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제7장의 교훈
이스라엘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다.
이는 수(數)로써 이길 바의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이길 바의 것이었다.
사람은 수를 의지하지만도, 하나님은 믿음을 요구하신다.
2만(萬)의 사람은 너무 많다. 하나님에 의해 적을 깨치려 한다.
삼백 인으로 족하다. 그렇다. 한 사람으로 족하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아들로 하여금 ‘내 손이 나를 구원하셨다’고 하지 않게 하신다(2).
모세의 유서에 이른바 있다.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누가)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신명기 20:1, 8)’고.
적이 많음을 겁낼 것 없다. 제 편에 겁쟁이 있음은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겁쟁이는 이를 도태해 버릴 것이다. 겁쟁이는 이를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겁쟁이는 혼자 겁쟁이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겁을 타인에게 전염시킨다.
겁쟁이를 진중에 남겨두면, 전군이 겁쟁이로 화할 위험이 있다.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겁내는 자는,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동쪽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산을 돌아 돌아갈 것이다.
겁내는 자는, 그 겁을 전군에 전할 뿐 아니라, 이것을 국민에게 전하여, 그 예기를 꺾을 위험이 있다.
국외를 돌아가라고.
그리하여 이 명 따라, 진을 떠난 자 22, 000이었다고 한다.
즉 진에 나온 자의 과반수였다고 한다. 가련하다, 겁쟁이!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메뚜기의 중다함 같은 미디안군에 대하여,
(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3만의 군대는 많은 것 아니다. 그런데 그 반을 잃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심중을 살피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여호와는 다시 말씀을 계속하여 이르신다.
‘백성이 아직도 많다’(4)고.
군(軍)은 더 정선(精選)되어야만 했다.
백성 스스로의 자신을 믿는(가지는) 마음은 더욱 제거되어야 했다.
1만 인은 아직 많다.
하나님의 이적을 나타내심에 족한 수에 까지 감소되어야만 할 것이다.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기드온은, 군대를 이끌고 하롯 샘에서 솟아 흐르는 작은 냇가에 이르렀다.
여기서 그 삼백 인은, 곧 땅에 엎드려, 그 얼굴을 물에 대고, 개가 핥는 것 같이 그 혀로써 물을 핥았다.
그 나머지 백성은 모두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전자는 민첩을 나타내고, 후자는 우물거림(유예 delay)을 보였다.
적(敵)을 면전에 두고 있으면서, 유예(猶豫)하는 자는, 택할 자 못된다.
기드온은 용맹 있고, 또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삼백 인으로서 적의 대군을 깨쳐야 하리라는 것이다.
(5-7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물가에서 경계의 결핍을 나타낸 일만여의 백성은, 군대를 떠나 집으로 돌아감만 같지 못하다.
(그래) 그 휴대했던 양식 병량과 나팔을 전사에게 건네주고, 각자 그 천막으로 돌아가, 소수의 공격대의 후원을 해야 하게 되었다.
겁쟁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용사(용자)는 진에 머물러,
민첩한 자는 나아가 적에 부딪친다.
군의 구분이 이쯤 되어, 소군도 대군을 잘 깨칠 수 있다.
약화케 하는데 있어서, 그 방잡한 것 이상 없다.
용겁을 구분할 때, 용기는 십배 하고,
이둔(利鈍)을 구분할 때, 예리는 백배 한다.
구분, 구분, 일을 성취함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군의 도태가 되고, 기드온은 이제 곧 나아가 적을 쳐서 이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승의 확신이 아직 그에게 생기지 않았다. 그에게 아직 주저하며 머뭇거리는 기색이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를 은밀히 적의 진영에 보내어, 그 상황을 살피게 하신다.
그래 기드온이 그곳에 이르니, 적의 진중 이미 여호와와 기드온의 이름을 듣고 떨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어뜨리니 곧 쓰러지더라’(13). 고.
이는 겁쟁이(a coward)의 꿈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진중의 세론을 잘 나타낸 것이다.
보리떡 한 개는, 술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다.
(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그는, 미디안의 진중에 은밀히 들어가, 그 왕의 천막을 쳐서 무너뜨리고, 이것을 설 수 없게끔 할 것이라고.
적군은 이미 이 공포를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일격 하에 이것을 쳐부수어 버릴 수가 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적의 간담(마음)을 빼앗으신다.
즉 공포의 영을 그들에게 내려,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쳐서 무너뜨리기에 더욱 쉽게 하신다.
(9-14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13)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14)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내촌감삼의 주석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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