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특주
베드로후서
[영] The Second Letter of Peter
신약성서의 베드로전서에 이은 1서. 공동서간에 속한다.
1. 본서의 저자 - 전서와 한가지로 본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인 시몬 베드로’(1:1)임을 말하고 있다.
또 저자는 자신을 주 예수의 변화의 목격자,
(1:16-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주 예수에 의해 자신의 죽음이 예언되어 있는 것,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또 사도 바울과 동격의 형제로서 표시하고 있다.
(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그러나 베드로 저작설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난점이 지적되고 있다.
(1)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1 알렉산드레이아학파의 대표적 신학자) 및 에우세비오스(Eusebios 265-339/350 그리스도교 최초의 교회사가)는 이 편지를 일단 정전(正傳) 중에 넣고는 있으나,
그 정전성에 대하여서는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여 주고 있고,
교부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340/56-419/20 울가타역자)의 시대에도 베드로설을 부정한 자가 있었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
(2) 이 편지의 용어 및 사상에 인정되는 헬레니즘 사상의 영향은, 저자의 배후에 뛰어난 그리스적 교양이 있었음을 예상케 하는데, 그것은 베드로에게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덕’
(1:3-5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하나님의 성질에 참여한다’,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지식’ 등은 그 예라는 것이다.
(1:2-3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3) 이 편지에 나타나 있는 역사적 상황(하기 3참조)은 2세기 전반경의 상태에 부합한다는 것.
(4) 유다서와의 병행기사(2:1-3:3과 유다4-18절)에 대해서는, 이 편지의 저자가 유다서를 썼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5) ‘시몬 베드로’(1:1)라는 명칭 기타에서, 저자는 자기가 사도 베드로임을 종종 보이려하고 있는데, 도리어 이것은 의작자의 기교적인 조작으로 의심될 만 하다는 것.
(6) 베드로전서를 베드로의 작으로 하는 경우,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와의 사이에 인정되는 용어 및 구약성서의 인용방식 및 신학사상들의 차이가 문제로 된다는 것.
이상과 같이 필자에 대한 강한 의심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그것에 지지 않을 만큼의 베드로 저작의 역사적 유력한 증거도 결코 적지는 않고,
질서에 보이는 약간의 진기한 말의 사용, 또는 하나의 사상의 부정적면과 긍정적면을 보여주는 수법(예컨대 벧전1;12, 14, 15, 18, 19; 벧후1:16, 21; 2:4, 5; 3:9, 17)등 외에도 많은 증거로서 베드로 저작을 뒷받침하는 편도 유력하다.
2. 본서의 독자 - 본서 1장 1절에 ‘우리의 믿음과 같은 귀한 믿음을 얻은 이들에게 편지한다’고 하는 외에, 지리적인 소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3장 1절에 의하면, 이들 중에는 베드로전서를 받은 이들이 포함되어 있어, 베드로후서와 베드로전서와의 관계를 알 수 있으므로, 독자는 소아시아의 신도들이라는 것이 된다.
(벧전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에 흩어진 나그네).
독자는 특히 이방인 신도로 추정되고,
(2:18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또 사도들에게서 가르침을 받고(3:2), 바울에게서 편지를 보내진 일도 있었던 듯하다.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3. 본서의 집필 시기와 장소 - 본서의 집필 시기는 저자를 베드로로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단배척에 힘쓰고 있는 점등(2:1-22)을 위주하느냐에 따라, 집필 연대는 판이해진다.
베드로 저작설을 반대하는 이들은 본서 집필의 시기를 2세기 전반, 즉 130-150년대로 본다.
마가복음(1:16-18; 막9:2-8) 및 요한복음(1:14; 요21:18, 19)의 지식, 유다서의 원용(2장), 바울서간의 결집 및 기타의 문서의 정전화(3:16), 사도들의 사거에서의 시간적 간격(3:4), 주의 내림의 지연(3:4, 9), 또 윤리생활을 무시하는 이단(2장) 등은, 2세기 전반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점에서 판단하면, 이 편지는 신약성서 중 가장 후기의 문서로 된다.
이와는 달리 베드로의 저작으로 보는 때, 베드로전서보다 뒤지기 수 년, 그의 죽음의 직전 기원 67년에서 68년경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사가 에우세스미오스(Eusebios)의 글 따라 네로(Nero)에 의해 베드로가 순교한 것을 Ad64년경으로 보면, 그 순교 직전으로 되어야 한다(뗜듀. Hist. II. 14. 4-6, II. 25. 15).
본서의 집필 장소는 분명치 않으나, 마가복음과의 관계(1:16-18), 베드로의 순교(1:14), 바울에의 언급(3;15), 베드로전서와의 관계(3:1)등 즉 이들은 전부 로마와 관계가 있으므로, 로마설이 유력해지는데, 바벨론에서 로마에의 도상을 말하는 이도 있고, 에집트설도 있다.
4. 본서의 집필 사정과 목적 - 본서를 보내는 제교회에 이단을 말하는 자들이 들어가 신도들을 미혹했다.
그들의 교설은 특히 두 가지 점에 있어서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제1은 윤리 생활에서의 해방이었다(2장).
그것은 육의 행위는 영의 사람의 생활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그노시스적 이원론(Gnosticism~)과, 바울에 있어서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교회의 오해(3:16)등이 결부된 것으로 생각된다.
제2는 종말 신앙의 부정이다(3:3, 4).
그노시스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구원은 이미 실현되어 있었고, 종말적인 사항은 문제로 되지 않았다.
종말 신앙에 대한 의혹은 1세기말에 이미 나타나 있는데(I Clement 23:3-), 그것을 부정한 것은 2세기의 그노시스파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윤리(롬12:1, 2; 갈5;13, 22, 23; 벧전2:16)와 종말 신앙(롬8:18-25; 빌3:20; 요일3:2)은, 초대교회의 전통적 신앙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 저자는 이러한 이단을 배격하고, 전통적 신앙을 호지하도록 격려하고, 훈계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우리 주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그를 아는 지식이 자라(풍서하)’기를(3:17, 18), 또 전서를 상기시켜 그들의 순수한 신앙을 분발시키려(3:1), 이 편지는 기록된 것이다.
5. 본서의 특색과 의의 - 이단과의 대결이 본서의 특색이다.
이단자들이 윤리 생활에서의 해방을 주장하고(2장), 종말 신앙을 부정하는데(3장), 이 이단에 대하여 통렬한 탄핵이 행해지고 있다.
윤리 생활에서의 해방의 주장에 대한 탄핵은 유다 4-18절의 원용인데, 수개처의 흔적이 보인다. 종말 신앙의 부정의 문제는 유다서에는 없다.
본서에 있어서는 또, 그리스도는 종종 ‘구주’(1:1, 11; 2:20; 3:2, 18)로, 불리고, 내림의 지연이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으로서 이해되며(3:9, 15), 심판과 멸망은 불에 의함이 말해지고 있다(3:7, 10, 12).
또 성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고(1:20, 21; 3:15), 몇 가지 귀한 권면도 있다(1:57, 10; 3;13, 14, 18).
즉 이단과의 대결을 배경으로 하여, 예언자의 말(1:19, 21; 3:2), 및 사도의 전승(1;1, 12; 2:21; 3:2)이 중시되고, 바른 신앙의 ‘지식’(1:3, 8; 2:20; 3:18)의 중요성이 역설되어 있다.
또 바울의 편지의 결집도 포함한 정전 형식의 움직임도 인정되고(3:15, 16), 또한 사도적 신앙의 보지자, 성서의 권위있는 해석자로서의 교회의 역할이 명시되어 있다(1:20, 21; 3:1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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