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요일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사사 에훗의 활약 2

 

성 경: [3:21-30]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26) 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27) 그가 이르러서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28) 무리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서 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29) 그 때에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3:21]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 이에 대하여 메튜 헨리(Matthew Henry)

 

에글론에게 전달될 하나님의 명령(20)이 에글론의 귀가 아닌 가슴(heart)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말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강해하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136).

 

(20 에훗이 왕의 앞으로 나아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가로되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3: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칼날이 에훗에 의해 힘있게 에글론의 몸에 꼽혔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 역시 하나님께서 에글론에게 내리신 심판을 거두지 아니하시므로 죽음의 저주가 끝까지 에글론과 함께 하였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한편 혹자는 이상과 같은 에훗의 암살 행위에 대하여 그 정당성을 의문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홋의 행위는 성경에 나오는 여타 암살 행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삼하 2:27 요압이 가로되 하나님이 사시거니와 네가 흔단의 말을 내지 아니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4:6 레갑과 그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즉 일반적으로 암살 행위는 사적 원한과 야비한 정치욕(政治慾)에서 비롯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홋은 엄연한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에글론을 응징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에훗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평가해야 한다.

 

 

 

[3: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 에홋은 암살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락방에 있는 문들을 닫아 잠갔다.

 

다락방 안에 왕이 있을지라도 문이 잠겨 있으면 신하들이 왕의 허락없이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을 에훗은 십분 이용한 것이다.

 

(24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3: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발을 가리우신다 - 이러한 말은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으로 사람의 생리적인 현상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즉 이 말은 '용변을 보다' 또는 '잠을 자다', '휴식을 취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삼상 24:8에서도 이 같은 말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용변을 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 구절에서는 모압 왕 에글론이 발을 가리운 곳이 다락방으로 기술되어 있으므로, '잠을 자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다락방은 담화 장소나

 

(삼상 9:25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기도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거실로도 사용된 곳이었다.

 

(1: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3: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 성경 원문에는 '그리고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까지 기다렸다

(And they tarried till they were ashamed)로 나와 있다.

 

이는 곧 왕이 너무 오래동안 지체하자 그때서야 비로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깨닫고서 자신들이 방심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주가 이미 죽어 - 신하들은 왕이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과연 에글론은 영원한 잠을 자고 있었다.(Matthew Henry).

 

 

 

[3:26] 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스이라 본 구절 외에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지명이다.

따라서 '스이라'는 그 말의 뜻대로 '삼림' 지역을 의미하는 것 같다(Hervey).

 

27절은 그곳이 에브라임 산지의 어느 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곳은 에훗이 추적자들로부터 피하기 쉬운 곳이다.

 

 

 

[3:27] 그가 이르러서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중 울창한 삼림이 있는 구릉지대를 일컫는다.

이곳은 가나안 중부에 위치한 곳으로 대개 에스드랠론 평지에서부터 유다 산지와 맞닿는 지점까지의 지역을 가리킨다.

 

(16: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곁 요단 곧 여리고 물 동편 광야에서부터 나아가 여리고로 말미암아 올라가서 산지를 지나 벧엘에 이르고).

 

비교적 토양이 비옥한 곳이었으므로 수확물도 많이 났었다고 한다.

 

 

나팔을 불매 - 이처럼 에훗이 나팔을 분 것은 백성들을 소집할 뿐 아니라,

 

(6: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삼상 13: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동시에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3:28] 무리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서 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붙이셨느니라 - 이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권능을 확신한 지도자 에홋이 이스라엘을 통솔한 것은 당시 이미 자기들의 왕 에글론을 잃고 지휘 체제를 갖추지 못한 모압군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스라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스라엘은 모압군 일만 명 가량을 죽이는 대승을 거둔다.

 

(29 그 때에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요단 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 여기서 말하는 '요단 강 나루'는 모압땅 맞은 편, 여리고 앞의 요단 강 어느 한 지점일 것이다.

 

한편 에훗이 이처럼 요단강 나루를 지킨 데에는 이중 목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있던 모압군이 강을 건너 모압땅으로 도망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13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압 본토에서부터 소식을 들은 모압인들이 원군(援軍)은 형성, 요단 강을 넘어오는 것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에훗의 봉쇄 작전은 주효(奏效)하였는바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침입하였던 모압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낸다.

 

(29-30 그 때에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3:29] 그 때에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다 역사요 용사라 - 여기서 '역사'는 원어로 '솨멘'으로서 '신체적으로 강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용사''하일'로 전쟁에 능한 '용사를 의미할 뿐 아니라 재산이나 권세 같은 것을 갖추어서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도 의미한다.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3: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 이는 이스라엘이 사사 옷니엘의 치하에서 누렸던 태평시대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11 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그리고 전 사사 시대를 걸쳐 여러 사사의 통치들 중에서도 가장 긴 평화를 누렸던 기간이기도 하다.

 

(5: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8:28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의 사는 날 동안 사십 년에 그 땅이 태평하였더라;

 

10:2-3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이십삼 년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12:7-15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8) 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9) 그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더니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 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왔더라 그 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칠 년이라

10)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11) 그의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12)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13) 그의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14) 그에게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있어서 어린 나귀 칠십 필을 탔었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팔 년이라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16:31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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