을 이루시는데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자연을 이용한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한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이다.

 

전자의 예로 우리는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 중

개구리, ,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재앙,

 

(12:29-30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그리고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과

 

(10:12-15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15)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

 

일영표(日影表) 위의 해 그림자가 10도를 물러난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왕하 20:8-11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9)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 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 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日影表)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 나타난 요단 강물의 멈춤 사건에 대하여

자연을 이용한 기적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즉 아람 지방 근처에는 오늘날 까지도 큰 절벽이 있는데,

가끔 지진 등으로 인해 바위가 무너져 내려 요단 강물을 일시 정지하게 한다고 한다.

 

실제 그러한 일이 A.D. 126712월에 일어나 16시간,

A.D. 19277월에 일어나 21시간 30분 가량

요단 강물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J.P. Free, en-Nuwairi).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

당시의 요단 강물도 막았다는 주장을 편다.

이것 역시 가능한 주장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이적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본문의 내용상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자마자

방금까지도 넘실대며 흐르던 물이 곧 멈추며 뒤로 물러나 쌓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 및 가축 떼까지 건너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해 볼 때,

 

요단 강물의 멈춤 사건은

순수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이적 사건으로 봄이 좋다.

(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rory).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 - 흐르던 물이 그치고 쌓이는 바람에

일종의 역류(逆流) 현상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사르단'(Zarethan)은 여리고 북방 약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는 성읍인데,

후일 솔로몬이 성전을 만들 때 이곳에서 놋을 부어 기구를 만들었다.

 

(왕상 4:12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소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소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7:46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요단 가운데 이 말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단지 '강 가'(by the river)

서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강 바닥'(the bed of the river)에 서 있었다는 뜻이다(Keil).

 

마른 땅에 굳게 섰고 - 여기서 '마른 땅''물기 없는 땅'(dry ground)을 뜻한다.

 

(7:22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그리고 '굳게'라는 말은

'서다'(아마드)와 대등한 의미를 지닌 동사 ''에서 파생했는데,

이는 '확정짓다', '고정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자기가 선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지켰다는 말이다.

 

요단을 건너니라 - 원문에는 '완전히'(탐무)라는 단어의 수식을 받고 있다.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흐르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오직 믿음으로 요단강을 온전히 건너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를 도합 200만으로 추산할 때,

 

(26: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육십만 일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

 

그들이 그 행군의 폭을 1-2km정도로 했다면

요단 강을 건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반나절(half a day) 정도 걸렸으리라 추정된다.

(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II. p.47).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