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일 목요일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번제를 드리는 마노아 3

 

성 경: [13:23-25]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13: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 본 구절로 보아 마노아의 아내는 상당히 지혜로운 여인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공포심에 휩싸여 있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남편을 위로하였다.

 

그 위로의 내용인즉, 여호와께서는 전혀 자신들을 죽일 의향이 없으셨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그녀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제물을 열납 하셨으며, 이적을 베풀어 보이셨고, 자신들과 대화하셨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매우 타당한 추론이다.

일전에 기드온도 하나님을 뵈었지만 죽지 않았다.

 

(6:22-23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기 위한 목적에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을 뿐 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취하사 그 본체의 영광을 가리우고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6: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따라서 마노아와 그의 아내도 비록 하나님을 뵈었지만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일 - 여호와의 사자가 친히 현현(顯現)하신 것과,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셨으나 그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번제단 불꽃 이적을 행해 보이신 것 등을 가리킨다.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이런 말씀 - 삼손의 탄생을 예고해주신 것,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및 마노아의 아내가 지켜야 할 일,

 

(4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삼손의 양육법 등에 대하여 일러주신 것을 가리킨다.

 

(5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13: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손'이란 이름이 '태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세메쉬'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Goslinga, Cassel, Cundall, Matteww Henry, Wycliffe).

 

만일 이러한 해석을 따르면 이는 삼손이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여

광명을 주기 시작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5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그런데 혹자는 '삼손'이라는 이름이 '봉사하다'란 의미의 갈대아어 '쉐마쉬'에서 유래했다고도 주장한다(Hervey).

 

이 주장에 따르면 '삼손'이라는 이름은 그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사실과 연관된다. 따라서 이러한 추론도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한편 그밖에도 A. D.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나 카일(Keil)은 삼손이란 이름이 '강하다' 또는 '귀하게 여기다'란 의미를 지닌 '쉬므쉠'과 연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은 앞의 두 가지 주장보다 어원적, 역사적으로 그 근거가 빈약하다(Cassel).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 삼손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서 성장했다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사무엘이 성장할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았었으며,

 

(삼상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하나님과 사람들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 성장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소라 - 이곳은 처음에 유다 지파의 기업이었으나,

 

(15: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이후 단 지파에게로 넘어갔다.

 

(19:41 그 기업의 지경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그러나 왕국 시대에 이르러 유다의 세력이 강성해졌을 때 다시 그 땅은 유다 지파에게로 반환되었다.

 

(대하 11:10 소라와 아얄론과 헤브론이니 다 유다와 베냐민 땅에 있어 견고한 성읍이라).

 

이처럼 소라 땅이 두 지파의 기업으로 왔다 갔다 한 이유는 아마 그곳이 두 지파의 경계선에 위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은 사사시대 동안은 계속 단 지파의 기업으로 존재했었다.

 

한편 이곳 소라(Zorah)는 현대의 '사라'(Sorah)와 동일시되는 곳으로, 벧세메스 북쪽, 그리고 예루살렘 서쪽 약 20K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Goslinga, Garstang, Cundall).

에스다올 - 예루살렘 북서쪽 약 23Km 지점에 위치한 단 지파의 성읍이다.

 

(19:41 그 기업의 지경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마하네단 - 문자적으로 '단의 진'이란 뜻이다.

이곳은 삼손이 활동하며 생활 거점으로 삼은 곳으로 이주한 것 같다.

 

(16:31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이곳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부모들이 거주했던 '소라'와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며 조그마한 성읍일 것이다.

 

18:12에는 이곳이 기럇여아림 뒷편,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의 지역인 것으로 나와 있다.

 

(18:12 올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이러므로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그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 '감동하다'에 해당하는 '파암''강하게 밀다'또는 '몰아넣다'란 의미를 지닌다.

 

이 용어는 구약에서 '번민하다'란 의미로 두 번 사용되었던 적이 있으나,

 

(41:8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2:3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성령의 감동과 연관되어서는 본 구절에서 유일하게 한 번 사용되었다.

즉 여기서는 성령께서 삼손에게 강하게 임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Goslinga).

 

아무튼 이로써 삼손은 그 마음과 몸을 주장하시는 성령께 사로잡힌 바 되어,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역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개 성령의 감동은 지혜, 예언, 등 다양하게 나타나나 특히 삼손에게는 영웅적인 완력(腕力)으로 나타났다.

 

(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19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곳 사람 삼십 명을 쳐 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비 집으로 올라갔고;

 

15:4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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