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성 경: [눅 9:37-43]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눅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 이튿날 - 누가만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본문에 의하면 변화산의 영광이 밤 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마태나 마가는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엘리야와 침례 요한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 17:10-13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침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막 9:11-13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는 그 이야기를 생략한 채 바로 무리들과의 만남을 서술한다.
이 무리들 중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외의 제자들도 함께 있었고
(40절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막 9:14에 의하면 서기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막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눅 9: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 내 외아들이니이다 - 무리들이 예수를 기다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딱한 사정에 대하여 도움을 호소하는 모습은
8:40,41에 있는 야이로의 외딸을 살리신 사건과 유사하다.
(8:40-41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외아들'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는 피해자들이 당하는 고통의 극심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고통이 극심한 만큼 하나님의 은총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릴 때나
(7: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야이로의 외동딸을 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8: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한편 누가는 아버지의 간청을 묘사함에 있어서
마가의(막 9:22) '불쌍히 여기다'(스플랑크니조마이)를
'돌아보다'(에피블렙사이)로 대치시키고 있는데,
이 단어는 '위로'를 뜻하는 '에피'와 '보다'를 뜻하는 '블레포'의 합성어로
환자를 정밀하게 검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이다.
(막 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의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눅 9: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 귀신이 그를 잡아 - 마태는 이 아이가 간질병에 걸렸다 하고,
(마 17: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마가는 벙어리 귀신에 들렸다고 하나,
(막 9: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누가는 간략하게 귀신에 붙잡혔다고만 서술하고 있다.
누가로서는 이 사건의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확증을 받은 '아들'과
아들의 사역을 방해하는 핵심 세력인
'귀신'과의 싸움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
이런 증세는 의학적으로 규명할 때 간질병의 증세임에 틀림이 없으나
그 간질병 배후(背後)에는 귀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복음서 기자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의 문제는 간질병과 예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귀신과 예수와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눅 9: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 결국 서기관들을 포함한 무리들의 변론 주제가 제자들의 무능력에 관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막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신적(神的) 정체를 드러내고 있을 동안
예수와 함께 있던 세 제자는 잠을 자고,
(32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아래에 있던 제자들은 귀신에 붙잡힌 아이를 구하지 못해
무리들로부터 실망을 사고 서기관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인 바,
이는 제자들의 아둔함을 잘 보여준다.
본래 아이의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능히 예수를 대신하여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예수로부터 권능을 받았고
그 권능으로 능히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6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그렇다면 제자들의 능력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눅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 이 꾸중은 믿음 없는 제자들과 거기 모인 모든 무리들에게 하신 것임에 분명하다.
한 아이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한 아이의 고통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이적(異蹟) 자체를 즐기려는 무리들에게 적합한 책망인 것이다.
결국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패역한 무리들은 아이와 아버지의 고통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 본절에 나타난 '믿음이 없는', '패역한' 등의 표현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들을 반영하며,
(신 32: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본문의 말씀은 더 이상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패역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백성들을 품안에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를 연상시킨다.
(사 46: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이제 예수의 지상 사역은 예루살렘에서의 종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믿음의 결핍을 노출시켰고
거짓 지도자들에 의해 인도되는 무리들은 점점 더 패역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예수의 격한 감정은 '호'라는 탄식어가 잘 나타내 준다.
[눅 9: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 '올 때에'는 문자적으로
'아직 저가 오고있는 동안'의 의미로 아직 소년이 예수 앞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부터 귀신이 도발을 시작했음을 뜻한다.
* 비교 : (막 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거꾸러뜨리고'(엘렉센 아우톤)는 전투나 레슬링에서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타격을 가하는 동작을 표현하는 말로 아이의 발작이
귀신의 공격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귀신이 예수의 사역을 좌절시키려는 의도에서 감행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 귀신의 격렬한 도발 행위는 예수의 꾸짖음 앞에서 무기력하게 멈춰졌고 결과적으로 아이는 괴롭힘 당했던 모든 질병들로부터 치유를 받았다.
한편 마가는 아이의 아버지가 믿음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전해 줌으로써
신앙적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막 9:22-24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누가는 그 부분을 생략하여 예수의 놀라운 치유 능력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 조금 전의 엄한 꾸짖음과 달리
(41절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이번에는 부드러운 사랑과 자비로운 행위로 아이를 아비에게 인도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런 행위는 7:15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본질적 성품이 사랑임을 나타내 준다.
(7: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눅 9: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 변화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하나님의 아들 됨에 대한 확인은
예수의 귀신을 꾸짖으심을 통해 분명히 증명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사건 속에서 예수 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충만하게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예수의 행위를 보면서 그의 정체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제껏 겪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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