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1일 수요일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삼손의 최후

 

성 경: [16:28-31]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 삼손은 '엔학고레'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15: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그때의 심정으로 다시 한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본 구절에 기록된 삼손의 기도는 그가 사용한 하나님의 명칭 세 가지와 더불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1) (아도나이) : 이것은 삼손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주장하시는 분은, 곧 주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슬로 맨 블레셋이 주()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의 영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이 ''이심을 보여 준다.

 

(2) 여호와(예호와) : 이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뿐이심을 말하는 삼손의 고백을 발견할 수 있다.

 

(3) 하나님(하엘로힘) : 여기서 관사 ''가 붙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들 중의 신임을 나타낸다.

 

이로 볼 때 삼손은, 이 싸움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열방의 신들과의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 여기서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자카르''기억해 내기 위해 표를 해두다'는 뜻이다.

 

즉 삼손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으로 구별해 주신 것에 의거,

 

(13:2-5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다시금 자기를 권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의 장중(掌中)에 다시 한번 사로잡히기를 소원하는 삼손의 심경을 잘 나타내 준다.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 이러한 삼손의 기도는 마치 자신을 불구로 만든 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삼손이 정말로 그러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면 그것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지만 정작 여기서의 강조점은 '원수'인 블레셋에게 있다.

 

즉 삼손의 기도는 자신의 두 눈을 위해서 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고통을 준 원수들인 블레셋 족에 대하여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삼손의 민족적 정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16:29]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 삼손은 이처럼 다시 하나님께서 주신 완력으로 그 건물의 버팀대를 두 팔로 하나씩 끌어안고 밀기 시작했다.

기도 후에 잇따른 이러한 즉각적인 행동 개시는 확신에 찬 믿음의 발로이다.

 

 

[16:30]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 자기 한 몸을 던져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는 이러한 삼손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말한 에스더의 정신과 연결이 된다.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그리고 또 이러한 죽음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형이 된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삼손의 죽음을 자살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전사(戰死)였다.

 

즉 삼손은 최후의 장렬한 죽음으로써 블레셋의 신 다곤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 것이다(Keil).

 

 

[16:31]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 삼손은 독자(獨子)였다.

 

(13:2-3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때문에 여기서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라 함은 이스라엘 동포나 삼손의 부족들을 가리키는 것이다(Cundall).

 

한편 고대에는 죽은 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그들의 왕이나 지도자가 죽은 뒤 그 시신을 처치하는 태도나 방법에 따라 생전의 업적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본 구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손을 당대의 지도자로 예우를 다하기 위하여 가사(Gaza)의 무너진 블레셋 신전으로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갔음을 보게 된다.

 

한편 본 구절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무너진 선전에서 블레셋 인들의 시신들과 섞여 있는 삼손의 시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당시 그 주변의 블레셋 인들은 어떤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에 모두 도망가 버린 것 같다.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 이상으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삼손의 생애는 모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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