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성도들간의 사랑

 

성 경: [벧전 3:8-12]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벧전 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 베드로는 본절에서 2:18-3:7에 있는 명령을 마무리하면서 5개의 형용사를 사용함으로 완곡한 권면을 하고 있다.

 

(2:18-3:7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3: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7)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본절에 사용된 5개의 형용사는 동일하게 분사적인 용법을 취하고 있다.

 

이는 특별한 계층으로 부터 신자의 특성으로 관심을 옮긴 것으로(Goppelt, Selwyn) 신자의 상호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마음을 같이하여 - 이것은 동일한 의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각자가 서로에 대한 동일한 관심을 가지며 영적인 끈으로 연합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체휼하며 - 이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참여하여 고난 받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동정하는 것을 나타낸다.

 

(10: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형제를 사랑하며 - 이는 단순한 형제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속시키는 형제애로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윤리적 덕목이다.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살전 4:9-10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불쌍히 여기며 - 이것은 신약성경에서는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이나 동정심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고후 7: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겸손하며' - 이는 예수께서 가지셨던 마음으로 낮은 마음을 나타낸다.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2:6-9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 베드로는 본절에서 일반적인 불신자와의 관계를 말함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 뿐만 아니라 자기를 해치고 욕하는 자에게도 보복하는 일이 없이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교훈이다.

 

(6:27-29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갚다'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악이나 욕으로 갚아도 될 만한 상황 속에서라도 저주나 앙갚음을 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고 중보 기도해야 함을 시사한다. (Blum).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려고 부르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복을 빌어야 한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복을 빌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Lenski, Bengel, Blum).

 

 

[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 본절은 시 34:12-16을 인용한 것이다.

 

(34:12-16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본래 시편에서는 '생명''좋은 날'이 이 세상과 관련된 표현이나,

베드로는 본절에서 시편을 인용하면서 그 의미를 종말론적 차원까지 확대하고 있다.

 

즉 베드로는 '생명'이 단순히 '이 세상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소망인 영생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명을 사랑하고'7절의 '알아'와 연결되어 단순히 생명을 사랑하고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깨달아서 그 목적에 맞게 소망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다. (Lenski).

 

한편 '좋은 날'은 시편 기자가 '이 세상의 아름답고 즐거운 날'로 묘사했으나 본문은 장차 올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Beare, Kelly) '그리스도인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날'을 가리킨다(1:8). 이렇게 영생을 소망하고 사랑하며 다가올 세계를 기다리는 자는 곧 그리스도인이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맡하지 말고 - 영생을 사랑하고 다가올 세계를 간절히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혀를 조심하여 악한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궤휼'에 해당하는 헬라어 '돌론'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해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헐뜯는 것을 삼가하며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화평은 세상에 목표를 두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이루어진다.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의지로 악에서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가운데 선을 행해야한다.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 본문은 시 34편에서 인용한 듯하다.

(34:1-22)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1)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17)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죄를 받으리로다

22)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

 

'화평을 구하는 것'은 서로를 세워 주는 것이며,

 

(딤후 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현실적인 삶에 순응하여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삶이다.

 

이런 '화평'은 상대가 불신자든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든 간에

 

(고후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살전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윤리적 덕목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을 다해 붙잡아야 할 것이다.

 

 

[벧전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 ''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Michaels)

 

34:15,16에서와 마찬가지로

 

(34:15-16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은 항상 자신의 섭리에 따라 자기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감찰하심을 의미하며(2: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는 자신이 백성의 필요한 간구를 들으심을 의미한다.

 

(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 '주의 낯'은 하나님께서 악행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시는 진노의 모습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표현이다(Blum).

 

한편 '향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1) '넘어서'(over).

(2) '대항하여'(against).

 

두 가지 의미 중 본절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은 선을 행하는 자들이나 악을 행하는 자들이나 동일하게 향하시나,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넘어 가시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냥 지나가지 않으시고 악한 자를 대적하여 진노하시기 때문이다.

 

(34: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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