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성 경: [9:21-27]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9: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 '경계하사' 이 말은 '보통 꾸짖다'(4:35)라는 뜻을 가지나 여기서는 '당부하다' 또는 '심각하게 말하다'는 뜻이다.

 

(4: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여기에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명령하다'(파랑겔로)를 첨가하여 매우 강도 높은 함구령임을 부각시겼다.

 

 

예수께서 이렇게 메시야로서의 정체를 강력하게 숨기려 한 것은

 

 

(1) 유대인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오랜 역사의 억압과 수탈을 당해 오면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메시야를 열렬히 대망했다.

따라서 예수가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져나갈 경우에 그들은

예수를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들었을 것이다.

 

(6:14-15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2) 예수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질 경우.

너무나 빨리 그에게 정치적 위협이 다가올 수 있고

그럴 경우 예수의 지상 사역이 방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본 구절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네 차례의 수난 예고 가운데 첫 번째 것으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바로 이어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즉 예수는 민족적 정치적 메시야로서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여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주는 임무를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는 임무를 띠고 오신 분이다.

 

본절의 수난 예고는 예수에게 네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주는데

 

 

(1) 먼저 수난을 당하신다.

이 고난의 배경에는 사 53:4,11의 예언이 있다.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2) 버림을 받으신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아포도키마조''거부하다', '쓸모없다고 선언하다'는 뜻으로

공무원 지망생을 면밀히 조사하고 심사한 후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는 경우나

열등한 화폐를 검사하여 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이다.

여기서는 산헤드린이 예수를 거부하고 배척할 것을 말해준다.

 

 

(3) 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4) 죽은 후 제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이다.

여기서 마가는 '일어나다'는 표현을 능동태 '아나스테나이'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수동태 '에게르데나이'를 사용하여 '일으킴을 받는다'(be raised)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죽음과 삶에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함을 시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동사 '데이'는 당위의 뜻인 바,

예수의 수난이 필연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밝혀준다.

 

(53;1-12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인자 - 여기서 인자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 '장로들'(프레스뷔테로스)은 지방의 하급 법원에서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들로 지방의 공회를 구성하였다.

 

(7: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20: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2: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대제사장들'(아르키에류스)1년에 한 번 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과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는 권한이 있다.

 

본래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종신적 세습제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고 총독들에 의해 임시로 교체되는 관행이 생기면서부터

그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된 것은 대제사장을 지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서기관들'(그람마튜스)'랍비', '율법사'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바리새인으로서 각각 공공기관 또는 사설 단체에 속하여

율법의 이론적 발전, 율법의 교수, 율법의 적용에 힘썼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나열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 그룹들은

유대 최고의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무리들이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모두 7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기관이었다.

 

유대 민족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백성들을 올바른 종교적인 삶으로

인도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차단시키는 역할을

선도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유대인의 역사에 한 획을 더 보탠,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 예수의 길이 분명하였듯이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함을 말해준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의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기란 실로 어렵다.

 

첫째로 자기 부정이 요구된다.

자기 부정이란 자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형벌 중 가장 잔혹한 것으로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셋째로 이러한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 지속성 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려면 일시적 결심으로만은 부족하며

일관된 신앙 훈련이 요구된다.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 자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

즉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아의 범주 속에 파묻혀

일신상(一身上)의 부귀영화만을 위하여

타자(他者)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자는 교회에 핍박과 순교의

시련이 올 때 육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후의 심판 때 진정한 생명을 잃게 되고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에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고 하여 '복음'을 첨가하고 있으나

누가는 그것을 삭제하여 예수께 대한 헌신에 초점을 집중 시킨다.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기꺼이 포기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잃음이 아니요 얻음이라는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의 참 제자라 할 수 있다.

 

 

[9: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의 문제를 가르친다.

 

세상이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려본다 한들,

자기의 영혼과 본성을 잃게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온 천하를 얻기 위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가치를 소모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온 천하를 잃게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마지막에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 적극적 의미에서는 복음 증거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을 의식(意識)하지 말라는 당부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박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 후 교회에 핍박이 닥쳐올 때

예수께서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 무기력해 보이며

기독교인들의 삶이 실패자의 모습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재림이 최초로 언급되고 있다.

 

누가는 마태나,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가와 달리,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자기와 천사의 영광'을 첨가하여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이라는 삼중(三重)의 영광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재림주로 오실 예수의 영광스러움을 강조한다.

 

영광스러운 예수의 재림은

사람들을 행위에 따라 심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으로써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종말 때의 심판주로 재림하시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을 부끄러워하여

인간적인 방식대로 살았던 사람은

혹 세상을 얻었을지 몰라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수치스러운 종국을 맞게 될 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9: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 - 26절에서 예수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을 확인하였다면,

본 구절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축복이 약속되고 있다.

 

본절에서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 서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구별된 사람들'이 보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해답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1)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예수의 변모를 목격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2)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까지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

 

(3) 오순절이후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

 

(4) 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이 중 세 번째 견해가 유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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