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6일 토요일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기브온을 공격하는 아모리 동맹군

 

성 경: [10:1-3]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3)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가로되

 

 

[10:1]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 '벧엘' 동남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아이'(Ai)는 전통적으로 현재의 '엣 텔'(et-Tell)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것은 '아이'의 뜻이

'돌 무더기'(heap of stones) 또는 '파괴의 무더기'(heap of ruins)란 뜻인데,

 

(8: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오늘날 '엣 텔'(et-Tell)의 지명 뜻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7: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기브온 거민 - 이들은 히위 족속(Hivites) 거민들인데, 히위 족속은 가나안 땅 도처에

집단적으로 흩어져 살던 가나안 일곱 족속중 하나이다.

 

여호수아 당시에는 이들이 기브온을 중심으로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 등지에 주로 거주하고 있었던 듯하다.

 

(9:17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삼일에 그들의 여러 성읍에 이르렀으니 그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특히 '기브온'(Gibeon)은 주변에 여러 소성(小城)들을 거느린 왕도(王都)로서,

 

(10: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예루살렘 북서쪽 약 1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722m 가량의 가나안 중부 주요 성읍이다.

후일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고,

 

(18:25 기브온과 라마와 브에롯과),

 

이어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구별되었다.

 

(21:17 또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기브온과 그 들과 게바와 그 들과).

 

예루살렘 - 지중해(Mediterranean Sea)에서 동쪽으로 약 53km, 사해(Dead Sea)에서 서쪽으로 약 23km 떨어진 서 팔레스틴의 주요한 도로 교차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구약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곳이다.

 

오래 전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에는 '살렘'이라고 불리웠으며,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사사 시대에는 '여부스'라고 불리웠다가,

 

(19:10-11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웠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

 

다윗 시대에 이르러 '다윗 성'으로 명명되면서

 

(삼하 5:6-10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이 성읍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점령당했다가(B.C. 586),

다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아도니세덱 - '()의 주()'라는 뜻으로, 이 명칭은 예루살렘 왕들에게 부여된 공식 칭호였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의 왕()'이란 뜻의 '멜기세덱'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따라서 혹자는 여호수아 시대의 예루살렘 왕을 아브라함 시대의 선왕(善王)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보기도 한다(Matthew Henry).

 

한편, 여부스 족속에 속하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당시 남부 팔레스틴의 여러 왕들 중, 가장 큰 세력으로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10: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 뿐만 아니라 아이 성까지 함락시키고 나아가 아이 성 보다도 더 큰 성이고 강한 민족인 기브온과 조약을 체결하였다는 소식은 그 누구보다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에게 큰 공포심을 갖게 했다.

 

왜냐하면 기브온 성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음으로써, 여리고 아이 벧엘 기브온으로 이어지는 가나안의 중심부가 이스라엘 군대의 수중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곧 가나안의 남북이 완전 차단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다음 공격 대상으로는 기브온과 가장 가까운 거리(10km)에 있는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요단 강 도하 소식을 듣고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었는데.

 

(5:1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이스라엘의 이러한 계속적인 진격은 그의 두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 등 네 왕과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동맹한 기브온 족속에 대해서 강하게 응징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사전에 저지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 - 이 말은 기브온이 강력한 왕정 체제를 갖춘 성이란 뜻이 아니다. 추측컨대 기브온은 장로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갖춘 성읍인 듯하다.

 

(9:11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거민이 우리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맞아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니 청컨대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하라 하였나이다).

 

그럼에도 본절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기브온이 주변의 여러 성읍들, 곧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 등과 같은 성읍들에 대해 정치적 종주권(宗主權. suzerainty)을 행사한 왕 같은 성읍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9:17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삼일에 그들의 여러 성읍에 이르렀으니 그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10:3]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가로되

 

헤브론 -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850m의 성읍 헤브론(Hebron)

구약 성경 전체에서 약 50번 이상 나타날 정도로 중요한 성읍이다.

 

그리고 그 이전의 성읍 이름인 기럇 아르바(Kirijath - Arba)로는 5번 정도 언급되어 있다.

 

(15: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성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더라;

 

1: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었더라).

 

이곳은 애굽의 '소안' 보다도 7년 앞서 세워진 고대 가나안의 문화. 정치 중심지로서,

 

(13:22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일찍이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진 후 헤브론으로 이주했으며,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사라를 이곳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했고, 이삭과 리브가도 이곳에 장사되었다.

그리고 야곱이 레아를 이곳에 매장한 것처럼,

 

(49:31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요셉도 야곱을 이곳 헤브론에 매장하였다.

 

(50: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모세 시대에는 12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한 곳이기도 하며,

 

(13:22-24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벤 고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칭하였더라),

 

가나안 정복 후에는 갈렙에게 기업으로 주어졌으며, 나중에는 도피 성으로 지정되었다.

 

(14: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그리고 후일 다윗은 그의 통치 초기에 이 성을 수도로 삼아 7년 동안 유대를 다스리기도 했다.

 

(삼하 2: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 해 여섯 달이더라).

 

오늘날 이곳 이름은 '친구', ''이란 뜻의 '엘 칼릴'(el-Khalil)인데, 매우 질 좋은 우량 포도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야르뭇 - 현재의 엘류데로폴리스(Eleutheropolis)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약15km 지점에 있다.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 할당되었으며,

 

(15:20-62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으로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 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르바옷과

32)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이십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모두 십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니 모두 십육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45) 에그론과 그 향리와 촌락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촌락이었으며

47) 아스돗과 그 향리와 촌락과 가사와 그 향리와 촌락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 가에 이르기까지였으며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니 모두 십일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모두 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8) 할훌과 벧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라빠니 모두 두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61)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염성과 엔 게디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더라),

 

바벨론 포로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 성읍으로 돌아왔다.

 

(11: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하며).

 

오늘날의 명칭은 '얄무크'(Jarmuk)이다.

 

라기스 -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서남방 약 48km 지점에 있는 가사(Gaza)와의 중간 지점인 세렐라(Shephelah) 지방의 기슭 저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가나안 정복 후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

 

(15: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솔로몬이 죽은 후 라기스(Lachish)는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으며,

 

(대하 11:9 아도라임과 라기스와 아세가와).

 

유다 왕 아마샤는 음모자들이 그의 목숨을 노릴 때 이곳에 은신처를 구했으나 결국 추격을 받아 이 성읍에서 살해되었다.

 

(왕하 14:19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대하 25:27 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리고 B.C. 701년 히스기야 시대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포위되기도 했다가,

 

(왕하 18:13-14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14)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마침내 B.C. 589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되었다.

 

(34:7 때에 바벨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그러나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에는 유대인들이 귀환하여 계속 거주하였다.

 

(11: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동네와 라기스와 그 들과 아세가와 그 촌에 거하였으니 저희는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한편 고고학적 발굴 결과, 오늘날의 '움 라기스'(Um Lakis) 지역과 동일시된다(Robinson).

 

에글론 - 라기스 동쪽 약 40분 거리의 위치에 있는 성읍이자, 가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요로 약 25km 지점에 있는 성읍이다.

오늘날의 명칭은 '아월란'(Ajlan)으로 추정되는데(Keil, Lias).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었다.

 

(15: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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