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요일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진멸당한 미디안 군

 

성 경: [8:4-7]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6) 숙곳 방백들이 가로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7) 기드온이 가로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8:4]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 사실 이들은 '모레 산 앞 골짜기',

 

(7: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즉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적과 싸우며 요단 나루턱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적군을 추격하였으니 매우 지쳐 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는 기드온이 자신과 병사들을 위하여 체면 불구하고 숙곳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청한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따르며 - 기드온과 그의 정예병 삼백 인은 비록 피곤하고 지쳤으나 끝까지 적을 추격했다.

 

이들이야말로 충실한 정병(精兵)이며, 최후까지 긴장하여 희생적 봉사에 참여한 순교적 투사들이었다.

 

승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잠시 출전하여 다행히 두 적장을 죽인 공로를 내세워 이익과 명예를 얻으려 했던 에브라임 사람들과는 그 유()가 다른 충성이었다.

 

애굽의 모든 영화와 부귀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기를 더 원했던 모세의 신앙과 가히 비견될 만하다.

 

(11:23-26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8: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숙곳 사람들 - '숙곳'(Succoth)은 요단 동편의 갓 지파가 기업으로 차지한 성읍이다.

 

(13:27 골짜기에 있는 벧 하람과 벧니므라와 숙곳과 사본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나라의 남은 땅 요단과 그 강 가에서부터 요단 동편 긴네렛 바다의 끝까지라).

 

이곳은 얍복 강에서 북쪽으로 약 16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본 구절에서 '숙곳 사람들'이란 그곳에 거하는 이스라엘 거민인지 가나안 원주민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기드온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스스럼없이 떡덩이를 요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거민은 갓 자손들일 것이다.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 본 구절에는 '세바''살문나', 두 사람이 모두 미디안 왕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은 각기 '미디안''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의 왕 중 어느 한 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을 '미디안 두 왕'이라 칭한 까닭은 아마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이 연합하여 미디안 연합군을 이루었기 때문인 듯하다.

 

(6: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즉 세바와 살문나는 미디안 연합군의 두 왕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 두 왕은 '오렙''스엡'이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우는 중에 요단 강을 건너 도망쳤을 것이다.

 

(7:25 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8:6] 숙곳 방백들이 가로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숙곳 방백들 - '숙곳' 거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 기드온이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해서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므로 떡을 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숙곳 방백들은 기드온의 300명 용사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드온의 군대가 미디안에게 패할 경우 미디안으로부터 받게 될지 모를 보복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기드온에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동족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한 이기주의적이며 기회주의적인 태도였으니 응징받아 마땅했다(Wycliffe,Keil & Delitzsch).

 

 

 

[8:7] 기드온이 가로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 모래 산 앞 골짜기에 진쳤던 대적들을 기습한 이래

 

(7:19이하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계속된 추격전으로 인해 기드온의 용사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4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거기다가 예상 밖의 푸대접을 받은 터였지만, 기드온은 전의(戰意)를 상실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의 확신을 더욱 굳게 다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데에도 이와 유사한 어려움을 많이 닥친다.

응당 협력해야 할 사람이 의외로 냉담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여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살을 찢으리라 - '들가시'는 광야에서 자라는 매우 딱딱한 가시를 의미한다.

히브리 원문에서도 이것은 '광야의 가시'(코체 하미드바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찢으리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타작하리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혹자는 본 구절의 표현을 '기드온이 그들을 돌가시와 찔레 위에 눕혀 놓고 타작용 기구로 그들 위에 눌러 끌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Cundall).

 

또한 어떤 학자들은 '타작하다'란 말을 '가혹한 형벌을 가하다'란 의미의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Bertheau).

 

아무튼 본 구절은 기드온이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방백들의 살을 타작하듯이 징벌하겠다는 의미로 기드온이 극도로 분노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 까닭은 지금 기드온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이 하나님의 성전(聖戰)이었기 때문이다.

 

*참조 (5:1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한편 오늘날도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관망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정죄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 적극 동참하는 까닭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승리가 불을 보듯 명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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