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요일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기드온의 출전 준비

 

성 경: [6:33-35]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35)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6:33]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때에 - 원문에는 이 말이 없이 단순히 '그리고' 또는 '그런데'를 의미하는 접속사 ''만이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접속사 ''만으로는 본 구절과 앞의 사건이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 '이스르엘 골짜기'는 요단 강에서 길보아 산 부근을 거쳐

 

(삼상 28:4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갈멜 산 부근을 지나며

 

(33:9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 마르고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 갈멜은 목엽을 떨어치는도다)

 

지중해에까지 뻗쳐 있는 비교적 큰 계곡이다.

 

따라서 이 골짜기는 므낫세 반 지파와 잇사갈, 스불론, 아셀 지파의 땅에 걸쳐 있는 셈인데, 그곳에는 기손 강이 흐른다.

 

(4: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한편 본 구절에서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기 위함이라기 보다 이스라엘을 약탈하기 위한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먼저 기습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그에 대한 방어나 어떠한 군사 행동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MatthewHenry's Commentary,Vol.II.p.162).

 

(34-35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35)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6: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본 구절에는 성령이 임한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아비에셀 족속'이 순종하면서 모여 그를 좇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지극히 심하게 우상을 숭배했던 자들이었으나 성령이 강하게 임한 기드온을 따랐다.

 

초대 사사 옷니엘도 하나님의 신이 임했을 때, 구산 리사다임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다.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 '강림하시니'로 번역된 원어 '라바쉬''옷을 입히다'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을 옷 입히시듯 혹은 무거운 장비로 온통 감싸듯 하여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셨음을 의미한다.

 

(11:29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들에게로 나아갈 때에;

 

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이처럼 신앙생활에서는 붙잡는 것보다 붙잡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으시도륵 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지혜나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신앙의 열매도 하나님께로 부터의 은혜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것이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신이 특별히 임하였을 때에는

 

명철과 지혜,

 

(41:38-39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예언,

 

(11:25-26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26)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비상한 체력, 등이 나타났다.

 

(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19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곳 사람 삼십 명을 쳐 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비 집으로 올라갔고)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보혜사로서 함께 하신다.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따라서 우리는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해서는 아니 되며, 육신의 정욕을 누그러뜨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보다 충만히 받기 위해 힘써야 한다.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본 구절에서는 바야흐로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므로서 그가 때마침 침략한 대적들로부터

 

(33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이스라엘을 구원할 위대한 지도자로 세움 받는 장면이 나온다.

 

 

 

[6:35]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족속 출신이다.

 

(11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따라서 자기가 속한 므낫세 지파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취해 그들의 힘을 규합했다.

그러자 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와 접경지대를 기업으로 받은 므낫세 지파는 기드온의 부름에 쉽게 응했다.

 

(33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 - 이들 역시 이스르엘 골짜기와 인접해 있고 적들의 약탈과 위협에 처해 있었기에 기드온의 부름에 응했다.

 

(33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그런데 이 중 '아셀'은 드보라 시대에는 압제자의 영향권 내에 있으면서도 출전치 않아 드보라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 지파이다.

 

(5:17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올라와서 -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알라'는 반드시 '올라가다'란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는 어느 중요한 지점으로 나아가거나

 

(7: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전쟁을 위해 진군하는 것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왕하 17:3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고로 호세아가 신복하여 조공을 드리더니;

 

24: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대하 36:23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이 중 본 구절에서 원어 '알라'는 전쟁에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