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8일 토요일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기드온을 따르는 많은 백성

 

성 경: [7:1-3]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7: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룹바알 - '바알과 논쟁하다',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Baal)의 단을 훼파하고서 얻은 이름이다.

 

(6: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하롯샘 -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얄룻'(Jalud) 샘으로 알려져 있다(Cundall, Hervey).

이 샘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바로 북쪽 길보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 '하롯'이란 지명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 '삼훗''엘리가'의 출신지로 언급된 것 외에는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어 있지 않다.

 

(삼하 23:25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다만 블레셋 군대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진 친 곳이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이었는데. 이것이 하롯 샘과 동일한 샘일 가능성이 높다.

 

(삼상 29:1 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왜냐하면 이스르엘 골짜기 주변에는 샘을 끼고 있으면서 군대가 진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레산 -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레'(Moreh)'에발 산''그리심 산'이 있는 '세겜'에 속한 한 지역이다.

 

(12: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11:30 이 두 산은 요단강 저편 곧 해 지는 편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지역은 전투 장소로 묘사된 '이스르엘 골짜기' 남쪽에 떨어져 위치하고 있으므로

'모레 산'과 동일시 될 수 없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자는 모레 산은 높은 곳이므로 북쪽이며 하롯 샘은 낮은 곳이니 남쪽이라는 주장을 편다(Cassel).

 

그러나 이것은 막연한 주장일 뿐, 위치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을 못 준다.

따라서 다만 '모레 산''하롯 샘' 북쪽의 어느 한 곳일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 사실상 기드온을 좇은 이스라엘 백성은 32,000명으로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 그렇게 많은 수효는 아니다.

 

(12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6:5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왜냐하면 무기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사람의 수효와 훈련 정도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거의 판가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36,000명의 알렉산더 대제(Alexander the Great)의 군대가 60만의 바사 왕 고레스 3(Cyrus III)의 군대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이긴 적도 역사적으로 실제 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분명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수효를 줄일 것을 명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에서였다. ,

 

(1) 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

(2) 믿음의 정예(精銳) 용사를 뽑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한 목적은 단순히 이방의 압제를 그치게 하려는 데 국한되지 않았다.

 

즉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켜서,

 

(6:7-16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고로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 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주요 목적을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투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1) 겸손히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였고

(2)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삼상 14:6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 하나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두려워서 떤다'는 사실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거절하셨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은 돌아가게 하셨다.

 

만약에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커녕, 스스로 자긍할 자들임에 틀림없다.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 여기서 '길르앗 산'은 요단 동편의 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의 지경(地境)에 걸쳐 넓게 퍼져 있는 길르앗 산지를 가리킨다.

 

(5:17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때문에 혹자는 본 구절의 길르앗은 '길르앗'이 아니라 '길보아'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한다.

(Clericus, Bertheau, Cassel, Cundall).

 

왜냐하면 현재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산지가 아니라 길보아 산기슭의 하롯샘 곁이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41).

 

(1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그러나 본 구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길르앗'이라 하면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서'란 말은 '으로'라고 번역하여, 본 구절을 '길르앗 산으로 떠나 돌아가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기드온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그와 같은 지파인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며, 그 많았던 점에 의거할 때,

 

(6:35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길르앗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자연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