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징을 구하는 기드온 2
성 경: [삿 6:22-24]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삿 6: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 이제야 기드온은 자기에게 나타나
위로와
(12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소명과
(14절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확신을 주신 분이
(1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바로 '여호와의 사자' 곧, '여호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엠마오를 향해 가던 두 제자가 그들과 동행하셨던 예수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눈이 밝아진' 후에야 깨달은 것과 유사한 예이다.
(눅 24:13-32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19)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이처럼 우리도 항상 곁에 계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도무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때가 많이 있다.
▶ 슬프도소이다 -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아하흐'는 특정한 의미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 단지 슬픔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그런데 이 말은 '주 여호와'란 단어와 연결되어 주로 사용되었다.
(수 7:7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나이다;
렘 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4:10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미쳤나이다;
14: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32: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겔 4:14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9: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11:13 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한편 기드온이 이렇게 탄식의 소리를 발했던 것은 사람이 여호와를 대면하여 볼 수 없고,
또한 보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출 20: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신 5: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삿 6: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 이처럼 기드온이 하나님을 보고서도 죽지 아니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하나님의 본체를 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출 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주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형상을 취하사 '여호와의 사자'로 기드온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후에 삼손의 부모가 하나님을 뵙고서도 죽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13:22-23 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23)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 히브리인들은 동의어대구법(同義語對句法)을 사용하여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하거나 강조하는 습관이 있다.
본 구절 역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위로하시면서 슬퍼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시기 위해 '동의어 대구법'을 사용하신 경우이다.
[삿 6: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 거기서 - '상수리 나무 아래서'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자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있는 반석에서 기드온의 예물을 태웠으며,
(19-21절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그곳에서 기드온과 대화했기 때문이다.
(22-23절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 단을 쌓고 - 과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한 후 헤브론에서 단을 쌓았다.
(창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그리고 야곱도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그곳에서 단을 쌓았다.
(창 28:16-19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단을 쌓는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람의 열심과 헌신을 의미했다.
▶ 여호와 살롬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예호와 솰롬'은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또는 '평강의 여호와'란 의미이다. 앞서 여호와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23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의 원어 역시 '솰롬', 곧 '평강'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본 구절에서 기드온이 쌓은 단은 하나님과의 화해의 제단이요 구원의 제단이었던 것이다.
한편 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주요 속성 중 하나를 평강이라 하였고,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평강의 왕이라 불리운 것 같이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평강이라는 주제는 하나님의 귀한 은총으로서 성경 전편에 걸쳐 흐르고 있다.
그런데 특히 불안과 혼란이 팽배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눅 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가정과
(고전 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나아가 전 세계가
(왕상 4:24 솔로몬이 하수 이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하수 이편의 모든 왕이 다 관할한바 되매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화목된 관계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시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갈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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