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제6장의 교훈 4
(내촌감삼의 주석을 참조함)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네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두려워 말라. 너는 죽지 않으리라’고).
이에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 하였더라(24) ’는 것이다.
제단을 기념 위해 쌓는 것은, 이스라엘인의 습관이었던 듯하다.
기드온은 이제 여호와의 특성에 대하여 새로이 보여주심을 입었다.
그는,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하실 이, 접촉해서는 안 되실 이, 사르시는 불 같으신 이,
빽빽한 구름, 암흑, 또는 폭풍 같은 이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유화하신 형상을 뵈옵고, 그 ‘평안 네게 있을지어다’라는 정다운 음성에 접하여, 여호와에 관한 그의 사상은 일변했다.
그는 마음에 말했으리라.
‘여호와는 맹위가 아니시고, 권세가 아니라, 평화이시라’고,
여호와 샬롬, 여호와는 평화이시며,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이, 사람에게 가까이 하시는 이, 구제(구원)의 하나님, 중재하실 수 있는 이, 영구히 노하지 않으시는 이, 사하시는 분,
그러므로 나와 내 집과 나라를 대적의 손에서 구출하시는 이시라고.
이것 이때에 있어서의 기드온의 소감이었으리라.
그가 그곳에 기념위해 제단을 쌓고, 이것을 여호와 샬롬(여호와는 평화시라)이라 이름 한 것은, 옳도다. 하나님의 종의 생애에 있어서 기념해야 할 때는,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새롭게 배우는 바 있는 때이다.
그리고 권위의 하나님께서 평화의 하나님으로서, 마음에 나타나 보이시는 때,
우리들 오늘의 그리스도인도 또한 돌 아닌 단을 쌓고, 그 위에 새롭게 자기를 드리는 게 아니랴.
(히브리서 10: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24- 이에 기드온이, 그곳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이를 여호와 샬롬(여호와는 평강)이라 이름했다. 이는 오늘날도 아직 아비에젤 사람의 오브라(오프라)에 있다).
여호와는 먼저 자기를 기드온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그를 거룩하게 하시는 한편, 또 강하게 하셨다.
이제부터 그를 가지고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 하시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앞서, 그로 하여금 그의 집과 향리를 구하게 하신다.
기드온은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리고, 그 나무로써 아버지의 우리에서 취해낸 7세 된 수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도록 명해졌다.
이는 용기를 요하는 행위이다.
아버지를 거슬리고, 향우를 거슬리고, 그 분노를 삼은 행위이다.
그렇지만 기드온은 이것을 감행했다.
다만 주간에 이것을 하지 않고서 야간에 이것을 행했다. 그의 용기에 아직 부족한데가 있었다.
(25-27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그 밤에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버지의 수소 곧 7세 된 둘째의 수소를 취하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어버리고, 그 곁의 아세라(상)을 찍어버리라
26). 그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해, 이 견고한 성채 꼭대기에, 차서를 올바르게 하여(규례대로) 제단을 쌓고,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써 번제를 드리도록 하라.
27). 기드온이 곧 그 종 열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분부하신대로 행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집 사람들 및 성읍 사람을 두려워하여, 낮에 이것을 하지 못하고, 밤에 했다).
마을 사람(향민)은 노했다.
그들은 기드온의 사형을 그 아버지에게 요구했다.
그렇지만 어찌 생각인들 했으랴?
아버지 요아스는 그 아들의 행위를 노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그를 위해 변호했다.
기드온의 심령을 비춘 하나님의 영은, 이미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감화했던듯하다.
적으로 생각했던 아버지는, 지금은 이미 자기편으로 되어 있었다.
기드온의 이때의 감사는 어떠했으랴?
하지만 결단코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언제나 그런 것. 반대는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지 못한 것이다.
(28-31 성읍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볼지라, 바알의 제단은 훼파되고, 그 곁의 아세라는 찍혀 있었고, 새로이 쌓은 제단위에 둘째 수소는 드려져 있었다.
29).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누가 이 일을 했는가’고. 그들이 또 묻고, 또 캐어묻다가, 드디어 말하기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짓을 했도다’라고.
30). 여기서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향하여 말하기를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죽을지라.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훼파했기 때문이다. 또 그 곁에 있던 아세라를 찍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31). 그런데 요아스는, 자기 주위에 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바알을 위해 쟁론하는가? 너희는 이를 도우려는가? 이것 위해 쟁론하는 자는 아침에 죽을지라. 바알이 만약 신이라면, 스스로 쟁론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그 제단을 훼파했으니까?’라고).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그 아들의 행위를 변호하여 말하기를,
‘바알이 만약 신이라면, 그 스스로가 싸우리라-일역’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한글역) 고.
참신과 거짓 신, 진리와 오류와의 다름(구별)을 아는데, 오직 이 한길 있을 뿐.
참 신은 징계하신다.
거짓 신은 벌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리는, 그 자신을 증명한다.
후에, 바리새교인으로서 뭇사람에게 높임 받는 교법사 가말리엘은,
같은 논법으로써 예수의 제자들의 행위를 변호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될까하노라(사도행전 5:34이하)’고 했다.
(31- 그런데 요아스는, 자기 주위에 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바알을 위해 쟁론하는가? 너희는 이를 도우려는가? 이것 위해 쟁론하는 자는 아침에 죽을지라. 바알이 만약 신이라면, 스스로 쟁론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그 제단을 훼파했으니까?).
요아스의 항거로, 마을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해를 가 할 수 없었다.
다만 그에게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붙여 이를 방면했다.
여룹바알, 이것을 해석하면 ‘바알이 쟁론 하리라’는 뜻이다.
적의 조롱하는 말 가운데, 깊은 뜻이 있는 일이 있다.
기드온은 즐겨 이 이름을 받았으리라.
그는 홀로 마음에 묵상하며 말했으리라.
‘여룹바알이라, 바알이 쟁론할 것이라. 그렇지만 그는 쟁론치 못하리라.
그는 입이 있어 말할 수 없고, 그는 귀가 있어서 들을 수 없는 우상이다.
그는 두려워할 바 못된다. 그를 경배하는 가나안, 미디안, 아말렉 백성들도
두려워할 바 못된다. 나는 이 이름을 지니고서, 나아가 바알과 그 종자들을 치리라’고,
(32- 이로써 사람들은, 그가 그 제단을 훼파했으므로 ‘바알이 스스로 쟁론할 것이라’하여, 그날 기드온을 ‘엘 바알’이라 불렀다).
그의 집과 마을(동네)은, 이제 그에게 굴복(복종)했다.
그는 이제부터 나아가 그의 나라를 구원해야만 한다.
미디안사람, 아말렉 사람, 및 동방의 백성들은 서로 모여, 이미 요단강을 건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
그렇지만 두려워할 것 없다. 이때,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다.
적은 그 대군을 편성해 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다.
적의 연합군과 여호와의 영, 이제 어느 편이 강한가?
바야흐로 이스르엘 골짜기에, 육의 힘(능력)에 대한 영의 능력은 시험되려 한다.
(33-34 이때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및 동방 사람들이 서로 모여 강을 건너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
34). 그런데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다. 그가 나팔을 부니, 아비에셀 사람, 그 아래로 모였다).
여호와의 영 기드온에게 임했다.
그는 그 영에 격려되어, 나팔을 부니, 아비에셀 족속이 다 그의 깃발 아래에 모였다.
그가 또 므낫세족을 부르니, 온 족속이 다 그의 명령에 좇았다.
그는 또 아셀, 스불론 및 납달리 제족을 부르니, 그들도 또 그의 부름에 따라왔다.
그는 일약 인망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미 므낫세족 중에서, 가장 약한 집의 가장 작은 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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