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일 금요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거라사의 광인 2

 

성 경: [8:31-39]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32) 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34)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35)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36)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37)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38)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8: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무저갱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뷔쏜'은 부정 접두어 '''깊은'의 의미를 가진 '바두스'의 합성어로 바닥이 없는 깊은 장소를 뜻한다.

 

이는 끝없이 깊은 곳이며 마귀가 일시적으로 갇힐 곳이다.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0: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또 마 25:41에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이라 표현되어 있다.

 

 

[8:32] 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

 

5:13에 의하면 이 돼지 떼는 무려 2,000마리에 달했다.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귀신은 이제 예수의 명을 거역하고 그 사람에게 계속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귀신은 자신이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예수는 이를 허락하셨다.

 

결국 2,000마리에 달하는 돼지떼의 몰사로 말미암아

돼지 떼의 주인에게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돌아갔고

이 사실은 혹자들에게 도의적 문제를 야기 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한 사람의 영혼이 2,000마리의 돼지 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다는 점이다.

 

예수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8: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 사건 발생 지점은 분명히 호수에 근접한 곳이었다.

 

갈릴리 호수 동편에는 급한 비탈이 있고 비탈 위에는 평지로 되어 있어

그곳에서 돼지를 먹였다.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자 이천여 마리에 달하는 돼지 떼가

비탈길을 내리달아 갈릴리 호수에 빠져 몰사(沒死)하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에 대해서 혹자는 왜 예수께서 귀신들을 돼지 떼에 들여보내

다 몰사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하셨느냐고 문제를 제기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앞절 주석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어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이천 마리의 돼지는 오히려 하찮은 것이라 할 수 있다.

 

(2) 귀신들이 돼지 떼와 함께 물에 빠져 죽음으로써 그 귀신들에 붙잡혀 무수한 고통을 당할 제2, 3의 피해자는 없을 수 있게 되었다.

 

(3) 율법상 돼지는 그 고기를 식탁에 올릴 수없는 부정한 짐승으로 간주되었다.

 

(11:7-8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8)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따라서 이들을 몰사시킨 예수의 처분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4) 예수께서는 온 우주의 주권자로서 세상에 있는 사물을 임의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과 권능이 있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예수의 판단과 행위는 정당하며 실수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8:34]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치던 자들이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돼지는 부정(unclean)한 것으로 규정되었고

물론 먹지도 않았다(11:7).

 

또한 탈무드에는 '돼지를 기르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라'는 격언이 있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 주변에는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돼지를 치던 자들은 이방인으로 짐작된다.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 돼지를 치던 자들은 예수와 귀신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목격(目擊)하고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치던 돼지 떼의 손실에 대해 당황했을 것이고 또 다른 한편 예수의 권능에 대해 심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도망'하였다는 표현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들은 이 신기하고도 두려움을 느낄 만큼 놀라운 사건에 대해

동리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8:35]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 옷을 입었다 함은 그가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뜻한다.

 

그는 완전한 정상인이 되어 예수의 발 아래 앉아 있었다.

아마 그 사람은 자기를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려 주신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의 경배를 드렸을 것이다.

 

불과 조금전만 해도 발가벗은 몸으로 이리 저리 방황하며

때로는 괴성과 괴력으로 사람들을 위협하였던 사람이

이제는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온전한 정신으로 점잖게 앉아있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야기시켰다.

 

그들이 두려워하였다는 것은 지금 그들에게 직면된 상황이

매우 파격적(破格的)임을 뜻하며 인간의 논리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 또는 신비적 사건이었음을 입증한다.

 

 

[8:36]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구원 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 아직 사건의 자세한 전모를 모르던 상황에서 돼지 치는 자들이 자세한 사실을 증거하자

몰려온 사람들의 두려움은 더욱 증폭되어 간다.

 

한편 '구원받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소데''구원하다', '안전하다' '견실하다'의 뜻을 가진 '소스'에서 유래한 '소조'의 제 1 부정과거수동태 직설법이다.

 

귀신들린 상태에서 원상 회복된 상태를 구원받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먼저 그는 귀신에 붙잡힌 육신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더 나아가 예수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 영적인 구원을

받기에 이르렀음에 틀림없다.

 

결국 구원은 육신과 영혼이 죄로 말미암은 모든 저주 상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8:37]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시기를 구하더라 - 예수께서 일으키신 귀신 축출 사건은 그곳 주민들로 하여금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크게 두려워하여'라는 표현은 신적인 능력에 접한 인간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한 것이다.

 

25절에서도 제자들은 자연을 지배하시는

예수의 권능 앞에서'두려움'을 느꼈거니와,

거기서의 두려움은 '신적인 능력'에 대한 경이의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저들이 느낀 두려움은 미신적인 것이었다고 짐작된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이천여 마리의 돼지 떼가 물에 빠져 몰사한 사건은

자기들이 믿었던 미신의 재앙(woe)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은 더없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은 돼지 떼에 대해서는 감히 아무런 불평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떠나주기를 요청하였다.

 

그들은 죽은 것과 다름없던 귀신들린 사람의 구원을 보았으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물질의 손실만을 생각하여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실수를 범한 셈이다.

 

예수께서는 그 지방에서도 구원 사역을 펼치실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자기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무리들로부터

아무런 미련없이 떠나신다.

 

이것은 예수를 알아보고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던

사마리아인들의 경우와는 정반대의 일이었다.

 

(4: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8:38]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귀신 나간 사람이 - '귀신 나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셀렐뤼데이''엑세르코마이'의 과거 완료 능동태로서 과거 시점에서 완료된 상태를 뜻한다.

 

즉 귀신이 나간 것은 이제 이미 과거의 일이며 이제는 완전히 정상인임을 말한다.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 이 구문은 미완료과거 중간태로 되어 있어(에데이토 아우투) 몇 번이고 반복해서 계속 구하였음을 뜻한다.

 

이 사람은 너무나 귀한 은총을 체험했으므로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거듭되는 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허락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셨는데, 이는 예수께서 그를 위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각 사람의 처지(處地)와 재능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당신을 섬기게끔 하신다.

 

(21:21-22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8: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 예수께서는 그를

단지 귀신의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증거자로 삼으셨다.

 

예수께서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로 하여금

그 지방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전파하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예수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큰 일을 일일이 전하라고 명하신다.

 

여기서 주님이 귀신 축출 사건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일과 자기의 일을 동일시(同一視)하는 놀라운 계시가 있다.

 

이것은 예수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것이며

나아가 제자들이 제기한 바 있는 예수의 신분에 관한 물음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되는 것이다.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성내에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전하고 있다.

 

그는 너무 기뻐서 '온 성'을 다니며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전파하였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은

방식은 다르다 하더라도(직접 예수를 따르던가 아니면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저마다 은총을 나누어야 할 소명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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