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4일 금요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신앙 제일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개역개정, 한글역)

 

 

신앙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브리서 11:6일역)

 

세상에 신앙 없는 그리스도교 만큼 가치 없는 것은 없다.

그리고 오늘의 이른 바 그리스도교는 대개는 그것이다.

즉 신앙 없는 그리스도교이다.

 

주 예수께서

 

너희는 표징과 신기한 일등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4:48 참조)라고 하신

사회사업교이다.

 

미국에 있어서는 종교 및 사회봉사라고 칭하여,

종교 즉 그리스도교는 사회사업의 별명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남녀 청년회 같은 것 그 좋은 실례인 것으로서,

이에 신앙의 볼 것은 없고,

그 주요한 사업은,

육과 이 세상의 일에 관하여 청년 남녀를 지도 원조하는 일이다.

 

지금은 그리스도교 교회에 있어서 마저,

사회사업으로 나타나지 않는 신앙은 천시되고,

신앙은 단지 사회사업의 동력으로서 징발(요구 requisition)되는데 지나지 않는다.

사회사업이 아니면 이지적 설명이다.

오늘의 이른바 그리스도교 신학은,

신앙 없이 그리스도교를 자기와 타인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기적은 믿는데 신앙을 요구한다.

 

그리고 근대인은 믿지 않고서 그리스도 신자 되고자 하는 까닭에,

여기서 근대 신학의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른바 고등비평(1369면 역주)이라는 것은,

결국 이에 돌아가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서 신자 되려는 무리한 주문이,

신앙 없는 많은 학도를 이 길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들의 손에 의해 소아(小兒)의 신앙으로서 읽어 알 수 있는 일,

지극히 쉬운 정서가,

박사(博士)() 획득 위한 연구 자료로 된 것이다.

 

그들은 실로 닥터 죤슨이 말한 황소에게서 젖을 짜려는 자로서,

불가능을 행하고 있는 자이다.

그들의 저서 백천책을 독파하여,

영혼에 얻는 바는 영()이다.

그들은 신앙으로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 바 비평적 결론으로서 신앙의 대용을 삼게 하려 한 때문이다.

 

구미인 자신이 말한다,

오늘의 신학교에서 배우고 신앙을 버리지 않는 자는 신앙의 융자이다라고.

 

실지로, 오늘의 그리스도교 신학교만큼 신앙이 없는 곳은 없고,

신학생만큼 신앙 없는 신자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서,

우리들은 사업과 학구를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이 없는 그리스도교를 물리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신앙에 의하지 않고서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일은 신앙에 의하지 않고서 알 수 없는 것이다.

 

종교가 만약 신앙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람에게 지식과 활동이 필요한 것 같이,

그것 이상으로 참된 하나님과 그 능력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신앙, 신앙, 신앙,

신앙 제일.

기타는 그 다음이다.

예수께서 무엇보다도 신앙을 귀애하신 것으로 이것을 알 수 있다.

 

주여, 내 믿음을 더하게 하옵소서이다.

 

*내촌감삼의 (19298성서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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