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의 요청 2
성 경 : [벧후 1:8-11]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벧후 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앞서 언급한 덕목들의 목적이요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Mayor, Reicke, Green, Spicq).
(2)혹자는 그리스도을 아는 지식이 앞서 언급한 덕목들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Bigg, Kelly, Bauckham).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시며(3절)
'알기에'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피그노신'이 2절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전(全)생활에 기본이 되는 구원얻는 지식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Bauckham).
▶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 '게으르지'(아르구스)와 '열매 없는'(아카르푸스)은 본서에서 동의어로 사용된다.(Bauckham).
이 두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있어서 윤리적 노력과 관계되어 쓰여졌다.
'게으름'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열매없음'은 윤리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삶을 나타낸다.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막 4:2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골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벧후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 5-7절에서 언급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한 자들에 대한 묘사이다.
'소경'의 헬라어 '튀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진리 보기를 거절하거나 보지 못하는 자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어졌다.
(마 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23: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눅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요 9:40-41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롬 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또한 '원시치 못하고'는 장님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Bauckham).
앞서 언급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의 빛을 잃어버려서 영적 안목이 어두워진 자들이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이들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인간적인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
▶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 본절은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던 침례에 대한 언급이다.
'옛'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라이'로 미루어 볼 때, 베드로는 본절에서 과거에 행한 침례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죄가 청산된 것을 잊어버리고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자들을 전제로 언급하고 있다. (Blum, Bigg).
또한 '깨끗케 하심'의 헬라어 '투 카다리스무'도 역시 정결케 하는 침례를 가리킨다.
(행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본래 침례는 죄 용서와 더불어 이제까지의 죄된 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믿음을 침례에만 국한시킨 나머지 거룩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옛 죄악의 상태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다.
(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이에 베드로는 죄악된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경고하면서, 침례가 죄를 씻을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해서는 죽고, 거듭남으로서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본절은 5절의 반복으로 부지런히 애쓰라는 권면이다.
'굳게 하라'는 의사(意思)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법률 용어로 무엇을 '확실히 한다'는 의미이며, 수신자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임을 시사한다.(Blum, Bauckham, Bigg).
한편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택하심'에 관계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런데 베드로가 본절에서 '부르심'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인간의 응답에 강조점을 두기 위함이다.(Blum).
즉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노력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하며 궁극적인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Blum, Bauckham).
▶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 '실족'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구원 얻지 못하는 것을 시사한다.
(유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영원한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노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Bauckham).
[벧후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
'주시리라'의 헬라어는 7절에 언급된 '공급하라'와 같은 단어로, '넉넉히'(플루시오스)와 함께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거룩한 관대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도록 하실 것임을 시사한다. (Bauckham).
비록 베드로가 앞절에서 궁극적인 구원을 얻는데 인간의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였으나, 본절에서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3절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으로 진술한다.
(눅 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베드로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본 단락(3-11절)에서 언급된 기독론적 관심과 일치시키기 위함일 것이다(Bauckham).
이러한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으로,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며,
(마 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눅 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미래에 주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킨다.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한편 '우리 주 곧 구주'의 헬라어는 문자적으로 '우리 주이시며 구세주이신'이란 의미로 기독론적 칭호이다.
(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3: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구세주이실 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주(主)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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