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8일 화요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백성들의 쟁론

 

성 경: [6:28-32]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29)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6:28]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장소는 동네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26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성읍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 단이 훼파되었는지를 금방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록 기드온과 그의 종들이 밤중에 신상과 산당을 훼파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을지라도,

 

(26-27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27)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그곳이 마을 가까이 위치했다면 성읍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6:29]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

 

이로 보건대 기드온의 종 열명 중에,

 

(27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누군가가 마을 사람들에게 기드온이 바로 범인임을 자백하거나 고해 바친 것 같다(Pulpit Commentary).

 

 

 

[6: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를 훼파한 일 때문에 성읍 백성들이 그를 죽이려 한 점은 기드온의 부친이 소유한 바알과 아세라가 그의 가족에게만 속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증거해 준다.

 

(4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한편 이들 성읍 주민들은 본래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우상을 숭배하여 십계명을 범했으면서도

무너진 우상의 제단과 신상을 보고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못했다.

 

도리어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 상을 훼파한 기드온을 죽이려 하였다.

 

즉 하나님 앞에서 정작 죽임을 당할 자들은 자신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처 이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6: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

 

마을 사람들은 우상을 파괴한 기드온에게 분노를 품고 그 아버지에게 사형을 요구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버지 요아스는 그 아들의 행위를 꾸짖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위해 변호하였다. 기드온의 심령을 비추었던 하나님의 영이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감화시켰던 것 같다.

 

적과 동조하리라 예상했던 아버지가 지금 자기편이 되어 주니, 기드온의 감사한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이렇듯 하나님의 편에 서서 진리를 위해 싸우는 자는 언제나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된다.

 

불의와 악한 세력은 생각보다 약하고, 정의와 진리는 무쇠처럼 강하다.

 

요아스는 참 신과 거짓 우상, 진리와 오류를 구별하는 길을 마을 사람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즉 참 신은 징계하나, 거짓 우상은 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진리는 그 자신을 증명한다.

 

후에 바리새인으로서 뭇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았던 교법사 가말리엘도 같은 논법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위를 변호하였다.

 

(5:34 이하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6: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은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이다.

 

이 이름에는 기드온이 바알을 쳐부쉈으되 바알은 기드온에게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못한 사실을 조롱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로써 바알은 허구의 산물이며 헛된 우상임이 밝혀진 셈이다.

 

한편 삼하 11:21에서는 '여룹바알''여룹베셋'으로 표현되어 있다.

 

(삼하 11: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 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윗짝을 그 위에 던지매 저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이때 '베셋'은 바알의 별명인 '보셋'과 동일한 말로서 '부끄러움', '수치'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룹베셋이라는 이름도 바알의 수치를 드러낸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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