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성 경: [9:46-50]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누가 크냐 - 마가복음에서(9:33) 제자들은

 

가버나움에 이르는 노중(路中)에 논쟁을 벌였으며

가버나움에 이르러 예수의 추궁이 있었다.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누가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서술을 생략한 채 문제의 쟁점만을 취급한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의 질문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에 대한 것이었다.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여기서 변론은 '논쟁'을 의미하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였음을 시사한다.

 

불과 일주일 쯤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 부인(否認)을 가르치셨고,

 

(23-2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조금 전에는 진지한 어조로 예수님 자신의 수난을 제차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44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하시되)

 

제자들은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크냐 하는 문제는 결국

메시야가 일으켜 세울 왕국에서

누가 높은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때,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아(ego)를 버리지 못하고 지위나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제자들로서는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9: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 제자들은 예수 몰래 자기들 끼리

논쟁을 벌였으나 예수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다툼을 이미 알고 계셨다.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누가는

 

마태나

 

(18:3-4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가가 기록하고 있는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큰 자'에 대한 결론적 서언을 생략한 채

바로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장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9: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예수께서

제자들의 사고 방식을 교정시켜 주기 위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교훈을 베푸신다.

 

먼저 '내 이름으로' 행하라는 말씀은

제자들의 명예나 지위가 예수께 완전히 종속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모든 제자들의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 앞에 따로 드러날 수 없으며

모든 영광이 예수의 이름에 돌려져야 함을 뜻한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

예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한편 마가는 '이런 어린아이 하나'라고 하여

어린이 일반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데 비해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누가는 '이 어린아이'라고 하여 바로 제자들 앞에

서 있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셨으므로 예수를 영접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이 논리는 성도들의 대인 관계에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된다.

 

허물과 죄로 가득한 인생들을 자연 모습대로 대할 때에는

누구나 환멸의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과 주님의 피로

새로 태어난 생명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사랑과 헌신의 태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 - 작은 자가 큰 자라는 역설적 진리는

23-25절에서 말씀하신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역설적 진리와 갖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23-25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진정한 의미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는 자이며

세상에서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행위의 대가로

지위나 명예를 얻어 보려는 욕망을 버린 사람이다.

 

한편 본문에서 '가장 낮은 자'와 대비되는 개념을

'가장 큰 자'가 아니라 단순히 '큰 자'라고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데는 비교 우위의 개념이 적용되지만

높아지는 데에는 비교 우위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9: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다.

 

제자들은 그가 자기들과 같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단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행위를 금하였다.

 

여기서 제자들이 취한 행동은

그들만이 예수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풀 수 있는 제한된 자격을 가졌다는

자의식(自意識)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아울러 이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자기들의 실패에 대한

열등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40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

 

 

[9: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 그 사람은

예수에게서 특별히 권위를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예수께 대한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11: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는 말씀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의 요지는 이러하다.

 

익명(匿名)의 귀신 추방자는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자의 참경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고

그가 확신하는 바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의 행위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했던 일을 한 것이므로

예수와 제자들을 위하는 자인 셈이다.

 

(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42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이것은 어느 집단에 소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하는 일의 내용과 지향점이 중요함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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