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성 경: [눅 10:25-29]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눅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율법교사가 일어나 - 마가는 '서기관'으로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반면 마태와 누가는 '율법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 22: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그러나 이 둘은 같은 직분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보면 될 것이다.
율법사는 유대 율법의 전문가를 말한다.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이 율법사가 일어났다는 것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치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한편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어느 장소,
어느 시점에서 있었던 일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 마가복음이나
(막 12:28-34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마태복음과과 연결지어 생각할 때
(마 22:35-40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이야기가 24절에 바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막 11:27을 고려하여 이 이야기가 예루살렘이나 그 근처에서 있었던 것이라고 보는 그룬트만(Grundmann)의 견해는 일리가 있다.
▶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마가복음에서는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율법사는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에 감탄한 나머지 진지한 물음의 자세로 질문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 구절에서의 '시험'(test, NIV)은
강한 악의를 강조하는 의미에서라기 보다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종교 지도자가
공식적 직함을 받지 않은 예수께서 올바른 대답을 줄 수 있는가를
보려고 물어본 것으로 이해된다.
계속되는 질문 가운데 '영생'(eternal life, NIV)은
'내세에 적합한 생명'(Tyndale) 또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가리킨다.
(18: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4-25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15-16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한편 여기 율법사의 질문은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선행을 물은 어떤 부자 관원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18: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나 율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신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깨닫지 못한 채
율법의 자구적(字句的) 해석과 적용에만 몰두했던 사람으로서는
본 구절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러울 따름이었다.
[눅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 결국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은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마 22:36;막 12:28)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마태복음에서와
(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가복음에는
(막 12:30-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비해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반문에 대한 율법사의 대답 형태로 전개된다.
아무튼 예수께서는 율법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율법으로 인도하고 있는데
이는 율법사의 이해의 범주에 맞도록 설명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율법사들은 모세 오경의 핵심 내용을 담은 경문을
손목이나 이마에 붙이고 다녔는데,
아마 예수는 이 경문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을 것이다.
[눅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 이 말씀은 신 6:5의 인용으로 십계명의 전반부 즉 대신(對神) 관계에 관한 내용을 주석적으로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유대교의 중심을 형성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의 충성과 사랑을 요약한 것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계약 관계에 의해 피차간에
충성과 사랑의 관계를 지켜야함을 주장하는
신명기 학파의 신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율법사들은 신 6:7-9에 의거하여 이 중요한 말씀을
소가죽에 기록하여 호부(護符)처럼 늘 지니고 다녔다.
(신 6:7-9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 이 말씀은 레 19:18의 인용으로,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십계명의 후반부 즉 대인(對人) 관계에 관한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이웃'(플레시온)이라는 단어는
유대적 어법(語法)상 집단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유대인들은 이 단어를 동족, 같은 종교권에 있는 사람,
혹은 같은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배타적인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을
이 단어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뒤에 이어지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에 대한 유대교적 관점을 파기하는 의미가 있다.
[눅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 "이를 행하라"는 현재 명령법으로서 행위의 계속성을 강조한다.
행함에 대한 결과는 '살리라'는 것인데 이러한 표현은 레 18:5;갈 3:12에도 있다.
(레 18: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갈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혹자는 여기서 율법과 복음, 행함과 믿음을 구분하는 차원에서
예수의 인정(認定)과 행하라는 명령이 행위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기도 하는데(Tyndale)
본문의 문맥이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논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러한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이 율법사가 요약한 율법의 핵심은 옳다고 인정받을 만한 것이었으며
(마 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막 12:30-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바 있기 때문이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그렇다고 해서 예수께서 이 율법사의 율법 지식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그가 물음을 묻는 저의(底意)와 그의 위선을 아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대답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율법의 요구를 온전한 의미에서 충족시키기란 불가하며
따라서 율법 준수를 위해서는 당연히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교훈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눅 10: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 율법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소위 율법사가
사람들 앞에서 제기한 자신의 질문이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나자
2단계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웃의 개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마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이웃의 개념을 과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율법사가 생각하고 있는 이웃의 개념 속에는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이 제외된다는 것을 아셨으므로
이 사람의 질문에 대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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