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7일 화요일

하나님 임재의 처소인 회막

 

: [ 33:7-11]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11)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33: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장막을 취하여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 '회막'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 '회집(會集) 장소',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장막이란 뜻이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족속들이 그들의 신으로서 어떤 가견적 형상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영향받은 이스라엘 민족도 눈에 보이는 어떤 신앙의 상징물을 절실히 요구했을 것이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후 모세는 시내 산상에서 계시 받은 성막(25:9) 짓기 ,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성막의 역할을 대신할 임시 장막의 필요성을 긴급히 느꼈는데, 이에 그는 이스라엘 바깥에 장막을 치고 장막을 일컬어 회막이라 명명한 것이다.

 

한편 명칭은 후에 세워진 정식 성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30:18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사이에 두고 속에 물을 담으라,

26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39: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고;

 

40:2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회막을 세우고,

34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바깥 회막으로 - 회막이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 회막이 바깥에 있게 됨에 따라 진은 회막과 구별되는 세속적인 , 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진으로부터 나와, 회막으로 나아가야 하는 수고가 요구되었다.

 

 

 

[ 33: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 이것은 존경과 경외를 나타내는 동작으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는 이를 듣는 백성들이 모두 일어섰다.

 

( 27:12-13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8:5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 33: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구름 기둥 -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상징물이다.

 

한편 모세가 밖에 설치한 회막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지시하신 정식 성막이 아니고, 금송아지 숭배 사건 임시로 지은 것인데.

 

여기에도 구름 기둥이 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지은 회막 가운데라도 임재 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참으로 섬기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장소를 막론하고 찾아와 함께 해주심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 내적신령과 진정부터 갖추어야 하겠다.

 

( 4:20-24 우리 조상들은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말을 믿으라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 33:10]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 구름 기둥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앞서가며 인도하던 것이다.

 

(13:21-22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따라서 백성들이 비록 멀리 떨어져서나마 구름 기둥이 다시금 회막 위에 나타난 것올 보았다는 것은 감격스런 일이 아닐 없었을 것이다.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 여기서 '경배하다' '솨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에도 똑같이 사용된 말이다.

 

(32: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4:31) 금송아지 다시 하나님. 순으로 경배의 대상을 달리 하였던 것이다.

 

(4: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그러나 백성들이 회막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며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감'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 33:11]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친구 -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당신의 동료로 대하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이 '친구' 칭하신 사람으로서는 모세 외에 아브라함이 있으나,

 

(대하 20: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땅으로 주의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41:8 그러나 나의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아브라함의 자손아)

 

이때 사용된 ''(아하브) '애정을 갖다', '좋아하다'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사랑스런 친구', '애인' 등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스런 벗으로 대한데 반해, 모세는 동료로서 대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환'( 3:5)이라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있다.

 

대면하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님 엘 파님' 문자적 뜻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face to face)이다.

 

그렇지만 말은 하나님이 실제로 모세와 얼굴과 얼굴로 대면한 것을 가리키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우림 혹은 선지자를 통해,

 

(삼상 28: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데 비해,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인간과 같은 손발이나 얼굴 등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20 가라사대 네가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자가 없음이니라;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따라서 말은 만큼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교제를 나눴다는 뜻이다. 실로 모세는 다른 어떤 선지자들도 누리지 못할 영광스럽고 친밀한 교제를 하나님과 누린 자였다.

 

( 12: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롤 담당하지 않고 이처럼 여호수아가 관리한 까닭은 회막이 임시 성소이기 때문이며

 

(1) 아론은 금송아지 숭배의 직접적인 책임자(32:1-6)이기 때문에,

 

(32:1-6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모세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3) 모든 백성이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일종의 문책으로 당분간 제사장직을 맡지 못한 것으로 있다.

 

한편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 이후 이스라엘을 이끈 에브라임 사람 여호수아가

 

( 13:8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16 이는 모세가 땅을 탐지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

 

회막을 떠나지 않고 봉사한 일은,

 

엘리 이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에브라임 출신의 사무엘이 성소를 떠나지 않은 사실과 유사하다.

 

(삼상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3: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있는 여호와의 안에 누웠더니)

 

이처럼 사람이 같이 성소를 떠나지 않고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자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부터 훈련되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청년 여호수아 - 무렵 여호수아의 나이는 39 가량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14:7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그런데 '청년'이라는 말이 굳이 '여호수아' 수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서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먼저 클라크(Adam Clarke) '청년'이라는 히브리어 '나아르' '독신' 또는 '미혼자'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였다.

 

이에 반해 안스워스(Answorth) '청년' '수종자' 대한 일반적 호칭으로 보고 있다.

 

(24: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14:24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칼빈 (Calvin) 나이 많은 장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젊은 여호수아를 회막 관리자로 임명한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청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가지 견해 가장 타당한 것은 번째 견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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