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의를 위한 고난

 

성 경: [벧전 3:13-22]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벧전 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 본절은 하나님의 눈이 의인을 향하시고 또한 그의 귀가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므로 열정을 갖고 선을 행하는 자들이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본절은 선을 행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전혀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본절은 유대주의적인 표현으로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따라서 본절은 육체적인 것은 해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영혼까지는 해칠 수 없으며,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그들이 믿음의 사람에게 육신적으로 해를 가한다고 할지라도 묵묵히 참고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승리가 보장됨을 시사한다.

 

 

[벧전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 본문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5:10)이 베드로가 인용한 것이다.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한편 '복있는 자'는 베드로가 자신의 서신에서 잘 쓰는 단어 형태로,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따라서 본문은 수신자들이 고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그 순간을 견디어 이기면 축복의 영광을 소유할 것임을 시사한다.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 본절은 사 8:12의 인용이다.

 

(8:12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베드로는 본절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주께 헌신한 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서 있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 본절은 사 8:13의 인용이다.

 

(8: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8:13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이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주로'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그리스도를 주로서'라는 의미이다.(Christ as Lord,NIV,RSV).

(2) ', 즉 그리스도를'이라는 의미이다.(Bigg, Michaels, Selwyn).

 

한편 '거룩하게 하고'는 그리스도를 '거룩한 분으로 인정하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나타낸다. (Michaels).

 

그리스도인은 마음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불러주신 거룩하신 분, 그리스도를 알려야 한다.

 

(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2:9b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소망이라 함은, 하나님 안에서 영생을 소유하는 기대이다.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두고 소망을 가진 자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될 수 밖에 없으며, 비그리스도인들은 그 점에 대해 의아해 하고 질문하게 된다. 그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수호뿐만 아니라 그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대답'은 본래 재판석상에서 공식적으로 변호할 때 사용되어진 용어이다.

 

(22:1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25: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본문에서 법정 용어가 사용된 것은 공식적인 대답의 요건을 갖추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어떤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대답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 헬라어 본문에는 '알라'('그러나')가 본문 앞에 삽입되어 있다. 베드로는 '알라'를 사용하여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온유'의 헬라어 '프라위테토스'는 태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품이며,

 

(딤후 2:24-25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두려움'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다.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변론하는 과정에서 자기주장이나 감정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합당한 진리만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

 

 

[벧전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한 양심을 가지라 - '선한 양심'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살아가는 데에서 생기는 자유와 담대함과 관련된다.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이러한 선한 양심은 그리스도인들이 변론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근거이다.

아무리 논리에 맞는 대답과 설득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만약 양심이 선하지 않다면 복음에 대해서 올바로 증거하지 못한 자가 되고 만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함이라 - 그리스도인이 선한 양심과 깨끗한 행동을 보일 때 그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들의 거짓이 드러나 오히려 그들이 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벧전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 이 구절은 2:20과 같은 구조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특별히 '선을 행함'(아가도포이운테스)'악을 행함'(카코포이운타스)이 병행 구절로 되어 비교되고 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들이 행한 악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자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선을 행하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은 부끄러움이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난을 통해서 역사하셔서 고난받는 자들을 축복하신다.

 

(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9-20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4:13-14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러므로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로서, 그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단번에 드린 대속적인 죽음이었다.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의인이시지만 죄를 지은 불의한 인간을 위하여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대속적인 죽음을 당하셨다.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1-12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 본절은 '죽으심''부활', '육신'''이 대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은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은 인간적인 생명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를, ''은 부활하신 생명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Selwyn, blum, Dalton, Michaels).

 

 

[벧전 3: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 본절은 해석상에 있어서 난해한 구절 중의 하나이다.

 

본문에 있는 영은 누구인가?

만약 영을 예수 그리스도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전파하셨는지, 아니면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파했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파하셨다면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전파하셨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1) 혹자는 '에녹의 영'이 음부에 있는 타락한 천사들에게 전파했다고 주장한다(Nestle, Harris, Moffatt, Goodspeed).

 

(2) 혹자는 그리스도가 죽으신 후 부활하기까지의 동안에 노아의 홍수 때 멸망하여 음부에 갇혀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파했다고 주장한다(Bigg, Hunter).

 

(3) 혹자는 그리스도가 성육신 전에 성령으로 노아를 통해 당시의 패역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전도했다고 주장한다(Jerome, Augustine, Aquinas). 이 견해에 따르면 본절의 ''은 이 세상은 의미한다.

 

(4)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천사들에게 전도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Blum, Dalton,Kelly).

 

이러한 견해들 중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벧후 2: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 1세기 때에 묵시 문학에서 노아의 홍수는 종말에 오는 심판의 예표로 종종 이용되곤 하였다.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벧후 3:3-10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또한 신약 시대에 와서 노아 시대의 홍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로 비유된다.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그래서 홍수 가운데 방주에 들어간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보존된 '의의 상징'이었다.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반면에 홍수에 멸망당한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결과로 그리되었다.

 

하나님은 '방주를 예비할 동안 오래 참고 기다리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들은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방주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여기서 '방주''교회'에 대한 상징으로(Justin, Tertullian) 노아 시대에 120년을 기다리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죄인들을 위해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덞 명이라 - '물로 말미암아''물을 통하여'라는 의미이며,

 

'방주에서''방주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방주 안에 들어간 자들이 물을 통하여 구원을 얻었음을 시사한다.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물로 인하여 심판을 받았지만,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물이 안전하게 방주를 밀어 올림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를 통한 구원을 상기시켜 준다.

 

한편 '여덟 명'이란 숫자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불과 소수만이 구원을 얻은 것으로 특히 고난을 받은 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맘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 노아의 가족을 구원한 물은 침례를 상징한다.

 

그렇다고 해서 본문이 침례의 형태에 참여한 것을 곧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참여하여 연합되어야 얻을 수 있다.

침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생명을 얻었음을 고백하는 표시이다.

 

실제로 노아 홍수 때의 물은 침례시의 물의 '실체'(안티튀폰)이고, 침례 때의 물은 '표상'(튀포스)이다(TDNT).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 본문은 침례의 중요성을 배제시키려고 함이 아니다. 단지 침례는 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행위로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벧전 3: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 그리스도께서 고난 후에 승귀하여 영광의 자리에 계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오르사' -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최고의 권세와 모든 피조물로부터 존귀를 받으시는 영광 중에 거하신다.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 여기에 나오는 세 가지 존재들, , '천사''권세', 그리고 '능력'은 강력한 힘을 지닌, 선한 천사나 악한 천사의 구별없이 영적 세력을 의미한다.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고전 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이들은 영적 존재로서 일시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나 결국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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