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7일 일요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어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다

(헛됨의 헛됨)

 

 

전도서 11

한글역 및 기타는 순서를 뒤로하여 2절로 하고 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어 모든 것이 헛되도다'

 

실로 이 세상의 일은 모두 헛되다.

 

재화도 헛되다.

지식도 헛되다.

명예도 헛되다.

 

가장 성공 많은 생애를 보낸 사람이라고 해도,

한번은 반드시 탄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재화는 부식되고,

지식은 낡아지고,

명예도 손상된다.

 

'나니와의 일은 꿈의 세상', 도요다이꼬우의 영화의 일생도,

이또우히로부미(이등박문)공의 행운의 연속도,

그 종국은 헛된 것이었다.

 

'헛되고 헛되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을 생각할 때,

누구나 세상을 염세하지 않는 자는 없는 것이다.

 

뉴턴(1105p)의 인력설도 지금은 의심되고,

스펜서(19, 272p )의 진화철학도 지금은 불고(不告)되고,

일본국의 박사도, 그 수 거의 천에 달하여,

박사란, 반드시 학해의 권위일수는 없음을 이르렀다.

 

전도자는 말했다.

 

'나는 많은 지식을 얻었다. 내 마음은 지혜와 지식을 많이 얻었다.

나는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하고,

미친 것(광망)과 미련한 것(우치)을 알고자했으나,

이것도 또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 알았노라'(1:16-17)

 

부자 되려고 하는 것만이 미친 짓이며,

어리석은 일인 것은 아니다.

 

학자 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의 일치고 하나도 영구히 심령을 만족케 하는 것은 없다.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은 미신이다.

 

사람은 악마에게 속아,

그림자를 뒤따라가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

부귀는 헛됨이다.

위계훈장 모두 헛됨이다.

미술은 헛됨이다.

예술은 헛됨이다.

 

사업위한 사업, 학문위한 학문, 예술위한 예술이라고 한다.

그런 사업과 학문과 예술은 모두 헛됨이다.

이들은 사람이 죽게 된 때에 그의 영혼에 만족을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생은 절대적으로 실망해야 할까?

세상은 전연 이를 염세해야할까?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만물 모두 헛된데,

오직 하난 헛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이다.

 

아이작 워츠가 노래한 것 같이

 

In the Cross of Christ I glory,

Towering o'er the wrecks of Time.

 

시간()의 잔괴 위에 우뚝 솟아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는 자랑하리라. 이다.

 

여기에 영구한 보배가 있다.

영구한 지혜가 있다.

영구한 영광이 있다.

 

이에 참여(관계)할 때,

사람은 그 영구성의 분여에 참여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야말로,

미신이 아니다.

교회가 강요하는 교의가 아니다.

과거 1,900년간의 인류의 실험이다.

 

성서에

 

'보라 내가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로마서 9:33 한글 역)

있음은 이것이다.

 

이 세상이 보고, 그리고 부딪히는 돌, 즉 대의문시하는 것,

그것이 만세에 요동치 않는 반석인 것으로서,

이에 신뢰하는 자는 최후의 심판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즉 수치를 자취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시온에 심겨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 불후부동인 것으로서,

그에게 의지해서만 영생은 있는 것이다.

사람이 헛됨을 면하고자 할 때, 다만 이 한길 있을 뿐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지만 오직 하나 헛되지 않은 것이 있다.

다만 하나 영구히 실재하는 것이 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으로써,

십자가는 그 사랑의 표호이시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물은 패괴(5권 미색인)로 돌아가는 때에

이것만은 남는 것이다.

 

*내촌감삼의 (19157'성서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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