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4일 일요일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아모리 성읍 함락 2

 

성 경: [10:31-39]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

32)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33)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34)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

35) 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였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36)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37) 그 성읍을 취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38)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

39) 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요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10:31-32]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

32)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라기스 -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서남방 약 48km 지점에 있는 가사(Gaza)와의 중간 지점인 세렐라(Shephelah) 지방의 기슭 저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가나안 정복 후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

 

(15: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솔로몬이 죽은 후 라기스(Lachish)는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으며,

 

(대하 11:9 아도라임과 라기스와 아세가와).

 

유다 왕 아마샤는 음모자들이 그의 목숨을 노릴 때 이곳에 은신처를 구했으나 결국 추격을 받아 이 성읍에서 살해되었다.

 

(왕하 14:19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대하 25:27 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리고 B.C. 701년 히스기야 시대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포위되기도 했다가,

 

(왕하 18:13-14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14)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마침내 B.C. 589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되었다.

 

(34:7 때에 바벨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그러나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에는 유대인들이 귀환하여 계속 거주하였다.

 

(11: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동네와 라기스와 그 들과 아세가와 그 촌에 거하였으니 저희는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한편 고고학적 발굴 결과, 오늘날의 '움 라기스'(Um Lakis) 지역과 동일시된다(Robinson).

 

 

[10:33]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게셀 - 세펠라(Shephelah) 평지 북서쪽 변방, 곧 라기스 북쪽 32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고대 가나안의 주요 도시이다.

 

곧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통하는 요로에 위치해 있는 게셀(Gezer)'오노' 평지의 아름다운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평지는 당시 동부 지중해 연안을 남북으로 잇는 주요한 통로였다.

 

(6: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그리고 벧호론을 통해 산간 지방으로 들어가는 측면 대로는 해안으로 가는 길과 만나기 전에 바로 게셀로 이어진다.

 

한편, 가나안 정복 후 게셀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어졌으나, 나중에 레위지파에게 재분배되었다.

 

(21:21 곧 살인자의 도피성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 그 들이요 또 게셀과 그 들과).

 

후일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그의 수도로 정했을 때, 블레셋 족속이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예루살렘 언덕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자 다윗은 그들을 게셀까지 추격한 적이 있다.

 

(삼하 5: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그리고 솔로몬 시대에는 바로의 점령하에 있던 이 도시가 바로의 딸을 취한 솔로몬에게 예물로 주어졌고, 솔로몬은 이 성읍을 요새화했다.

 

(왕상 9:15-17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여호와의 전과 자기 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16)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17)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이후 게셀은 마카비 시대 때까지 주요한 군사 요충지로서 종종 등장한다(마카비 상 4:15; 7:45; 9:52; 15:28-35; 16:1-10).

 

한편 마칼리스터(R.A.S. Macalister)에 의한 두 차례의 발굴(1902-1905;1907-1909) 결과,

오늘날 이곳은 텔 엘-여셀(Tell el-Jezer) 지역으로 추정된다(The Excavationsof Gezer).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 라기스 정복과 관련하여 특징적인 사실은 게셀왕 호람(Horam)에 관한 기사이다.

 

본래 게셀은 여호수아 군대의 진행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기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게셀 왕 호람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군대를 이끌고 라기스를 도우러 왔다가 도리어 멸망당한 기사가 본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 사건은 불의의 끈으로 맺어진 결과 악한 일에 동조하는 자는 결국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Matthew Henry).

 

 

[10:34-35]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

35) 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였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에글론 - 라기스 동쪽 약 40분 거리의 위치에 있는 성읍이자, 가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요로 약 25km 지점에 있는 성읍이다.

오늘날의 명칭은 '아월란'(Ajlan)으로 추정되는데(Keil, Lias).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었다.

 

(15: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10:36-37]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37) 그 성읍을 취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헤브론 -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850m의 성읍 헤브론(Hebron)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약 50번 이상 나타날 정도로 중요한 성읍이다.

 

그리고 그 이전의 성읍 이름인 기럇 아르바(Kirijath - Arba)로는 5번 정도 언급되어 있다.

 

(15: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성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더라;

 

1: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었더라).

 

이곳은 애굽의 '소안' 보다도 7년 앞서 세워진 고대 가나안의 문화. 정치 중심지로서,

 

(13:22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일찍이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진 후 헤브론으로 이주했으며,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사라를 이곳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했고, 이삭과 리브가도 이곳에 장사되었다.

그리고 야곱이 레아를 이곳에 매장한 것처럼,

 

(49:31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요셉도 야곱을 이곳 헤브론에 매장하였다.

 

(50: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모세 시대에는 12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한 곳이기도 하며,

 

(13:22-24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벤 고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칭하였더라),

 

가나안 정복 후에는 갈렙에게 기업으로 주어졌으며, 나중에는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14: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그리고 후일 다윗은 그의 통치 초기에 이 성을 수도로 삼아 7년 동안 유대를 다스리기도 했다.

 

(삼하 2: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 해 여섯 달이더라).

 

오늘날 이곳 이름은 '친구', ''이란 뜻의 '엘 칼릴'(el-Khalil)인데, 매우 질 좋은 우량 포도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한편, 헤브론(Hebron)이 정복됨으로써, 가나안 남부 다섯 동맹국 중 세 성읍(라기스, 에글론, 헤브론)이 정복되었다.

 

그런데 나머지 두 성읍, 곧 예루살렘과 야르뭇에 관한 정복 기사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두 성읍의 위치가 중부 지역 가까이에 위치한 관계로 일단 유보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야르뭇'은 곧 정복되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

 

(15: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하지만 '예루살렘'은 먼후일 다윗 왕때에야 완전 정복되었다.

 

(삼하 5: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그 왕 - 물론 여기서의 헤브론 왕은 막게다 굴에서 처형당한 그 왕이 아니다.

여호수아 군대가 헤브론까지 진격해 오는 동안 왕위에 오른 그의 후계자를 가리킨다(Keil).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 - 헤브론(Hebron)도 기브온과 마찬가지로 왕도(王都)였으므로

 

(1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휘하에 여러 소성(小城)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분명 이들은 헤브론과 운명을 같이 하기 위해 연합했을 것이므로, 함께 진멸 당했던 것이다.

 

 

[10:38-39]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

39) 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요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드빌 - 올브라이트(Albright)에 의하면, 이곳은 라기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현재의 텔 베이트 미르심(Tell Beit Mirsim)이다.

 

그리고 헤브론으로부터는 남서쪽으로 약20km지점에 있다.

 

한편, 드빌(Debir)의 본래 이름은 '기럇 세벨'로서,

 

(15: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거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11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거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그 뜻은 '문서(文書)의 성'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아마도 고대 문화의 중심지였던 것 같다.

 

또는 '기럇 산나'라고 불리 우기도 한다.

 

(15: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정복 당시에는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 지역의 중심 성읍이었다.

 

(11: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 이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진멸 명령을 받들어 그대로 철저히 시행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7: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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