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의 맹활약 2
성 경: [삿 15: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16)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17)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삿 15: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 여기서 '나귀의 새 턱뼈'라는 것은 죽은 지 얼마 안된 나귀의 턱뼈를 가리킨다.
이것은 오래되고 마른 턱뼈보다 더 단단하여 부서지지 않으므로 당시의 위급한 상황에서 무기로 사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Lange).
▶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 실로 피 튀기는 대학살이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단 한 줄로 요약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포박된 삼손을 보고서 환호하며 뛰어오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14절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즉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오던 대적들은 순식간에 고통의 절규를 부르짖으며 죽어갔던 것이다.
[삿 15:16]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 삼손이 혼자 몸으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무찌르고서 이제 자신의 승리를 2행 시(詩)로 노래하는 장면이다.
이 시에서 '나귀'(하모르)와 '더미'(하모르)는 동의어로서 언어유희를 담은 시이다(Matthew Henry).
이것은 신 32:30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삼손이 자신의 승리로 인해 이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는 것이다.
[삿 15:17]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여기서 '라맛 레히'(Ramath -Lehi)는 '턱의 산'이라는 뜻이다.
삼손은 나귀의 턱뼈로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하여 나귀의 턱뼈를 던져 떨어진 곳을 '라맛 레히'라고 불렀던 것이다.
아마 9, 14절에 언급된 '레히'라는 지명도 이때부터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9 이에 블레셋 사람이 올라와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삿 15: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 이로 볼 때, 삼손이 블레셋 일천 명과 대항하여 싸울 때에,
(15절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유다 사람들 중에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삼손이 싸우는 동안 모두 도망가 버렸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일천 명과 상대하여 싸운 삼손은 이제 지치고 갈증이 나서 기진맥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갈증으로 인하여 죽음 직전에 이른 삼손은, 자칫 교만해지기 쉬운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만이 참 삶을 얻는다는 진리를 더욱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 이 때의 삼손은 마치 갈멜 산에서 바알의 제사장들을 이기고 이스라엘 광야에까지 도망갔던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하던 그러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그렇지만 그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자신을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1) 삼손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한 위대한 구원의 체험을 상기함과 동시에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시 30: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2) 그는 스스로를 종으로 표현하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고 계심을 고백했다.
그리고 이에 더불어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갔다.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3) 그는 자신의 죽음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을 더욱 두려워했다.
만일 삼손이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죽게 된다면 라맛 레히에서 빛나게 했던 하나님의 명예까지도 더럽히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시 23:3)을 간구하였던 것이다.
[삿 15: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 여기서 '한 우묵한 곳'에 해당하는 '함마크테쉬'는 '절구' 또는 '절구 형태로 된 구멍'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고대의 주석가들LXX, Vulgate, KJV, Luther)은 나귀 턱뼈(15-17절) 모양이 이 절구 모양과 비슷하므로 하나님께서 턱뼈의 우묵한 곳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란 단어에는 구체적인 대상을 나타내는 정관사가 붙어 있다는 점과 엔학고레라는 이름이 본서 저자의 시대에까지 알려져 있다는 사실 등을 볼 때,
고대 주석가들의 해석은 옳지 않음 같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나귀 턱뼈와 같은 모양의 뾰족한 절벽 사이 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오게 하여 삼손의 갈증을 해갈해 주셨을 것이다. (Keil, Lange, Studer).
이처럼 하나님께서 바위를 가르셔서 물이 흘러나오게 한 사건은 성경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출 17:6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민 20: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그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입증하는 이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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