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진들 10
성 경: [히 11:38-40]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 본문은 '세상이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라는 의미이다(the world was not worthy of them, NIV).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핍박과 환난이 문제시 될 수 없었으며
세상적인 부귀와 영화가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 본절은 시 106:4(LXX)을
인용한 것으로
(시 106:4 오 주여,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총으로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아보사)
박해가 있을 때 광야나 산, 혹은 굴 속으로 피신하는 일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왕상 18:4 이세벨이 주의 대언자들을 끊어 버릴 때에 오바댜가 대언자 백 명을 데려다가 그들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그들에게 빵과 물을 먹였더라,
13 이세벨이 주의 대언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주의 대언자들 중에서 백 명을 취하여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그들에게 빵과 물을 먹인 일 즉 내가 행한 일을 내 주께서 듣지 아니하였나이까?;
19:1-4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또한 그가 어떻게 그 모든 대언자들을 칼로 죽였는지 이세벨에게 고하니
2) 이에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네 생명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을 내리고 더욱 더 내리기를 원하노라, 하므로
3) 그가 그것을 보고 일어나 자기 생명을 구하려고 가서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 종을 거기에 남겨 두니라.
4) 그러나 그가 스스로 하룻길을 가서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에 이르러 그 밑에 앉아 죽기를 스스로 구하여 이르되, 오 주여, 이제 충분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시옵소서. 내가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고,
9 엘리야가 거기로 가서 굴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고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하매).
저자는 이러한 인용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이 땅에서 안락함과 평안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보상은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된다(Bruce).
[히 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
'이 사람들이'라는 말은 32-33절에서 언급된 인물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32-33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와 또 다윗과 사무엘과 대언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라.
33) 그들이 믿음을 통해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며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하신 것들을 얻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본장에서 언급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킨다(Michel, Moffatt).
이들은 모두 다 성경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증거를 받은 자들이었다.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5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그들이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다.
이 말은 33절의 '약속'을 받지도 못하였다.
이 말은 33절의 '약속을 받기도 하며'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약속'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에팡겔리안'('그 약속')으로
단수로 표현된 반면에 33절의 '약속'은 '에팡겔리온'('약속들')으로 복수이다.
따라서 33절의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하신 특정한 약속들로서
그러한 약속들은 그들의 생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었다.
그러나 본절의 '그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될
'영원한 기업의 약속'(9:15)으로서 영원한 하늘나라의 구현을 가리킨다.
(9:15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첫 상속 언약 아래 있던 범죄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자가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이다(13절, Peterson).
구약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다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속에서 살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교훈하는
실제적인 본보기가 되었다(Lane).
[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앞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구약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이 약속을 받지 못한 것은
그들의 믿음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기 때문이었다.
'더 좋은 것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레이트톤 티'는 부정 대명사로서
더 좋은 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온전케 되는 구원을 시사한다(Morris).
구약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구원의 온전함을 경험할 수 없었으나
이제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약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이나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은 다같이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분 앞에 자유로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Bruce).
이것은 구약 시대의
믿음의 인물들의 구원이나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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