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제6장의 교훈
(내촌감삼의 주석을 참조함)
*이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께 선택되어, 사랑을 입고, 그 놀라운 섭리 아래 인도함을 받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시 그 여호와 앞에 악을 행했다.
그들은 전에도 같은 악을 행하고 그 징벌과 사면과 구제(구원)를 받았다.
그렇지만, 싫증이나 괴로움이나 겁도 내지 않고서, 그들은 또 다시,
그렇다, 또, 여호와 앞에 악을 행했다.
인류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선민을 대표하고, 그리스도신자를 대표하는 그들 이스라엘 백성은, 악에 빠지기 쉽고, 선에 머물기는 어려운 백성이던가.
(1- 이스라엘 자손들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 여호와께서는 7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앞에, 악을 행했다.
어떠한 악인가? 간음인가? 사치인가? 취주인가? 광포인가?
그들은 모두 이러한 악을 행했으리라.
그렇지만 그들은 이러한 악을 행하기 전에 보다 더 큰 악을 행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좇았다.
바알의 숭배가로 되었다. 우상 신자로 되었다.
마음의 순정을 요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혹은 이성을 만족케 한다하고,
혹은 미적 관념에 호소한다하며, 방종을 허용하고, 부정을 간과하는 그리스인, 피니시아인 (2권 190, 192, 195p 참조), 가나안인들의 숭배하는 바알신을 섬겼다.
이는 이스라엘인이 범한 특별한 죄였다.
하나님은 특별히 이 죄 때문에, 그들을 적수(敵手)에 붙이셨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 여호와께서는 7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겼다.
그리고 여호와는 7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 사람의 손에 붙이셨다.
신앙 잃을 때, 독립을 잃는다.
여호와께 의지함은, 홀로 섬(독립함)의 길이다.
개인에 있어서 그렇다 국가에 있어서 그렇다.
인류의 역사는 이것을 증명한다.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압제했다. 미디안 사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산에 있는 동굴과, 굴(동굴)과 성채(a fort)를 자기 위해 만들었다).
‘견고한 피난처’이신
(시 71:7-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여호와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가장 불행한 자로 되었다.
일찍이는
‘다섯이 백을 쫓고 백이 만을 쫓으리니’하던 이들은,
(레위기 26:8-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지금은 미디안인의 추궁하는 바가 되어, 산에 있는 바위 구멍이나, 동굴이나, 성채를 자기들 위해 만들고, 거기에 몸을 숨기기에 이르렀다.
백일(白日)에 활보하던 그들은, 암야(暗野)에 방황하는 자로 되었다.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몸으로 이방인의 압박을 받기에 이르렀다.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압제했다. 미디안 사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산에 있는 동굴과, 굴(동굴)과 성채(a fort)를 자기 위해 만들었다).
신앙 타락의 결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 자유와 독립을 잃기에 그친 것이 아니고, 그 소산까지도 빼앗기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씨를 뿌리면, 미디안 사람은, 그 동류 아멜렉인 및 기타의 동방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 사람에 대하여 진을 치고, 땅을 황폐케 하기를, 북방 갈릴리호반에서, 남방 가사성까지에 미치었다.
그들은 메뚜기처럼 왔다. 그 수는 셀 수 없었고, 그 잔해는 막을 길 없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중에 있는 생명을 이을 것은, 양, 소, 나귀에 이르기까지, 메뚜기에게 먹힌바 된 것같이, 이방인의 약탈하는 바로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던 때, 일이 여기에까지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그들은 몸의 번영을 기하여, 여호와를 떠나, 바알을 섬겼다.
그렇지만 바알은 그들의 희망을 채우지 못하고서, 그들은 그들의 생명과 의지하던 그 재산까지를 빼앗기기에 이르렀다.
신앙 타락은 언제나 신앙 타락에 그치지 않고, 더해져 재산 손실에까지 미친다.
(3-6 욕산과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 그들은 가축과 천막을 가지고 왔다. 메뚜기 떼 같이 수많이 왔다. 그들과 그들의 약대는 셀 수 없었다. 그들은 나라를 황폐케 하려고 들어왔다
6).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디안 사람으로 인하여 크게 쇠약해졌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그들은 이방인의 약탈로, 그 소산을 빼앗기기에 이르러, 비로소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소리를 높여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가련한 그들은 비를 비로소 해석하지 못하고, 그 비참한 결과를 보고서, 자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그 진미에 있어서 보지 못하고, 그 내려주신 물질상의 은혜에 있어서만 아는 자의 하는 일은, 언제나 그러한 것이다.
그 소산을 빼앗긴 후, 비로소 하나님께 향해 부르짖는 것이다.
소산을 빼앗기기까지는, 마음에서(심령에서) 성령을 빼앗아 간대도,
입에서 찬미의 소리를 그치게 한 대도, 아무런 손실을 느끼는 일없이,
하나님은 무(無)나 한가지로 생각하고, 혹은 이욕의 신 바알을 여호와라고 생각하여,
안일 탐람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들의 미련함이란, 불쌍히 여길진저.
그렇지만 소산을 빼앗기고 눈뜬 그들에게 아직 구제(구원)의 희망이 있다.
세상에는 이 희망조차도 없는 자가 있다.
즉 소산을 빼앗긴대도 여호와께 돌아오는 일 없이, 여전히 바알에게 빌며, 다시 재산을 만들려하는 자가 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까지 하나님께 저주받은 백성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우리에서 양과 소와 나귀를 빼앗기고서는, 드디어 눈을 들어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것이다.
(6-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디안 사람으로 인하여 크게 쇠약해졌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래 먼저 한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셨다.
선지자는 선지자이기보다는, 오히려 힐책자이다.
그는 구원자(구조자)가 아니다. 구조자는 선지자의 뒤에 온다.
하나님은 먼저 선지자를 보내어 죄를 책하시고, 그런 후에 구원자를 보내어,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신다.
(7-8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 사람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8).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를 이스라엘에 보내셨다. 그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나는 일찍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너희를 노예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의 죄는 이것이다.
즉 그들은 전에 그들을 구원하신 여호와를 버리고, 그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이방인의 신을 좇았다.
망은(忘恩)은 그들이 범한 특별한 죄악이었다.
그들이 만약 여호와를 몰랐다면 몰라도, 그들은 국민으로서 이미 수백 년에 걸쳐 ‘여호와의 깊으신 은혜를 맛보’면서, 지금에 이르러 이것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특히 노하신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범한 죄는, 이방인이 도저히 범할 수 있는 죄가 아니었다.
‘일찍이 맛보아 주를 은혜로우신 자로 안’자 만이 범할 수 있는 죄이다.
즉 불신자가 범할 수 있는 죄가 아니고, 신자 만이 곧 잘 범할 수 있는 죄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또 이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은 그들 위에 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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