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0일 수요일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를 배척한 사마리아인들

 

성 경: [9:51-56]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 여기서 '승천'(아날렘프세오스)

'위로'를 뜻하는 '아나''올리다'의 의미를 갖는 '렙시스'의 합성어로

'들어 올라감'이란 뜻이다.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여기서는 '죽음'대신

 

(31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승천'이 언급됨으로써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천이라는 영광을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차가매'는 본래 '완성하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예수께서

승천을 성취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이런 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정되었음과

예수께서 그것을 알고 계심을 분명히 밝혀준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 갈릴리로부터 예수의

최종 종착지인 예루살렘에로의 대전환이 언급되고 있다.

 

승천은 곧 수난과 죽음을 전제한 것이므로

예수께서는 그 일이 일어날 장소인 예루살렘에로의 행로를

굳은 결심으로 시작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굳게 결심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어귀는

' 로 얼굴을 향하다'는 셈어적인 표현으로 굳게 마음을 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곧 죽음을 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는 죽음을 향한 결단을 하신 것이다.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9: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역사 깊은 불화와 반목(反目)이 있어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충돌이 있었다.

 

(왕하 17:24-41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25) 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26)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왕하 17:27) 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35)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36)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37)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며

38)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40)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41)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그리하여 순례객들은 가까운 사마리아 길로 가지 않고

먼 베레아 지방으로 지나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길을 택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다른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사마리아를 멸시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 주며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하셨음을 보여준다.

 

 

[9: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 사마리아인들은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알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중앙 성소(聖所)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12:4-14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8)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유대인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응하는 성전을

그리심 산에 따로 지어서 이것을 자기들의 중앙 성소로 삼았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런 종교적 갈등 때문에 저들은 예수께서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행이 다시 한 번 확인되며,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조그마한 난관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겪을 고초를 암시하는 듯하다.

 

또한 이 사마리아인들은 전통적 관습에 의한 편견에 사로잡혀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를 만나 구원의 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였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예수의 예루살렘행을 방해하는 불행을 자초하였다.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우뢰의 아들'(Sons of Thunder, NIV)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데,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그 까닭은 본절에서 보는대로 그들의 성격이 매우 급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이들은 순간적으로 흥분하여 하나의 보복 조처를 제안하는데

그 내용은 아하시야 왕 당시 엘리야를 모욕했던 자들에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그들을 사른 사건을 반영한다.

 

(왕하 1:10-12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어쨌든 제자들은 복음이나 메시야 사역의 본질을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였으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세상을 구원하며 잃어버린 자들을 건지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꾸짖으시고 - 구체적인 내용없이 간략하게 언급된 '꾸짖으시고'

제자들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일축하셨음을 말해준다.

 

제자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의해 보복을 요구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구약적 대응방식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를 거절하시고 도리어 꾸짖고 있다.

 

제자들은 엘리야의 방식

'보복의 방식'을 요구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사랑의 방식을 말씀하심으로써

엘리야를 능가하는 분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여기 나타난 예수의 태도는 예루살렘에서의 고난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에 대한 하나의 복선(伏線)이라 할 수 있다.

 

 

[9: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다른 마을로 - 누가는 지리에 관한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단지

다른 곳으로 갔다고만 하여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한 사실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했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고 그것을 방해하는 무리들에 대해서는

보복적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먼 길로 돌아가는 비효율적 방식을 택하셨고

폭력이 아닌 평화의 길을 택하셨다.

 

그것이야 말로 참된 삶의 방식, 구원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교회도 이러한 예수의 방법을 따를 때 모든 난관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다.

 

한편 학자들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간 '다른 마을'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추측하는데,

 

(1) 사마리아에 있는 다른 마을(Klostermann, Zahn, Plummer),

(2) 사마리아로부터 다시 돌아간 갈릴리의 어느 마을(Bruce, Gilmour, Farrar),

(3) 베레아 접경의 마을 등이 그것이며

 

이중 어느 견해가 정확한지 단정 지을 수 없으나 세 번째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10: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