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1일 토요일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단 지파의 라이스 정복
성 경: [삿 18:27-29]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흡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29)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30)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 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삿 18:27]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 본서 기자는 라이스 거주민들에 대해서 거듭 이와같은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7절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관하지 아니함이라).
아마도 이것은 본서 기자가 그러한 라이스 거민들을 습격한 단 지파의 잔인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인 듯해 보인다(Hervey).
한편, ' ∽ 을 만나'에 해당되는 '보알'은 어떤 사람을 갑자기 덮치는 것을 가리킨다.
(창 34:25 제삼일에 미쳐 그들이 고통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 중에 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 이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수행하던 성전(聖戰)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수 6: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8:19 그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 처소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11:11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단 지파는 처음 라이스를 향하여 출발할 때부터 이 전쟁을 '성전(聖戰)'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바,
(10절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라이스를 정복할 때도 철저히 그러한 의식으로 수행한 듯하다.
한편 이에 대하여 수 19:47에서는 '영토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수 19:47 그런데 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본서 기자는 여기서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적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라이스 당은 본래 단 지파의 영토가 아니므로 그들이 그렇게 잔인하게 정복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자신의 본래 기업을 차지하지도 못한 채, 약한 민족을 공격하는 침략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당시 단 지파의 타락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삿 18: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흡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본 구절에서 본서 기자는 다시 라이스의 지형적 여건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라이스에 대한 단의 뜻하지 아니한 침략이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 '베드 르홉'(Beth-rehob)이란 지명의 뜻은 '르홉의 집'이다.
민 13:21과 삼하 10:6에 따르면, 이 지명은 소바 왕 하닷에셀의 아비 르홉의 이름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민 13:21 이에 그들이 올라 가서 땅을 탐지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삼하 10: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미움이 된줄 알고 사람을 보내어 벧르홉 아람 사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과 마아가 왕과 그 사람 일천과 돕 사람 일만 이천을 고용한지라)
이곳은 아셀 지파의 지경(地境)인 훌레(Huleh) 평지 위쪽에 위치한 곳으로 이 골짜기를 통하여 흐르는 물은 요단 강에 이르게 된다.
▶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 여기서 '상종하다'에 해당하는 '다바르'는 '친밀히 교제하다'는 뜻 외에도 '사업상 교류하다'는 뜻이 있다.
이로 보아 라이스 거민들은 지형상 외부와 격리되어 있어 국가 간의 외교적 친선 도모나 경제적 교류 따위를 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삿 18:29]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 이곳 라이스는 가나안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7절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관하지 아니함이라).
그래서 이곳을 단이라고 칭한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의 전영토의 경계를 말할 때에,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란 말을 쓰게 되었다.
(20: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여기서 '브엘세바'는 팔레스틴 최남단에 위치한 유다 지파의 기업이다.
(수 15: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한편 이때부터 실제로 단 지파는 단 지역의 사람과 소라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로 분리되게 된 듯하다.
(11절 단 지파 가족 중 육백 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아무튼 이후로 성경에선 이들 지파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든데 역대기에도 단 지파에 속한 인물에 대해서는 한 명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Cassel).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도 열 두 지파 가운데 단 지파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7장).
결국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하고 이분(二分)되었던 단 지파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족보에서 조차 사라진 셈이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단 지파의 거족적인 우상숭배 탓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2024년 8월 30일 금요일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미가의 추격과 단 지파의 협박
성 경: [삿 18:21-26]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22)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낯을 돌이켜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24)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느냐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삿 18:21]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
단 지파는 다시 라이스 땅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들은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였는데 그것은 아마 미가와 그의 이웃들이 뒤에서 따라와 공격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조치였을 것이다.
(22절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 - 여기서 '어린아이들'에 해당되는 '하타프'는 실족할 수 있는 '연약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여자와 노인들 그리고 보호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
다음으로 '물품'에 해당되는 '케부다'는 시 45:13에서와 같이 '값진 것' 또는 '영화로운 것'을 의미한다.
(시 45:13 왕의 딸이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그런데 KJV에서는 이것을 '탈 것'(carriage)으로 번역하고 있고, 한글 개역 성경은 '물품'(goods)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혹자는 '케부다'라는 단어가 '무거운', '힘든'이라는 뜻의 '카베드'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귀중한 물건을 가리키기 보다는 무거운 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Cassel).
어쨌든, 이 물품들은 수레 같은 운반 수단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을 것이다.
[삿 18:22]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 미가는 제사장과 자기 신상이 없어진 것을 한참 후에 알고는 곧장 추격대를 조직하여 단 자손을 따라갔다.
배경은 다르지만 이 장면은 마치 라반이 야곱을 추적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 참조 : (창 31장)
특히 둘 다 가정의 수호신을 훔쳐 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창 31:19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아무튼 미가는 추적 길에 나선 지 얼마 안 되어 단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단 사람들이 어린아이들과 짐승들과 물품들로 인해 빨리 진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1절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삿 18: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낯을 돌이켜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 여기서 '모아가지고'에 해당하는 원어는 '도움을 호소하다'라는 뜻의 동사 '자아크'의 수동태로서 '함께 부름을 받다' 또는 '함께 모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라는 단 사람들의 질문의 뜻은
'우리가 너희를 부르지도 않았고 너희 도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데 모여왔느냐'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이것은 미가가 자신들의 뒤를 추격해 온 이유를 잘 알면서도 단 사람들이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삿 18:24]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느냐
▶ 나의 지은 신들 - 이처럼 미가는 은으로 만든 신상과 에봇, 가정의 수호신인 드라빔들을 가리켜 스스럼없이 '나의 신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17:4-5 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미가 그 은 이백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이는 참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치 못한 영적 무지의 발로(發露)로 볼 수 있다.
(7:2-3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삿 18: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 여기서 '노한 자들'이란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금방이라도 공격해 올 것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삼하 17:8 또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부친과 그 종자들은 용사라 저희는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병법에 익은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단 지파 사람들은 힘의 우위를 내세워 자신들이 미가의 소유물 뿐만 아니라 미가와 추격대 전원의 생명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삿 18: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 본래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없이 단지 자기 손으로 만든 신상을 소유하는 것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미가였기 때문에,
(17: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이처럼 그는 자기보다 강한 자와 대적하면서까지 신상을 되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사실 현세적인 복에 몰두했던 미가로서는 자신의 목숨에 대해 남다른 애착심을 가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