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무궁한 말씀
베드로전서 1장 24-25절
‘대저 사람은 모두 풀 같고, 그 영광은 모두 풀의 꽃 같다. 풀은 마르고, 그 꽃은 떨어진다. 하지만 주의 말씀은 한없이 보전되는 도다’(베드로전서 1:24-25일역)
주해
본문은 이사야서 제40장 6-8절에서 인용된 것이다. 즉 다음과 같다. 기자의 개역에 의한다.
‘소리가 있다, 이르기를, 외치라고 내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외치리이까? 이르기를, 사람은 모두 풀이다그 영화는 모두 들의 꽃 같다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여호와의 기운(식), 그 위를 불기 때문 실로 백성은 풀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하지만 우리들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사도 야고보는 동일한 말씀을 빌어, 부자의 부의 덧없음을 말했다(야고보서 1:10-11).
‘대저’라는 문자, 원어에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을 없이함이 가하다.
‘풀 같다’ 풀과 같다. 풀이다. 풀 한가지다. 나무같이 되지 못한다.
노송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같이 되지 못함은 물론, 매화나무, 벚꽃 같지도 않다.
풀 같다. 훼화(초화)같다. 할미꽃, 나팔꽃, 울금(turmeric), 앵속 같다.
떡갈나무는 300년 가는 것 있다.
하지만 사람은 초화(草花) 같다. 아침에 폈다가 저녁에 진다.
‘영광’ 광택을 말함이리라. 그것이 일광에 빛나는 잠깐 동안을 말함이리라.
시인 괴테(Goethe 1749-1832. 독일의 시인, 작가) 말한 바 있다.
미인의 가장 아름다움은 2년으로 사라진다고,
벚꽃(앵화)의 극에 머무는 것은 겨우 1, 2년 뿐, ‘풀은 마르고, 그 꽃 떨어진다’ 팔레스티나(→1권 299역주)에 있어서는, 사막에서의 열풍이 불어오면 꽃은 줄기와 함께 모두 고사한다.
꽃은 떨어지고 풀은 있는 것 아니다, 꽃은 풀과 함께 사라진다.
영화와 함께 사람은 사라진다. 위계훈장은 이것을 지닌 사람과 함께 무덤에 묻힌다.
‘하지만’ 이에 반하여, ‘주의 말씀’ 주께서 하신 말씀으로서,
지금은 성서에 기록된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있는 말씀(도)이 아니다.
전자는 그리스어의 <르헤마>(rhema)이고, 후자는 한 가지로<로고스>(logos)이다.
물론 후자 없이 전자 없다. 하지만 이자 사이에 각각 구별이 있다.
‘보전한다’ 남는 것이다. 천지는 없어져도 남는 것이다. 이는 영구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이다. 그리고 역사는 그의 이 말이 거짓 아님을 증명한다.
로마 제국은 없어졌어도 성서는 있다.
대시인의 시는 잊혀졌어도 어부 베드로의 말은 있다.
사람은 나이와 함께 그 저작을 묻어버리지만도, 아주 작은 성서를 묻어버릴 수는 없다.
이것을 대서점에서 물어보라. 해마다 없어지는 책 얼마나 많은가를.
10년의 생명을 보전하는 글을 저술하기란, 아주 어렵다.
100년 후에 이르러는 없어지지 않을 글(책)을 저술한다는 것은, 실로 어렵다.
2천년을 지나도 여전히 세계의 백성에게 싫증나지 않는 글을 저술함의 불가능은, 저작에 종사한 자들이 잘 아는 바이다.
그런데 성서는 2천년 후의 오늘, 겨우 고전의 하나로서 사람에게 진중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오늘의 글(책)로서 생명의 빵으로서 몇천만의 사람에게 필요시 되는 일이다.
이는 하나님의 글(책)이 아니고 무언가?
그리고 오인은 성서가 무용시 또는 골동시 되는 시대의 도래에 대하여 사유(생각)할 수 없다.
사람이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은 성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글(책)로서 있을 것이다.
*내촌감삼의 (1906년 7월 ‘성서지연구’)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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