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3일 일요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면 그 아이가 낫게 되리라."고 하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성 경: [8:49-56] 주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시는데, 회당장 집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선생님을 괴롭히지 마소서."라고 하더라.

50) 그러나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면 그 아이가 낫게 되리라."고 하시고

51) 그 집에 들어가시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 소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더라.

52) 그때 사람들이 그 아이로 인하여 모두 울며 통곡하더라.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울지 말라.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노라."고 하시니

53) 그들은 아이가 죽은 줄을 알고 주를 비웃더라.

54)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신 후 아이의 손을 잡고 부르시며 말씀하시기를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시자

55) 그때 그 아이의 영이 돌아오니 아이가 즉시 일어나더라. 주께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시니

56) 그 부모가 놀라더라. 그러나 주께서는 그들에게 아무에게도 일어난 일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니라.

 

 

[8:49] 주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시는데, 회당장 집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선생님을 괴롭히지 마소서."라고 하더라.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선생님을 괴롭히지 마소서 - 예수께서 여인에게 마지막 축복의 말을 하고 있을 즈음에 야이로의 집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비보(悲報,sad news)가 날아 들어와 이제 막 병에서 치유된 여인에 대한 축하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뒤바꿔 버리는 장면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이의 태도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가 취하였던 태도와 흡사하다.

 

(11:21-32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이러한 태도는 자연인으로서 표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 평범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께서 이미 죽은 자를 살리신 권능을 행하셨던 것을 기억하였다면 그렇게 쉽사리 절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7:11-17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8:50] 그러나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면 그 아이가 낫게 되리라."고 하시고

 

믿기만 하라. 그러면 그 아이가 낫게 되리라 - 야이로는 한 혈루증 환자가 예수의 권능으로 치유되는 것을 목격했을 때만 해도 자신의 딸이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소망으로 가득했을 터이나 집으로부터 전해져온 딸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는 한없는 절망에 빠져들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먼저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이는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 때의 신뢰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며,

그러할 때 야이로의 딸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신앙인들이 지녀야 할 믿음의 성격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바,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그분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를 통해 볼 때에도

,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같이 뵈는 상황에서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구원을 받았던 사실을 익히 발견할 수 있다.

 

(22: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26:3-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또한 이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믿음직한 사랑과도 일맥상통한다.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8:51] 그 집에 들어가시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 소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더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 예수께서는 집에 데리고 들어가는 수행원의 수를 세 제자로 제한하고 있다.

 

이 세 제자를 따로 구분하여 데리고 간 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였는데,

지금이 처음이고,

 

변화산에 오르실 때와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대 결산을 하실 때였다.

 

(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이 세 사람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 특별히 긴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열 두 제자들 중에서도 예수께로부터 각별한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8:52] 그때 사람들이 그 아이로 인하여 모두 울며 통곡하더라.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울지 말라.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노라."고 하시니

 

울며 통곡하더라 - 집 안에서는 이미 집안 식구들이 딸의 죽음을 인하여 울며 통곡하고 있었다.

 

유대인의 장례식에는 모인 사람들이 같이 우는 풍속이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업적인 애곡꾼들을 고용하여 울게 하기도 하였다.

 

(9: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해 보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9:23에 의하면 그들 중에는 피리를 부는 이들도 있었다.

 

(9: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노라-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말씀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11:11에서도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잠든 것이라고 표현했던 일이있다.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8:53] 그들은 아이가 죽은 줄을 알고 주를 비웃더라.

 

비웃더라 - 아이의 죽음을 분명히 확인했고, 예수의 신적 권능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이 호곡자(號哭者)들의 비웃음은 아이의 분명한 죽음과 또한 분명한 부활을 증거해 주는 간접 자료가 된다.

 

5:40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이 비웃는 무리들을 다 내보내고 나서 아이를 일으키셨다.

 

(5: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불신자들 앞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이다.

 

 

[8:54]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신 후 아이의 손을 잡고 부르시며 말씀하시기를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시자

 

손을 잡고 부르시며 말씀하시기를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시자 - 마가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아람어(Aramaic)로 말씀하셨다.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예수는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율법에는 시체에의 접촉을 부정한 것으로 규제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찬가지로 율법이 금하고 있는 나환자에게도 손을 대었던 일이 있다.

 

(5: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이러한 예수의 행위는 그의 뛰어난 사랑을 표현해 주며 율법을 초월하여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예수의 부르는 소리는 너무나 다정하여 마치 엄마가 아이를 깨우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8:55] 그때 그 아이의 영이 돌아오니 아이가 즉시 일어나더라. 주께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시니

 

영이 돌아오니 아이가 즉시 일어나더라 - '영이 돌아오니'라는 말은 누가만의 섬세한 표현으로 생명이 즉시 회복되었음을 가리킨다.

 

예수의 부드러운 음성은 소녀를 죽음으로부터 조용히 살려냈다.

5:42에 의하면 아이가 일어나 걸었다고 하는데, 이는 그 아이가 완전히 회생했음을 증거 해 준다.

 

(5:42-43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먹을 것을 주라 -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이 너무 흥분되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을 섬세하게 배려해 주는 예수의 자상하심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아이의 회생을 공식적으로 확증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질적 도움도 주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8:56] 그 부모가 놀라더라. 그러나 주께서는 그들에게 아무에게도 일어난 일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니라.

 

말하지 말라 - 예수의 함구령(緘口令)은 여러모로 보아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애곡하던 자들에게 딸아이가 살아났으니 더 이상 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해주어야할 것이고 딸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닐 때 그 사연을 묻는 자들에게 설명도 해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9:26에 의하면 실제로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졌다고 한다.

 

(9: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말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다음 몇가지로 짐작된다.

 

(1)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단지 기적이나 일으키는 마술장이 정도로 오해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2) 일찍이 예수께서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명해 보이라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 일이 있었다.

 

(4: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여기서도 예수께서는 대중들 앞에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여 영웅으로 행세하고자 하거나 자신의 그리스도 됨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3) 예수의 지상 사역의 궁극 목적이 결코 사람들의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4) 아이의 부모들이 지나치게 흥분하여 나타난 사건에만 집착하여 본질적인 문제

즉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를 망각하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그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이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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