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인의 파송 3
성 경: [눅 10:8-12]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눅 10: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 차려 놓는 것을 먹고 - 본문의 말씀은 단지 앞 절에 대한
동의어적 반복으로 보기보다는 고전 10:27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Marshall,Hendriksen).
(고전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즉 제자들 중 대다수가 유대인이었으며 따라서 이들은
전통적으로 지켜 내려오던 음식에 대한 종교적 관습에 젖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라도 이방인의 동네에
복음을 전파하러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때 그들 앞에는
유대적인 음식 규정에 의하지 않은 음식상이 차려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본문의 말씀은 그러한 상황에서 음식물에 대한 유대적 관습에 매여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주어졌다고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행 10:9-16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그렇다고 할 때, 이 말씀도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예수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막 7:15-16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눅 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
여기서도 열 두 제자들에게처럼 병을 고치는 능력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에 대한 사명이 주어지고 있다.
(9: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에게 있어서 각종 질병을 고치는 일은
자신의 메시야 됨을 증거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를 통해 임재(臨在)하는 것에 대한 표상(表象)이었다.
(마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눅 7:21-22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런데 본문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가까이 왔다'로 번역된 헬라어'엥기켄'에 대한 해석이
'가까이 다가오다'로도 '당도하다' '이르다'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막 1:15에서는 아직 당도하지 않고 가까이 이른 상태를 묘사하는 한편,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눅 11:20(마 12:28)에서는 이미 당도한 것으로 쓰여진다.
(눅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 11:20에서는 귀신 축사(逐邪)가 곧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대한 표시로 제시된다.
그리고 귀신들림에서 해방되고 병으로부터 온전해진다는 것은
인간이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상태로부터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됨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현상들은 하나님 나라의 특징적 요소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병을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 졌다고 선포 할 때
그 말의 의미는 시. 공간 속에 도래하는 완성된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특징적 효력들이 발생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보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가시화(可視化)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엥기켄 에프 휘마스)는
구문이 문법상 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아직'(not yet) 완성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already) 하나님 나라의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눅10: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 이번에는 영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의 행동 지침을 일러주고 있다.
여기서 '영접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코마이'는
사신들(ambassadors)을 환영하거나 그들이 전달해 주는
통지문을 환영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
제자들 개인의 자격이나 권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또한 '거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라테이아'는
'넓은 길' 또는 '노천의 넓은 거리'를 뜻하는데
이것은 거절하는 사람 또는 동네에 대한 제자들의 행동이 공개적이어야 함을 뜻한다.
[눅 10: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 복음을 거절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하는 행위로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것이다.
(9: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결국 이런 행위는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한 행위로 인해
필연적으로 결과 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 이 말씀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1) 마지막까지 회개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복음을 거절한 행위에 대해서는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2) 복음을 거역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엄연한 사실로서 다가오며
어떤 악한 세력에 의해서도 지연되거나 저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눅 10: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그 날'은 마태복음의 병행 본문에 기록된대로
(마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심판의 날'을 뜻함이 분명하다.
(21: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살후 1:10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딤후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또한 마태는 구약적 표현에 일치되게
'소돔과 고모라'로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고모라를 생략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악의 상징이며,
(사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렘 50:4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을 뒤엎었듯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게 하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시리라)
본래 이 두 성읍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
심판을 받아 멸망한 도시였다.
(창 19:24-28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한편 '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는 표현은
심판의 강약을 뜻한다기 보다는
그들의 심판을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확정지우며
그 심판의 준엄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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