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8일 금요일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아이의 공략

 

여호수아 7-8장의 해설

 

이스라엘 인은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여리고를 멸하고,

서쪽 산지로 향하여 전진했다.

요단(요르단) 평지의 여리고와 유대산지의 벧엘과의 사이에 아이 성이 있었다.

 

이스라엘인은,

이제 이것을 쳐서 취하려고, 군인을 보냈다.

그것이 소읍임을 업신여기고, 불과 3천인을 보내어,

단번(일거), 이것을 함락시키려했다.

 

아이 사람은, 그들을 성문에서 요격(anambush)하고, 격퇴하고,

추격하여, 36인을 죽였다.

 

공략하려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7:5)’고 있다.

 

여호수아 및 백성 전체는, 패보(敗報)에 접하여, 매우 실망했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사활문제였다.

손실은 불과 36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에 의해, 그들의 명성을 잃게 되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인으로서, 아이의 소읍에 격퇴되었다는 소문이,

가나안 온 땅에 퍼지게 된다면,

온 땅의 백성은, 일어나 이스라엘과 방전(防戰)하고,

그들을 전멸시키지 않고서는 두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연전연승을 약속하셨는데,

그는 여기서 가까이 자기편의 패배를 목격했다.

 

이는 여호와의 약속은

신빙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대적이 앞에 대기하고 있고,

여호와의 원조는 끊기고,

이스라엘의 운명은 진()했다고 할 것이다.

 

아아, 어떻게 할 것인가 고,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외쳐 말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패인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 있었다.

 

아이의 백성이 강해서가 아니고, 여호와의 원조가 끊겨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 죄가 몰래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 내부의 어떤 자가 가증한 것을 은닉하여,

여호와의 노()를 불렀던 것이다.

이 죄가 제거 될 것인가?

 

여호와의 은총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용기는 부활하고, 지모는 주어져,

쉽게 적을 깨뜨릴 수가 있다.

 

요는 먼저 자기 죄를 발견하여, 이를 제거함에 있다.

그리하면 승리는, 반드시 이르리라고,

여호와는 여호수아에게 말해주셨다.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했다.

그리고 천착(穿鑿)의 결과, 세라의 종족(증손)인 아간이,

여호와께 바쳐야할 것을(바치지 않음으로 가증한 것이 된 것을),

자기 집에 숨겨둔 것이 탄로 되었다.

 

물품은

시날산(즉 바벨론-日譯)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였다.

 

아간은 이것을 그 천막(장막)속 땅 밑에 묻어 숨겨 두었다.

이 일이 자백되어, 여호수아는 사람을 보내어,

이 모두를 파내게 하고,

이것을 모든 사람 앞에 가져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놓았다.

 

그리고 아간 및 그 가족을 아골 골짜기에 끌고 가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향해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고 한 후,

 

이스라엘의 온 무리에게 명하여,

아간과 그 가족을 돌로 쳐서 죽게 했다.

 

이렇게 하여, 죄는 백성 가운데서 제거되었다.

 

이스라엘은 다시 거룩한 백성으로 되었다.

그들은 다시 아이로 쳐 올라갔다.

그리고 간단한 모략에 의해, 쉽게 이를 점령하고, 그 거민을 죽였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좋은 교훈을 배웠다.

 

패배의 원인이, 자기 죄에 있음을 배웠다.

그들은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아골 골짜기의 비극을 잊지 않았다.

 

후일에 선지자가 백성을 위로하여

 

아골(환난)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호세아 2:15)’라고 한 것은,

 

실망을 대신하여, 희망으로 바꾸리라는 것이었다.

 

이상(以上),

지금부터 3천 년 전의 야만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들 오늘날의 그리스도 신자는,

적에 대하여, 죄인에 대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취한 길을 취할 수는 없다.

 

적을 도륙시킨다든가, 죄인을 돌로 쳐 죽인다든가 하는 일은,

우리가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전쟁이다.

칼로서 하는 전쟁은 그친대도,

영으로 하는 전쟁은 그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여리고가 있고, 아이가 있으며,

점령해야 할 가나안이 있고 정복해야 할 가나안 사람이 있다.

 

그리고 우리들도 또한 싸움에 임하여,

()로 살 때 이기고, 죄를 범할 때 지는 것이다.

 

우리들도 또한 적을 만나 패하고, 우리들의 약함에 실망하여,

하나님께 버림당한 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다.

적이 지나치게 강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심령 속에 죄를 감추어,

그 때문에 하나님의 원조가 끊긴 것이다.

 

그러므로 패배의 경우에,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스스로 반성하고,

패배를 불러온 죄를 찾아, 이를 발견하여,

돌로 이를 쳐 죽이고 불로 이를 태워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다시 우리에게 임하고,

능력은 다시 더해지며, 지혜는 주어져,

쉽게 적에게 이길 수 가 있다.

 

문제는 극히 간단하다.

 

우리(심령)속에 아간이 있어, 하나님께 속한 것을 숨기고,

이것을 사용하는 까닭에, 우리들의 능력은 쇠해져,

적의 격퇴하는 바로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서 그러하고,

국가사회에 있어서, 또한 그러하다.

 

잠언 1424절에 이르기를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죄를 감추고 적에 향할 때,

국가의 강대함으로써 한 대도, 패배는 면치 못한다.

 

나라는

의를 구할 때 흥하고,

의를 잃을 때 멸망한다.

 

이는 단순히 도덕가의 잔소리는 아니다.

인류의 체험이다.

 

종교 도덕은 어떻다 해도,

나라가 부하고, 군대 강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은 잘못이다.

 

인생은 복잡하면서, 또 단순하다.

숨은 죄가, 싸움터(전장)에 있어서의 패배로 되어 나타나 오는 것이다.

 

 

*내촌감삼의 (19271월 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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