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에 나타난 교회관
베드로 전서는 평범한 글(서)이다.
그 중에 독창적 의견이라고 할 것은 발견할 수 없다. 그 문체는 구약성서의 인용의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스코틀랜드 부근에 가는 때면, 좋은 신자의 편지 또는 설교라는 것은 성서의 말씀을 연결해 맞추어 놓은 것 뿐으로서, 결코 자기의 의견을 섞고 있지 않음을 보는 것이다.
또 참으로 좋은 사상은 그것 이상으로 나타낼 수가 없다.
베드로 같은 이는, 몸을 구약성서 중에 키운 사람이다. 이것 없이는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를 믿어 새로운 의미를 구약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구약성서의 말을 이어 맞추어 새로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당시 보통 서간 또는 보통 설교인 것으로서 베드로전서는 즉 초대의 서간의 표본으로서 보면 아주 흥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에 친근치 않고서 그 깊은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
구약을 알고서 이것을 읽으면 그 거의 전부가 구약의 이용인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 명백한 신약적 사상이 들어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구약의 말로서 쓴 신약의 글이 베드로전서이다.
일례를 들면 2장 4절에
‘주는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나, 하나님에게 택함 받은 귀한 산돌이시다’(일역) 라고 있다.
‘사람에게 버림받음’이란,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돌’이라든가 ‘반석이라 함도 또 구약의 말이다.
다만 그중에 신약의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은, ‘산’이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산 돌‘이라는 것은 오늘의 과학에서 볼 때 모순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견고한 돌이고 더구나 산 돌이라고 하여 비로소 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 ‘너희는, 그에게 와서 산돌 같이 세워져 신령한 집으로 되고’(2:5일역)
‘집’이란 성전인데 구약의 말이지만, ‘신령한’이라고 하여 새로운 의미가 생겨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여기서 영이라고 한 것은, 바울처럼 성령의 의미가 아니라, ‘사랑의 집’이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또, 거룩한 제사장으로 되고’(2:5일역)
이는 또 구약의 말이다. 그러나 너희가 제사장이 된다고 한다.
‘너희’란 누구인가? 이방인이라고 한다.
소아시아의 여러 곳에 산재한 이방인, 더구나 그 다수는 노예이다.
그러한 자가 ‘거룩한 제사장’으로 된다고 하는 것은, 이는 또 명백한 신약적 사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한(영적) 제물을 드리도록 하라’(2:5일역)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제물)를 드린다는 것은, 구약의 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라는 것이 특별한 말이다.
또 제물이라고 하는 것도, 소나 양이나 곡물의 유가 아니라, ‘영의’(영) 제물(사랑)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이는 또한 이상한 것이다. 즉 여기서도 또 구약의 말이 신약화된 것을 보는 것이다.
이같이, 베드로전서를 해석하는데 구약에 친근함을 요하지만 그 내용은 어디까지나 신약의 서간이다. 이는 이 글을 읽는데 있어서 특히 주의할 일이다.
그러나 베드로전서에 다시 주목할 것이 있다. 이 글은 그 모두(시작)에 기록된 대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거류하는 자’(1:1일역)에게 보내진 서간이다.
이들 토지는 소아시아의 대부분으로서, 그 면적(extent) 거의 일본 크기이다. 더구나 로마제국의 벽지의 땅이다.
거기에 흩어져 거류하는 자 곧 일본대의 넓은 벽촌지에 산재해 있는 신자에게 보낸 회장(회람서신)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당시의 크리스천의 상태를 엿볼 수가 있다.
바울의 전도에 의해 이룩된 고린도, 빌립보, 에베소 등의 교회처럼 일단으로 모인(뭉친)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일본에 있어서의 우리 교우처럼, 고독한 신자가 여러 곳에 많이 산재하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크게 주의할 일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산 돌처럼 세워져 신령한(영적) 집으로 되고 또, 거룩한 제사장이 되며, 즉 최고의 의미에 있어서의 교회로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의 교회관을 살펴 알기에 족하다.
반드시 상호에 접근하여 하나의 조직된 제도하에 있음을 요하지 않는다.
여러 곳에 산재하여 그럼에도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하고, 산돌이 되어, 신령한(영적) 집을 만들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영의 제사(제물)을 바칠 수가 있다.
초대의 교회의 상태는 실로 그러한 것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또 흥미 있는 말은 2장 17절이다.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왕을 귀하게 여기라’(일역)고 있다.
이는 4조의 훈계로 되어 있다.
제1조, 뭇 사람을 공경하라.
제2조, 형제를 사랑하라.
제3조, 하나님을 경외하라.
제4조, 왕을 귀히 여기라.
이는 아마도 베드로가 언제나 사람에게 전한 교훈의 대강이었으리라.
실로 간단한 교훈인데, 그러나 잘 초대의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나타내 말하고 있다.
제일, ‘모든 사람을 존경하라’고 하는 것은,
오늘이야말로 모두 인권을 중시해야 할 것을 아는 까닭에 별로 이상하지 않으나, 당시에 있어서 이 말을 함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 가운데는 로마 제국의 대부분을 차지한 노예가 있다.
또 노예 다음으로 거의 인격을 인정받지 못했던 부인이 있다.
로마인에게 향하여 노예를 존경하라는 것은 쓸데가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몰 교섭의 말이다.
이는 이미 혁명적 사상이다.
사람은 가령 죄인이라 해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 근저에 있어서 신성한 것이라는 사상은 다만 초대의 신자뿐이 아니라, 오늘 우리나라(일본)에 있어서도 이것을 해득치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제2로, ‘형제를 사랑하라’고 있다.
형제란 물론 신앙을 한 가지로 하는 자를 말함이다.
그러나 이것을 다만 형제라고 해서는 족하지 못하다.
Brothers(희 adelphoi)가 아니라 brotherhood이다.
형제무리이라든가 형제단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형제자매이기는 해도, 개개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말과 앞의 ‘산 돌’ 또는 ‘신령한 집’ 등의 말과 대조하면, 여기에 베드로의 교회관이 나타나 보인다.
죽은 규칙 제도의 유를 전적으로 떠나 생명의 역사(동작)하는 곳에 절로 일종의 영적 가정이 출현한다. 그것이 형제단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향하여 교회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델포테스>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형제단이다. 그러므로 그 특성은 사랑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이는 재미있는 측면과(side-light)이다.
마태복음에 ‘너는 베드로다.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울 것이다’(16:18일역)라고 있음을 보면,
베드로가 교회의 처음인 듯하지만, 베드로전서 중에는 교회라는 문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에 해당되는 것은, ‘산 돌’이라든가, ‘영의 집’이라든가, 또는 형제단이라든가 하는 말뿐이다. 이는 초대의 교회를 아는데 유익한 재료이다.
제3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것은 별로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경외한다는 것은 두려워함이 아니라, 사랑하여 공경함이다.
하나님을 사랑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친압(무례)함을 경계한 말이다.
특히 주의할 것은 제4의 ‘왕을 귀히 여기라’이다.
‘왕’이란 imperator(황제)를 말함인데, 유대인 사이에는 황제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바실레우스(희) basileus>(왕)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 황제를 basileus이라고 했다.
즉 오늘의 말로서 황제를 귀(존귀)하게 여기라는 것이 정당한 역어이다.
이 일어(一語)로서 본대도 크리스천이 사회제도를 중히 여기고, 이른바 국헌을 중히 여김은 분명하다.
이같이 초대의 신자의 신앙적 생애를 간약하여 말하면,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왕을 귀히 여기라’고 하는데 귀착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편으로 보아서는 그 기뻐하시는 영의 제물을 바치는 입장에 있고,
세상 편에서 보아서는 순량한 백성(으로서의 신자)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초대의 크리스천의 신앙에 조금도 궤도를 벗어난 바는 없다. 열광적인 내용은 없다.
정숙하고 경건에 찬, 친압(무례)하리 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일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동시에, 구약적인 건전한 외경의 염(심)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18절 이하에는 ‘종 된 자여∼’라고 하여, 일종의 권면이 주어져 있다.
종이란, 집의 머슴(소사)의 뜻으로 이른 바 하비(하녀)라든가, 하인(하남)이라든가의 유이지만,
로마제국에 있어서는 특별히 노예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즉 인신의 자유를 전혀 잃은 자이다.
또 3장 1절에서 7절까지에는 ‘아내 된 자여’라고 하여 부인에 대한 교훈이 있다.
베드로의 생각으로는 부인은 반드시 결혼하여 아내로 되어야 할 자이므로, 아내란 부인이라는 것과 한 가지이다. 종 된 자여, 아내 된 자여라고 한다.
이로써 당시의 신자의 성질을 살펴 알 수가 있다.
그 최대다수가 노예였고, 다음이 부인이다. 사회에 권력을 가진 자도 있었으매 틀림이 없는데, 그것은 오히려 소수였다.
복음이 사회에 들어감의 순서는 이것이다. 최하층에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로마의 식자에 천시된 것도 반드시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최하층의 노예에 대하여 무어라고 가르쳤던가?
‘몹시 두려움으로서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다만 선한 자, 유화한 자에게 만 아니라, 무정자(가각자)에게도 복종하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도, 네 권리를 주장하라거나 네 자유를 획득하라고는 않는다.
‘사람이 만약 받을 것 아닌 (억울한) 고난을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이것을 참으면, 훌륭한 일이다. 너희가, 만약 잘못하여 매를 맞고 이것을 참으면 무슨 훌륭한 일이 있으랴? 하지만, 만약 선을 행하고 고통 받고서 이것을 참으면 하나님께 칭찬 받을 것이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것은 이것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너희 위해 고난을 받고 너희로 하여금 자기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고 모범을 너희에게 남겨 놓으셨기 때문이다’(2:19-21일역)
즉, 사람이 크리스천으로 된 것은 그리스도에게 배우기 위해서이다.
너희가 가혹한 주인에게 학대받고 이것을 참고 견딤은, 너희들이 신자 된 특성을 나타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놀라운 인내로서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에 너희도 참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내가 노예 중에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노예의 자유가 선고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시에 이들 동포를 노예로서 취급하는 로마제국의 유권자가 여기서 대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그리스도교의 성질이 그렇게 한 것으로서, 결코 신자 자신의 요구로 이룩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도리어 즐거이 복종했던 것이다.
부인의 남자에 대한 태도는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코 오늘의 소위 여권획득 운동자가 주장하는 것 같은 남녀동권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아내 된 자여, 너희는 그 남편에게 복종하라’(3:1일역)이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복종하여 이것을 주라 부른 것같이 복종하라는 것이다.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한 가지로 ‘생명의 은혜를 상속 받을 자’(3:7일역)로 가르침 받아,
여자는 여기서 참된 여권을 획득하고, 또 남자가 여자를 존경해야 할 까닭의 근본이 제시되어, 여자의 구속(속박)이 풀려 여성의 자유가 시작된 것이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된 시대에 대하여는, 혹은 바울의 서간보다 뒤라 하고, 또 전자는 후자보다 훨씬 오랜, 아마도 49년경, 즉 바울의 서간의 최고의 것보다도 더 6, 7년 전이었다고 하여, 여러 가지 의론이 주장된다.
그러나 잠시 시대문제를 떠나 이 글에 나타난 신앙 및 신자의 상태에서 판단하면, 그것이 바울의 전도 이전의 원시시대의 것임은 확실하다.
필경 이 글은 복음이 처음으로 이방에 들어간 그 발아(發芽)의 시대에 있어서의 신자의 상태를 보인 것으로서, 오늘의 일본이나 또는 처음으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크게 참고로 할 만한 것이다.
베드로가 쓴 것으로서 남은 것은 이 전서 다만 하나밖에 없다.
베드로후서는 일찍부터 이미 ‘의심스러운 서간’의 하나로 셈되고, 이것을 베드로의 작으로 보기는 아주 곤란하다.
그러나 전서에 대해서는, 대개의 학자는 이것을 베드로가 쓴 것으로서 의심치 않는다.
요한, 야고보와 함께 병칭되는 이 커다란 베드로의 말이, 한 마디(일언) 오늘에 남았다는 것은, 깊이 감사해야 할 일인 것으로, 이 사람의 역사(일)로 생겨난 크리스천의 상태가, 지금의 교회와 그렇게도 다른 것을 알 때, 우리들은 위로받는 바 적지 않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촌감삼의 (1916년 2월 ‘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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