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 애굽의 전쟁
성 경: [단 11:5-9] 남방의 왕들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7)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단 11:5] 남방의 왕들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헬라 제국에서 분열된 네 왕조 중,
남방 왕조인 톨레미 왕조와
북방 왕조인 셀류쿠스 왕조 사이의
전쟁과 그에 부가되는 여러 사건의 예언이
20절까지 보다 상세하게 예언된다.
한편 이 예언은 B.C. 250-190년 사이에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 남방의 왕들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
여기서 '남방의 왕'은
이집트 지역을 통치하던 톨레미 1세(Ptolemy I)로서
'그가 강하다'는 것은
이 톨레미 왕조가 B.C. 3C 내내 팔레스틴에 대한
치리권을 가졌던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한
'그 군들 중의 하나'는
분열된 네 왕조 중의 하나를 지시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시리아 왕국의 초대 왕인
셀류쿠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를 가리킨다.
한편 그의 권세가 심히 커진다는 것은
본래 톨레미 왕조보다 미약한 세력으로 출발한 그가 이후 지속적인 정복 사역으로
B.C. 200년경 톨레미 왕조의 통치하에 있던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인도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막강한 세력으로 군림하게 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단 11: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본 구절은 셀류쿠스 왕조와 톨레미 왕조가
서로 동맹을 맺기 위해 시도했던 정략결혼이
실패할 것임을 언급한 것이다.
곧 본 구절의 사건은 B.C. 250년 톨레미 2세인 필라델푸스(Philadelphus)가
그의 '남방 왕의 딸' 베레네스(Berenice)를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인
'북방 왕' 데오스(Theos,)와 결혼시켰으나,
데오스의 전처인 라오디스(Laodice)가
베레네스와 그녀의 아이를 살해하고
결국에는 안티오쿠스 2세마저 독살시킴으로써
이 정략결혼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 실권을 장악한 라오디스가
베레네스의 동조자들을 제거하고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켰던 바,
그가 바로 셀류쿠스 2세인
셀류쿠스 칼리니쿠스(Seleucus Callinicus)이다.
[단 11:7-8]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본문은 6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곧 본문은 부왕 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톨레미 3세 유엘게테스(Euergetes)가
('공주의 본 족속에서 난 자 중의 하나')
B.C. 246년, 누이 베레네스의 복수를 위해
북방 왕조 곧 시리아의 셀류쿠스 칼리니쿠스를 공격하여
6년간(B.C. 246-241) 전쟁을 수행한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이 전쟁에서 그는
자기 누이를 살해한 라오디스를 죽여
누이의 원수를 갚고 수많은 전리품,
곧 4,000달란트의 금과
2500여개의 우상들을 이집트로 탈취해 갔다.
한편 이러한 전리품은 이미 바사의 캄비세스가
B.C. 524년 애굽에서 탈취해갔던 것들로 보여진다.
특별히 우상(신상)의 탈취는
고대에 있어 정복자들의 일반적인 관습으로
자기들 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의도에 기인한 것이다.
▶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
B.C. 240년 톨레미 3세가
셀류쿠스 2세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단 11: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
북방 곧 시리아의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가
7, 8절에 언급된
톨레미 3세 유엘게테스의 시리아 침공을 보복하기 위해
평화 조약을 파기하고 남방의 애굽을 침공한 사실을 가리킨다.
(7-8절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셀류쿠스 2세는 오히려
톨레미 3세에게 대패한 후
소수의 남은 군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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